끝나지 않은,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들과의 씨름
돌아보면 CE 20세기는 강대국들간의 싸움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싸웠을까요? 앞서 말했듯 히틀러는 나치 독일을 세계 중심지로 삼고 심었습니다. 일본 제국의 정치인들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일본 중심의 아시아 제국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나아가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얻고 군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왕년의 제국주의 강대국 영국과 프랑스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 세기 전 부터 빼앗아 온 자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자와의 경쟁은 마치 수천년 전 정주농업 집단과 그 배후에 자리하고 있던 유목 집단 간에 되풀이 되었던 갈등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습니다. 제국주의 집단 간 싸움은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의 승리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죠. 이긴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져 한반도를 무대로 또 한번 피튀기는 전쟁을 불사했습니다. 결국 이 싸움은 거의 반세기가 지난 무렵 소련의 해체와 함께 끝났습니다. 이는 CE17세기 구교세력과 신교세력이 30년 동안 다툰 끝에 베스트팔렌조약 체결을 통해 신교 세력이 승리하면서 개별 국가의 종교 선택권이 인정 받게 된 과정과 흡사해 보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본질이 같기 때문입니다. 인간,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기본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행동합니다. 개체가 아닌 종 전체의 차원에서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년 전~약 2만년 전 사이에 몇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로부터 전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 때 까지 인류의 목표는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아 번성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다른 종들에 맞서 '영리한' 이들은 개체 뿐 아니라 개 등 동물들과 전략적인 협력을 하였고, 더불어 창, 활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싸웠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적중했고 경쟁에서 승리한 인류는 지구 전역에 널리 퍼져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기후 조건이 유사해진 약 11,700년 전 이후 인류는 일정한 곳에 정착하고 공동체를 형성하여 점차 농경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부터 인류의 목표는 '지금 보다 더 잘 살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신석기 시대에는 내가 속한 집단이 농업을 통해 먹거리를 확보하고, 나아가 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지구의 모든 지역이 농업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 인류 집단의 선택은 경쟁, '나에게 없는 것을 빼앗기' 였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싸움은 본격화 되었고 수천년 동안 되풀이 되어 온 것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싸움으로 인해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이 일어날 수 있었음에 주목합니다. 아울러 스티브 핑커와 같은 석학은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시기가 바뀌면서 대규모의 전쟁과 희생자의 수가 점차 줄어들었음에 주목하면서 인간 본연의 무차별적 공격성은 통제 가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핑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이상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시기를 ‘긴 평화의 시기 (Long peace period)’로 부르기도 했습니다.¹ 그리고 미-소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세계 정세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많은 이들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수준의 물리적인 싸움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세계 각 국은 미국이 이끄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계를 빠르게 받아들였고 그에 맞게 국제 질서가 변화하였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없어보였습니다. 미국이 지향하는 국제 정치, 경제 질서 속에서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면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과 기대는 CE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과 버지니아에서 일어난 9.11테러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자유의 여신상과 더불어 뉴욕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국력의 상징 펜타곤에 각각 경비행기가 돌진하고, 건물이 불에타고 붕괴되는 장면이 티비를 통해 전세계에 송출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더욱이 당시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자타공인 세계경찰국가 미국을 상대로 주도한 세력이 '알 카에다'라는 아랍계 일개 테러집단이라는 점입니다.
피는 또다른 피를 부르는 법,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 카에다'의 배후로 이들을 비호하고 지원하는 세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지목합니다. 9.11테러를 당한지 약 한 달만인 CE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개시하였고, CE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를 침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들은 수십년 간 이어지면서 너무나 큰 인적,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고 '테러 집단 소탕'이라는 실질적인 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했습니다. 탈레반은 여전히 건재하고 소탕되었다고 믿었던 알 카에다는 IS(이슬람국가)로 변모하여 세력이 확장되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공세를 강화하면서 레바논, 이란 등 주변 서남아시아 국가들을 위협하며 확전 기로에 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놓고 CE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여전히 전쟁 중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내부세력간, 국가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긴평화의 시기 속에서도 전세계적으로 약 330만명이, 아프리카에서는 약 170만명이 전쟁으로 희생당했습니다.¹ 물론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수에 비하면 통계적으로 대략 5%~15%수준입니다. 이를 두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희생은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권의 가치가 그 어느때보다 최고로 여겨지는 오늘날 조차도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유없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하지 않다고 단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인간들 끼리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보는 편 입니다. 수십만년 동안 생존과 번성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온 경험, 기술, 기질 등은 우리 DNA에 축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렵,채집시기 이후 인류 집단들 간의 경쟁은 개인내면의 내집단 편향성과 이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발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개체 수준에서 체격과 힘이 달리지만 타고난 인지,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서로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언어와 도구를 만들어 활용함으로써 경쟁을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신석기 시대를 지나며 지킬 것이 생기기 시작한 인류 집단들에게 협력과 공감능력은 주로 집단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했습니다, 반면, 우리의 영역을 위협하는 외부 집단에 대해서는 '넘어서야 하는', 나아가 '죽여야 하는' 대상으로 여가며 배타성과 공격성을 높여 나갔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인류 집단은 서로를 향한 칼과 총을 끊임없이 겨누어 왔습니다. 이러한 싸움은 처음엔 내가, 나아가 우리가 속한 집단이 살아남고 더 강해지기 위함이었지만 차츰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어가면서 우리만이 더 많이 갖고 더 잘 살기 위한 것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 - 상대와 나누지 않고, 독식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 뜯고 없애고자 달려드는 싸움, 이것은 끝나지 않는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 하게 만듭니다. 이로인해 지금까지 들여다 봤던 것 처럼, 수많은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고, 전쟁을 주도했다가 패배한 국가들에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실질적인 책임을 지게 했음에도 여전히 우리 앞에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들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만년 동안 우리 인류는 서로 간의 세력 투쟁에 집중한 나머지, 인간 외의 지구상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간이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대상 쯤으로 여기며 터부시 해 왔습니다. 이제 그들의 반란이 본격화 되고 있습니다. 온난화, 기상 이변, 전염병, 빈곤 등과 같이 인류를 위협하는 대상은 더이상 인류 스스로 만이 아닌 지구 생태계 전체로 확장되는 중입니다. 더욱이 이 문제는 우리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도 각 나라들은 여전히 팔짱끼고 이해득실을 따지며 손사레를 치는 중입니다. 경쟁이 오늘날까지 인류의 발전을 이끈 핵심 원동력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정복하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불어닥칠 가늠할 수 없는 재난들을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개체 단위의 인간은 보잘 것 없는 나약한 생명체 입니다. 아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언젠가 부터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히지 않을까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1. 스티븐 핑커 (2014),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김명남 역, 사이언스 북스. 참조
2. Bastian Herre (2024), “Millions have died in conflicts since the Cold War; most of them in Africa and intrastate conflicts” Published online at OurWorldinData.org. Retrieved from: 'https://ourworldindata.org/conflict-deaths-breakdown' [Online Resource].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