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회귀
**시내 유흥가**
7월 25일 오전 11시
목적지로 가던 중 시장길과 유흥가 양쪽 길에 나뉘어 있었는데, 평소대로 형원은 번화가 쪽을 택했다. 낮에는 시장 쪽이 사람이 많고, 밤에는 번화가가 번잡하여, 주로 운행이 용이한,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다녔기 때문이다. 그때, 켄타의 아내가 말을 걸었다.
“저기, 미안하네만 이 길 말고 다른 길로 가주시면 안 될까?”
“네?”
“이 길 말고 시장길로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가 영문을 몰라 잠깐 멈칫한 사이에 켄타가 그녀를 저지했다.
“음. 아니네. 그냥 이 길로 가지. 괜히 돌리고 뭐 하고 번잡스럽기만 하지.”
“아니 그래도 당신···.”
“괜찮소. 이제 다 끝났잖소. 걱정 마시오.”
영문을 몰라 형원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실은 독립군에게 납치된 이후 켄타는 악몽에 시달리는 등 그 사건이 큰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에 유흥가 쪽을 오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리고 입 잘못 놀리면 죽일 거란 협박까지 들었던 탓에 더욱 이곳을 지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이 유흥가 거리를 맞이했다. 떠나가는 길이라 그런지 걱정했던 것보다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 거리를 보면서 나름 추억에 잠겼다. 자신의 소중한 10년 가까운 젊음을 바친 이 도시. 철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든 술집과 도박장들.
‘저기서 기동대 놈들과 시비 붙었는데 신이치가 말렸었지... 진짜 싸웠다면 큰일이 났을 거야.. 한때 저기 일하는 아가씨에 빠져서 맨날 갔었는데··· 참 철이 없었구나.’
그렇게 과거의 이런저런 기억이 떠오르던 중, 갑자기 한 골목 안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꿈에서 계속 나오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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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의 회상**
휘청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켄타. 그는 골목으로 들어가 담벼락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 쪽에서 기척이 느껴져 그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한 남자가 어둠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술을 많이 드셨나 봐요.”
“이 놈! 놀라지 않았느냐! 봤으면 바로 인사를 해야지! 아주 혼이 나봐야 정신 차리겠느냐!”
많이 취하고 골목이 어두운 탓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고, 흐릿했던 그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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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돌려! 빨리! 야! 인력거를 돌리란 말이다! 지금 당장! 바로 경찰서로 가자!”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형원은 인력거를 멈추고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네? 기차역에 가셔야 하는 거 아니신가요?”
“그럴 일이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자. 내가 돈은 두 배로 주겠다.”
“네. 그러면 알겠습니다.”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형원은 경찰서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여보, 갑자기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기억이 났어. 그놈이 기억이 났어.”
“그 놈이라뇨? 알아듣게 좀 설명을 해보세요.”
“아, 진짜! 그놈 있잖아. 나 납치한 놈!”
“그게 어떤 놈인가요? 아시는 분이에요?”
켄타의 아내는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무슨 사연으로 경찰서로 가자 하는지 궁금했던 형원 역시도 귀가 쫑긋해졌다.
**통화시 기차역**
7월 25일 오전 11시
무단장에서 백야 장군을 비롯한 임시혁신의회 사람들이 탄 기차가 드디어 통화시에 도착했다. 그들은 많은 인파에 섞여 티 나지 않게 조심히 기차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장군님, 오늘따라 기차역에 관동군이 별로 없네요.”
이범석 장군이 동행하고 있는 김좌진 장군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런 것 같네요. 저도 방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수상합니다. 많은 인원이 모이는 자리라 신경 쓰이는데, 혹시 안전하게 일정을 미뤄볼까요?”
“음······”
백야 장군은 이곳저곳을 살피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다른 대원들과 눈이 마주쳤고, 은밀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상한 느낌이긴 하군요. 근데 이런저런 거 이상하다고 다 피해 가며 이 일을 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내 조국을 찾기 위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모일 수도 없었을 거고요.”
“네, 맞습니다. 장군님.”
“오늘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 사람들에게 좀 더 경계하고 조심하라 전해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이범석은 다른 대원들에게 백야 장군의 말을 전하러 그의 곁에서 멀어졌다. 그는 혼자 시내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수십 년간 독립군의 총지휘자의 자리에 서 있는 그였다. 그의 선택 하나하나에 수많은 동포의 생명을 지킨 적도 있었고, 반면 몇몇 형제들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만큼 고통스럽고 외로운 자리였다.
그는 쨍쨍 내려쬐는 해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직도 뜨겁구나, 뜨거워.”
한편, 이범석 장군은 백야 장군의 말을 단원에게 전파 요청하고 다시 그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한 일본인이 인력거꾼에게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돌려 돌려! 빨리! 야! 인력거를 돌리란 말이다! 지금 당장! 바로 경찰서로 가자!”
큰 소란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응시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력거의 방향이 달라졌고, 이는 범석의 방향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던 범석은 인력거꾼을 보고 나서 그에게 시선이 계속 머물렀다. 아주 오래전 자신이 따르던 누군가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인력거가 지나가고 범석은 다시 정신을 차려 김좌진 장군이 있는 쪽으로 갔다.
“다녀왔습니다. 단원들에게 계획대로 작전을 진행할 거라고 내용도 전달했습니다.”
“고맙소. 이제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 슬슬 들어가시죠.”
그들은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만두가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시내 골목**
7월 25일 오전 11시 15분
“기억이 났어. 그놈이 기억이 났어.”
“그 놈이라뇨? 알아듣게 좀 설명을 해보세요.”
“아, 진짜! 그놈 있잖아. 나 납치한 놈!”
“그게 어떤 놈인가요? 아시는 분이에요?”
켄타의 아내는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무슨 사연으로 경찰서로 가자 하는지 궁금했던 형원 역시도 귀가 쫑긋해졌다.
“아니, 왜 이걸 몰랐지? 괘씸한 놈. 내 손으로 그놈을 직접 총살형 시켜야겠어!”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놈이 누구냐니까요?”
“···.. 놈!”
이 말을 뱉으며 그의 얼굴엔 독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순간 인력거가 돌을 밟아 덜컹거리는 바람에 형원은 누구인지 자세히 듣지 못했다.
‘젠장. 누구라고? 뭐라 한 거지? 안 들렸는데.’
혹시 누군지 다시 말하지 않을까 형원은 둘의 대화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네? 그게 누군데요?”
“시내에 큰 만두가게 있잖아. 얼마 전에 신이치네랑도 같이 한번 갔었는데, 기억나? 거기 사장 놈.”
형원은 처음에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늙은이가 켄타를 납치했다고?
근데 생각해 보면, 독립군의 정보를 빼내려면 내부에서 핵심 업무도 수행해야 하니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럼 경찰들하고 바로 그놈 체포하러 갈 거예요? 그럼 기차 시간에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오늘 테러 집단 모임을 그 만두집에서 한다고 경찰 전체가 거길 급습한다더라고.”
“근데요?”
“이 정보를 준 게 그 식당 사장이란 게 문제인 거지. 그리고 조를 나눠 그놈들 은신처도 오늘 같이 공격한다 했는데···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불길해.”
켄타의 말을 다 듣고 형원은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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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집 가는 길 (회상)**
서장과 츠즈키는 형원의 인력거를 타고 가며 켄타의 납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그놈들이 뭘 물었다나?”
“정보원이 이 지역에 있는지를 물어봤답니다.”
“그래서 그걸 말했대?”
“네. 그때 자신은 죽지 않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더라고요.”
“이런 병신 새끼. 그걸 말하다니. 그게 다인가?”
“얼마 전에 잡힌 조선 놈들요. 처형당했다는 거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럼 김·········다···거···은?”
서장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을 건넸고, 그래서 이 내용이 형원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서장님, 조용히···.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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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거리 (현재)**
형원은 그때의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생각에 집중했다.
‘그럼 그때 놓쳤던 “김·········다···거···은?” 이라고 어렴풋이 들렸던 말은···. 김좌진의 김과 이곳 독립군 조직인 다물단의 다를 이야기하는 거였나?’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는 소름이 돋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달수가 알려줬던 백야 장군님이 오신다는 그 모임을 일본군들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은신처까지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니!
‘이것도 다 그 사장 늙은이가 알려준 거겠지? 개 같은 놈. 천하의 찢어 죽일 놈.’
그렇다면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 멍청한 새끼야! 빨리 가자니까 왜 멈춰서 멍 때리고 있는 것이냐?”
그러나 형원은 그 고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백야 장군님을 위험에서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마음이 급한 켄타는 꿈쩍도 안 하는 인력거꾼이 짜증 났다. 겨우 조선인 따위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도 그의 화를 돋웠다.
“이 천박한 조센징 새끼! 얼른 다시 출발하지 못해!”
켄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허리춤에 있던 총을 꺼내 그에게 겨눴다. 이를 본 형원도 욱하는 마음에 반발심이 생겨 켄타를 째려봤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이태준 (李泰俊, 1883~?)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다. 1910년 경 일본 유학 중 국권피탈을 계기로 귀국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광제의원을 설립하여 독립군과 한인 사회를 위한 의료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위원 겸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외교 활동에 참여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 정권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과 숙청에 연루되어 실종되었고, 이후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