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경고
**시내 골목**
7월 25일 11시 20분
“이 멍청한 새끼야! 빨리 가자니까 왜 멈춰서 멍 때리고 있는 것이냐?”
그러나 형원은 그 고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백야 장군님을 위험에서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마음이 급한 켄타는 꿈쩍도 안 하는 인력거꾼이 짜증 났다. 겨우 조선인 따위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도 그의 화를 돋웠다.
“이 천박한 조센징 새끼! 얼른 다시 출발하지 못해!”
켄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허리춤에 있던 총을 꺼내 그에게 겨눴다. 이를 본 형원도 욱하는 마음에 반발심이 생겨 켄타를 째려봤다.
“하~ 이 놈이 감히 날 째려봐?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냐?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총을 손에 든 켄타는 형원과 싸우기 위해 인력거에서 내리려 했다. 그때 형원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친구 놈한테 꿔주고 못 받은 돈이 생각났지 뭡니까! 그래서 그게 언제인지 이자까지 쳐서 얼마나 받아야 할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형원은 죄송하다고 연신 꾸벅였다. 상대가 넙죽 엎드리자 켄타도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는지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가 앉은 뒤에도 몇 번을 더 미안하다고 인사를 한 형원은 다시 인력거를 잡고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여기서 도망친다 해도 상대가 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멀리 못 가 다칠 수도 있다.
그는 앞쪽에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큰 시계탑을 봤다. 시곗바늘은 1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서까지 갔다가 만두가게로 간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백야 장군님을 비롯한 거기 모인 사람들은 위험에 빠질 게 분명하다. 이 상황을 어찌 모면해야 할까···. 형원은 아무리 고민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류허현의 작은 마을**
“이러! 어디여 어청거리지 말구서 쭉쭉 댕겨가자. 어! 이소. 올라서라. 어어. 돌뿌리를 다치면 메뿌리도 다쳐지구. 메뿌리를 다치면 돌뿌리도 빠져진다. 이러 어처! 어차!”
여느 때처럼 이곳에 모여 사는 다물단원들은 생계 및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가축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에 누가 왔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노동요를 부르는 등 여유롭게 각자의 할 일에 몰두할 뿐이었다.
반면, 멀리서 망원경으로 이를 지켜보는 일본군들은 마을을 한 번에 습격하기 위해 주변 산속에 숨어 있었다.
“장군님, 마을 주변 곳곳에 병력 배치를 마쳤습니다. 이제 공격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알았다. 시내 공격이 끝나면 바로 연락이 올 테니 기다려라.”
“근데,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면 안 되는 겁니까?”
“혹시나 여기 누군가 시내에 연락해서 그쪽 작전이 실패하면 안 되지 않느냐. 오늘 제일 우선순위는 김좌진을 잡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챠샤오빠오 근처 건물 옥상**
이곳도 류허현처럼 무지막지하게 많은 군인들이 만두집 주변 대부분의 건물에 은폐·엄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옥상에는 츠즈키와 만두집 사장이 같이 김좌진 장군 및 다물단원들이 언제 오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자 츠즈키는 초조함에 손톱을 자꾸 물어뜯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아무도 안 오는군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죠?”
“제가 따로 연락받은 건 없습니다. 한번 기다려보시죠.”
계속 보던 시계를 한 번 더 보며 그는 투덜댔다.
“조선 출신 사람들은 약속 시간에 일찍 일찍 안 가나 봅니다. 벌써 몇 시인데 아직 한 명도 안 보이고···”
“아무래도 모임이 모임이니만큼 조심스럽겠죠.”
“근데 혹시 들어가 계셔야 하는 건 아닙니까? 혹시 주인장이 없어 눈치채는 건 아닐지···”
“이전에 말했지만, 저는 그냥 이 조직에 후원만 하는 수준이라서요. 새벽에 음식은 다 준비하고 나와서 의심하진 않을 겁니다.”
이때 두 명의 사내가 주변을 조심히 살피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를 보며 츠즈키는 드디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오기 시작하는군요. 혹시 저 자들은 어디 사람이요? 김좌진 쪽? 아니면 다물단?”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조직은 점조직이라 사람들끼리 잘 몰라서요.”
이후 한두 명씩 계속 식당에 사람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김좌진 장군은 보이지 않았다.
“보시오. 지금 11시 반이 됐소. 근데 지휘관이란 사람이 아직도 안 오고. 이러니 조선 사람들이 개화가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때, 저 멀리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츠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시내 골목**
형원은 우선 있는 힘껏 달렸다. 최대한 빨리 켄타를 내려다 주고 만두가게에 가야 하는 방법뿐 없었기 때문에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길이 울퉁불퉁했고, 속도가 나다 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바퀴가 쿵쿵거리고 들썩여 너무 불편했다. 그들은 혹시나 인력거가 옆으로 엎어지지는 않을까 살짝 염려스러웠다.
“아!”
“이 놈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
그러나 형원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오히려 속도를 더 냈다.
“야! 아야! 흡! 이 새꺄. 너무 빠르다니까! 어. 야. 야!!!”
인력거가 방향도 바꾸지 않은 채 주택의 벽 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고, 이를 본 켄타는 깜짝 놀랐다. 그때였다. 형원이 잡은 인력거를 놓고 옆으로 있는 힘껏 뛰었다.
“어!! 엇!!!”
“꺄악!!!!!”
쾅!!!!
인력거는 그대로 벽으로 돌진했고, 손잡이가 벽에 닿는 순간, 속도의 관성에 의해 좌석이 위로 붕 하고 떠올라 뒤집어지며 바로 벽으로 돌진했다.
인력거는 박살이 났고, 켄타와 그의 아내도 바닥에 굴러 떨어지며 크게 다쳤다. 형원은 재빨리 켄타가 떨군 총을 집어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얼굴을 발로 찬 뒤 총구를 겨눴다.
“더 이상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말고 조용히 고향으로나 돌아가라.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다음번엔 바로 쏴버릴 테니까.”
이 말을 듣자 켄타는 예전 잡혀갔을 때 마지막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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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허현 낡은 창고 (회상)**
목소리가 굵고 낮은 한 남자가 경감 쪽으로 다가가 귀에 대고 조근조근 속삭였다.
“혹시나 기억이 나더라도 평생 묻고 사시는 게 나으실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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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거리 (현재)**
켄타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두려움에 떨었다. 절대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발설하고 만 것이다. 그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지려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많지 않은 형원은 바로 만두가게로 뛰어갔다. 방금 인력거에서 뛰어내리면서 발을 접질렸으나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지금 단 1초라도 지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발···. 장군님이 들어가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해야 돼··· 진처럼... 예진처럼··· 그렇게 되게 놔두지 않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챠샤오빠오 앞**
7월 25일 11시 30분
저 멀리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츠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자가 내가 그토록 잡고 싶었던 그 자구나.
“드디어 오는구나. 너의 건방짐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백야 장군은 이범석 장군과 같이 만두가게로 들어갔다. 이를 본 츠즈키는 흐뭇하면서도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순사에게 지시했다.
“퇴로를 맡은 병력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은 이제 조용히 앞쪽으로 집합하라 전달해라. 바로 쳐들어가겠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허은 (許銀, 1909~1997)
경북 구미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의병장 허위의 재종손녀이자 시인 이육사의 고모이다. 1915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뒤, 1922년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하였다. 이후 서로군정서의 후방 지원을 맡아 독립군의 의식주를 책임지며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다. 광복 후에는 독립운동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힘썼으며, 1995년 자서전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를 출간하였다. 정부는 그녀의 공훈을 기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나라사랑배움터, 경북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