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ㄷ어릴 때는 일기를 곧잘 썼다. 멋들어지게 썼다기보다는 즐겨 썼다.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이 좋았다.
하루동안 벌어진 마음속의 파장들이 그날의 나였다.
중, 고등학생 때의 기록은 이제 막 세상을 접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호기심은 경외를 낳고 끝도 없이 사랑의 기분을 선사한다. 고민 또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투정일 뿐이었다.
그래, 그때가 좋았지.
혼자일 때는 나를 되짚고 앞으로 나갈 여력이 있었다.
결혼 초 남편의 퇴사와 사업 실패는 일말의 감상도 남겨두지 않았다. 내 새끼 앞날과 당장 내일 먹일 이유식 거리가 걱정인 날들이었다.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을 접고 적당히 여유 있는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뻔한 소망이 어긋나 버렸다. 버티고 일어서면 잠시 좋았다 또 터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는 50을 넘겼고 아이는 이제 내 손길 없이도 제 갈길 잘 찾아가는 17살이 되었다.
어디에 놓고 오거나 숨기거나 누군가에게 준 적도 없는데 나의 3,40대가 날아가 버린 기분이다.
잃어버린 지점으로 돌아가자니 어딘지 모르겠다. 어쩌면 훨씬 이전에 자신을 버려놓고 살아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맞다. 그런 것 같다.
딸이 14살 되던 해, 문득 그녀의 나이가 부럽기 시작했다. 앞으로 딸이 만나게 될 청춘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니 예뻤다. 황홀할 지경으로 빛났다.
친구의 어릴 적 사진을 지금 보니 그리 예쁠 수가 없다. 밉게 나왔다며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사진이었다.
아름다웠던 한때가 분명 있었는데 그랬던 적이 없던 사람처럼 자신감을 잃은 채 살고 있다.
딸에게 나는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고, 남편에게 나는 어느 순간 마녀로 돌변한 사람이 되었다. 자주 만나는 동네 친구들에게 나는 그들의 자식과 같은 반인 아이의 엄마이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이고 자신과 적당히 맞는 사람으로 불린다.
나에게는 지금의 나 말고도 무수한 내가 있었다. 마치 없었던 것처럼 나조차 전부 잊어버리기 전에 채워 넣고 싶어졌다.
그냥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건, 사람, 장소, 감정 가리지 않고 끄집어냈다.
신기하게도 40년 전 기억들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사람 하나 떠오르면 집 한 채가 튀어나오고 소소한 사건하나에 십여 명의 얼굴들이 둥둥 떠다녔다. 260여 페이지의 기억 속에 내가 있었다. 수십 년 전의 나를 보면서 비로소 나를 알아가고 있다. 한때, 자신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비난을 거두어들이게 되었다. 지금처럼 자신을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나는 지금, 내가 좋다.
자신을 쓰는 일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누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겠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다정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말이다. 떠올리면 두 눈 질끈 감기는 흉흉한 이야기가 아닌 예뻤던 때를.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라고 구질구질한 사연이 없겠는가. 곱고 요망진 사연만 쏙 골라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낯 뜨겁지만 사비를 들여 책으로 남길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이 아니다.
기억이 깡그리 소멸된 먼 훗날, 볕이 잘 드는 창가 푹 꺼진 의자에 앉아 동화처럼 홀로 낭독할 생각이다.
아주 오래전 여름의 한낮을 사랑했던 소녀를 떠올리며.
Oneday .. Gary Moore
All I need is a Miracle .. Mike & The Mechanics
A Sky Fall of Stars .. Cold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