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와 달빛의 여왕
티티의 말을 들은 작은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턱을 쓰다듬었다. 행동을 거의 동시에 했기 때문에 쌍둥이들 같으면서도 표정은 다 달랐다.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떤 이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운지 눈빛을 반짝였으며, 어떤 이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다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티티를 도와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티티 앞에 빙 둘러서더니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끼리 무엇인가를 속닥거렸다. 어떤 건 말이 되고 어떤 건 안 되네, 어떤 건 너무 목적에 맞지 않고 또 다른 건 목적과 어긋나네. 한참이나 토론을 벌이던 그들은 의견이 정리되자 다시 티티를 마주 보았다. 빨간 모자를 쓴 작은 사람이 말했다.
“결론을 내렸어. 지금부터 우리가 길을 인도해 줄게. 우리 중 이 친구가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거든.”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은 연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의 옷깃을 쭉 끌어당겼다. 연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은 여러 사람 앞에 불려 나오는 게 익숙하지는 않은지 볼을 살짝 붉히다가도 티티와 마주하자, 얼굴에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가워. 내가 아는 사람이 네게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상상력이 기발하고 좀 엉뚱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가가 맡긴 의뢰를 가볍게 대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
“감사합니다. 그런 진지한 마음을 지닌 분이라면 제게 꼭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길 바랄게.”
연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을 앞장서기 시작했다. 티티와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따랐다. 티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열 명 정도가 되었기에 얼핏 보면 작은 행렬처럼 보였다. 연노란색 모자의 사람은 태블릿을 들고 지도를 찾아가며 열심히 걸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길을 헷갈리지 않도록 도왔다. 그리고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은 티티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걷던 일행은 도심을 지나다 서점 근처에 있던 카페에 도착했다. 티티는 작은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여왕님을 만났던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왕님을 그리고 있는데, 여왕님이 나타나셨어요. 이런 곳에서 여왕님을 만날 줄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엄청 놀랐죠. 마치 꿈 같았어요.”
“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야. 하지만 여왕님은 장관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가가기 힘들고 어려운 분이 아냐. 오히려 유쾌하고 때때로 장난기를 발휘하시기도 하는 분이라고 생각해. 장관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꾸 여왕님의 일부 특성만 부각하고 싶어 하지만 말이야. 그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이미지의 여왕님을 표현하지 않는 예술가를 특히 배척하는 경향이 있어.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렇군요. 왜 그러는 걸까요?”
“경제 장관의 입김이 제일 크지 뭐. 그 사람은 뭐든 돈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여왕님의 이미지가 우아하고 고급스럽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
티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제 장관이 자신을 배척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원하는 여왕의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어떤 실력을 지녀야 할지 가늠이 될 것 같으면서도 잘 안됐다. 어려운 이야기였다. 침울한 기억을 떠올리던 티티는 말을 잃고 말았다.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은 그녀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티티. 혹시 ‘밤의 도시’에 관해 들어본 적 있어?”
“‘밤의 도시’요?”
“그래. 옛날이야기든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사람들이 내는 소문이든 어디라도 좋으니 들어본 적 없어?”
티티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말한 개념을 듣거나 읽었던 적이 있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막상 생각하려니 처음에는 떠오르지 않았으나, 걸으면서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 보니 어릴 적 읽은 어느 시집에서 밤의 도시와 관련된 내용을 읽은 것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너무 희미한 기억이라 그것과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어릴 적 어느 시집에서 관련된 내용을 읽은 것같기도 하고 아닌 것같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지. 밤의 도시는 실존하지만, 낮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실존하는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낮의 도시라면, 제가 살아가는 도시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맞아. 너와 네 주변을 둘러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를 말해.”
“그럼, 밤의 도시는요? 어떤 곳이죠?”
“설명을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 그런데 기본적인 개념은 낮의 도시와 같아. 밤의 도시에서도 똑같이 사람들이 살아가. 한 가지 다른 점은, 낮의 도시와 달리 밤의 도시의 지도자는 달빛의 여왕님이라는 것일까?”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은 그것 말고도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가 하늘 높이 뜨면 낮의 시간이 시작되고, 하늘에 달이 뜨면 밤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 낮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달이 뜨기 전에는 밤의 도시를 볼 수 없다는 것과 밤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만날 수 없다는 것. 반면, 밤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낮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밤낮 상관없이 볼 수 있다는 것. 밤의 도시에서는 낮의 도시에서는 비현실적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 하지만 낮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어도 그저 꿈이나 공상이라고 치부해 버리곤 한다는 것. 이 때문에 낮의 도시 사람들은 밤의 도시가 실존함에도 그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어쨌든 네가 우리를 만난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우린 모여있는 걸 좋아해서 광장에서 주로 의견을 나누곤 하는데 오늘 마침 정기 모임이 있었거든.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키 큰 녀석들이 등산로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기에 그러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그 녀석들이 괴롭히던 게 티티 너였을 줄이야.”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두 사람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는데, 연노란색 모자의 사람이 발걸음을 점점 늦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 낡고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 다들 가던 길을 멈추고 저를 봐주세요. 목적지에 도착했거든요.”
그녀가 멈춰선 건물에는 ‘발자국 연구소’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