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와 달빛의 여왕
“다 왔어, 바로 여기야!”
연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이 간판을 가리키며 외쳤다. ‘발자국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간판에는 신발의 발자국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작은 사람들 중 몇은 여기 와본 적이 있다, 또 몇은 처음 와 보는데 이런 곳이었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티는 간판만 보고서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들어가서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막 가게에 들어서려는데 건물 뒤편에서 기다란 형체 하나가 휙 튀어나왔다. 티티와 작은 사람들은 순간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 그것도 잠시, 밝은 달빛 덕에 모두는 갑자기 나타난 형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키와 종잇장처럼 얇은 몸, 창백한 안색까지. 그는 키 큰 사람 중 하나였다. 등산로에서 티티와 만난 무리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모두를 둘러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 단체로 찾아오는 바보들도 있었나? 그러니까 이 가게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겠군.”
그는 빈정거리는 말을 남기고 몸을 휙 돌렸다. 연노란색 모자를 쓴 작은 사람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발자국 연구소를 제멋대로 판단하지 마!”
키 큰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고 건물 사이에 난 골목으로 사라졌다.
“저 녀석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건지. 신경쓰지 말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빨간 모자를 쓴 작은 사람이 티티에게 말했다. 티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조용하고 단조로웠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소파와 조촐해 보이는 카운터가 다였다. 카운터 옆에는 종 하나가 긴 줄에 매달려 있었다. 줄은 꽤 길었지만, 작은 사람들이 잡아당기기에는 짧았다. 티티는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종소리는 맑고 친근했다.
종을 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카운터 옆으로 난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머리는 곳곳이 희끗희끗했고, 수염은 그보다는 진한 회색이었다. 살짝 굽은 콧등 위에는 안경이 놓여있었는데, 도수가 꽤 높은지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같았다. 정말 무엇인가를 깊이 연주하는 듯한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카운터 앞에 도착하자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작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만, 보던 얼굴들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여기 이분과도 초면인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여기 작은 사람들께서 이곳을 소개해 주셨거든요.”
티티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고 있던 가운 앞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곳에는 ‘웨이 박사’라는 직함과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는 티티가 명함을 받아들자 처음 보는 작은 사람들에게도 차례차례 명함을 건넸다. 영업 하나만큼은 확실히 하는 듯했다.
순식간에 명함을 다 돌린 그는 모두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티티는 그를 곧장 뒤따랐고, 작은 사람들도 모두 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연구실로 보이는 가게의 위층은 아래층보다는 넓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연식이 오래된 듯, 걸어 다닐 때마다 삐걱거렸다. 벽면에는 진열장이 빙 둘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각종 크기의 신발과 및창이 가득했다. 그리고 진열장이 둘리지 않은 벽면 앞에는 커다란 연구용 책상이 놓여있었다. 책상 위에는 종이와 연필, 펜, 자, 컴퍼스 등 각종 필기구가 너저분히 늘어진 채였는데 아래층에 내려오기 전까지도 막 연구를 하고 있던 듯했다.
웨이 박사는 티티와 작은 사람들에게 오른편 진열장 앞에 놓인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낡은 소파 앞에는 소파만큼 낡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는데, 다리 하나의 못이 빠진 듯 균형이 살짝 어긋나있었다. 그는 의자를 하나 테이블 앞에 끌어다 앉으며 티티에게 질문을 건넸다.
“아까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어떤 것인가요?”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급히 찾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집을 뛰쳐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라. 혹시 찾고 있는 사람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가 하나도 없는 걸까요?”
“사실은요….”
티티는 웨이 박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거리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인식하게 된 순간부터 그가 갑자기 사라졌던 순간까지. 말을 하다 보니 다시 한번 옆에서 그의 연주를 진심으로 응원하지 않았던 사실이 후회되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마치며 웨이 박사를 바라보았다.
“이런 단서만으로 그 연주자분을 찾을 수 있을까요?”
“흠….”
박사는 얼마간 말이 없었다. 티티는 역시 어려울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긴,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사람을 대체 무슨 수로 찾는다는 말인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찾는 것이 기적일지도 몰랐다. 티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회사의 주소가 어디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 회사 주소라면 여기예요.”
티티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뜯어 쓰는 메모지에 펜으로 주소를 적어 건넸다.
“오호라, 여기로군. 이 근처에 있는 공원이란 말이지?”
박사는 안경을 살짝 치켜들며 주소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서서 티티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티티는 그를 따라 연구용 책상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주 낡은 브라운관 모니터가 놓여있었다. 모니터 화면 위쪽에는 지도로 보이는 화면이 떠 있었다.
“그러니까 우체국 근처 공원이라 이 말이지? 그렇다면….”
박사는 지도 상단의 검색창으로 보이는 곳에 우체국 주소를 넣었다. 주소를 넣은 다음에는 달력 아이콘을 클릭해 티티가 연주자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짜도 넣었다. 그러자 화면이 금세 우체국 주변 지형으로 바뀌었다. 화면이 바뀌자, 그는 돋보기 기능을 이용화 화면을 가장 크게 확대했다. 곧, 화면에는 공원이 나타났고 그곳에 찍힌 발자국들이 잔뜩 보였다. 티티는 발자국은 보이는데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해서 물었다.
“이 지도는 뭔가요?”
“내가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이에요. 세상 모든 곳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죠. 그런데 연주자가 서 있던 장소는 이쯤인가요?”
“아니요, 조금 더 위쪽이요. 여기쯤?”
“그렇군요. 조금 더 확대해 보죠. 연주자는 혼자고 관객은 언제나 한두 명이 다라고 했으니까….”
박사는 화면을 더 확대해 보더니 이내 연주자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을 찾아냈다.
“이거 같군요. 확실해요. 이제 이것과 같은 발자국을 찾아내면 연주자가 어디로 갔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나 빨리요?”
“그래요. 이렇게 하면….”
박사는 빠른 손놀림으로 달력에 날짜를 입력하고는 또 다른 창을 띄워 어떤 명령어 같은 것을 잔뜩 쳤다. 기다란 명령어를 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였으나, 명령어를 완성한 다음 화면에 뜬 모래시계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박사는 시간이 좀 걸릴 것같으니 티티에게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티티는 그의 말대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모래시계는 빨리 사라질 것 같다가도 또 뱅글뱅글 돌며 화면을 차지하다가 티티가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는 생각을 할쯤 사라졌다. 하지만 화면에 뜬 것은 ‘결과 없음’이라는 창이었다.
“이런!”
박사는 결과를 보며 책상을 주먹으로 콩콩 쳤다. 그러더니 한숨을 한번 내쉬며 티티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분석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사흘 뒤에 다시 방문해 주시겠어요?”
“네?”
박사의 말에 티티는 당황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을거라는 것도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 발자국 연구소를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녀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작은 사람들이 티티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대표로 말을 건 것은 발자국 연구소를 소개해준 연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이었다.
“티티, 걱정하지 마. 연구 결과가 나오면 우리가 이곳에 널 데려다줄게.”
“정말요?”
“그럼, 사흘 뒤 밤에 등산로 입구에서 다시 만나자.”
“감사합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고.”
티티는 작은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발자국 연구소를 나섰다. 물론 연구소를 떠나기 전 웨이 박사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사는 인사는 감사히 받겠지만, 지금은 분석이 더 시급하니 문밖까지 배웅하지는 못하겠다고 하며 곧장 자리로 돌아가 다시 분석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