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와 달빛의 여왕
어릴 적 티티는 울보였다. 밥을 먹기 싫어도 울고, 누군가가 귀찮게 해도 울고, 친구들이 장난을 쳐도 울고, 심지어 유치원에서 단체로 가는 캠핑이 싫어서도 울었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도 눈물은 쉽사리 마르지 않았지만, 울어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나 방에서 홀로 울 때는 있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울었다. 늪지대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었으나,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눈물을 흘려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티티는 그래서 울 수 있었다.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눈가의 물기를 닦아낸 건, 늪지대에 떠오르기 시작한 작은 거품들 때문이었다. 처음에 크기가 작았던 거품은 점점 커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해도 이상했다. 티티는 눈물이 고여 흐릿한 눈으로 거품을 살펴보았다.
제각각의 거품들은 늪에서 올라오는 족족 톡톡 터졌다. 늪지 아래에서 누군가가 숨을 쉬기라도 하는 것같았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저런 탁하고 숨 막히는 장소에서 생물이 살 수 있을까? 산다고 하더라도 생명력이 끈질기고 지독한 파충류와 같은 종류이지 않을까?
파충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린 티티는 등줄기가 서늘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탁하고 짙은 늪지대에 몸체가 거대한 파충류가 산다는 것을. 어쩌면 이곳에도 사는 것은 아닐까? 제발 그런 건 나타나지 않기를. 벌써 12월도 중반이 넘었는데 이미 동면에 들어갔기를. 그녀는 마음 속 깊이 소망을 되뇌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는 동안에도 거품은 계속 생겼다가 터지는 것을 반복했다. 정말 그곳에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일이 반복될 리 없지 않겠는가?
긴장감은 계속될 것이고 결말은 끔찍할지도 모른다. 무엇과 마주하든 도망칠 힘도, 의지도 부족하다. 주위를 둘러싼 상황은 비현실적이나, 넘어져서 다친 곳은 욱신거리기만 한다. 티티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악의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얼마 후 마주한 결과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한 단어로 압축하면, 엉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거품이 터지던 늪지대에서는 뭔가가 나오긴 나왔다. 당연히 생물이었다. 파충류는 아니었다. 늪지대 하면 떠오르는 몸통이나 꼬리가 긴 종류는 아니었다. 티티의 눈에 보이는 생물은 온몸이 동그랬고, 눈은 하나였다. 팔다리는 각각 두 개씩 달렸는데, 아주 길고 가늘었다. 팔은 제외하더라도 그 얇은 다리로 걸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잘만 걸었다. 동그랗고 커다란 몸체를 지탱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늪에서 막 나왔을 때는 몸에 진흙이 묻어있어 색을 구별하기 힘들었지만, 진흙이 아래로 흘러내리자, 생물의 본래 색이 드러났다. 밝은 노란색이었다. 갓 태어난 병아리와 비슷한 색이었다. 따스한 색 때문인지 다소 특이한 생물의 외형에도 티티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눈이 하나 달린, 노랗고 동그란 생물은 티티 쪽으로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생물의 몸통은 팽팽하게 분 풍선 만했다. 그것은 주저앉아있는 티티와 가까워지자, 처음에는 알 수 없는 말을 해댔다. 생물의 말은 ‘보글보글’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보글?”
티티는 생물의 말을 따라해 보았다. 그러자 생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해. 아직 입속에 진흙이 좀 남아있어서 더 정확하게 발음하진 못했지만.”
“뭐야, 말을 할 수 있어?”
“그럼. 나도 지적인 생명체인데 당연하지.”
“지적인 생명체라고?”
티티는 깜짝 놀랐으나, 그것이 곧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사과했다.
“미안, 조금 전까지 여기서 누군가를 마주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
“사과하지 않아도 돼.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어. 이런 진흙 속에서 누군가가 살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야. 그것도 개구리나 뱀, 물고기 같은 파충류나 어류가 아닌 존재가 살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겠지. 말까지 하는 건 더더욱.”
“네 말이 맞아. 난 뱀이라도 나올 줄 알았거든.”
티티는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네 이름은 ‘보글’이 맞는 거야?”
“아니, ‘보그’. 정확히 말하면 우리 종족은 ‘발리보그’라고 하는데 이름이 다 비슷해. 보그, 보글, 볼그 같은 식이지.”
“그렇구나.”
“응,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에 살펴보러 나왔어.”
“아, 그거 내가 그런 거야. 방해해서 미안.”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한밤중에 이런 늪지대에서 길을 잃었다면 무서울 만도 하지.”
“길을 잃은 건 아니야.”
“그러면 왜 여기서 울고 있었던 거야?”
“이야기가 좀 긴데 들어줄 수 있어?”
“그럼, 남는 게 시간인데.”
보그는 얇은 다리를 포개고 티티 앞에 앉았다. 바닥이 축축하긴 했지만, 함께 앉아있는 이가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했던 티티는 앉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를 처음 만났던 때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여왕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만나고 발자국 연구소의 웨이 박사의 도움으로 늪지대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물 흐르듯 털어놓았다. 보그는 다행히 그녀의 이야기를 지루해하지 않고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넌, 지금 이곳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의 흔적을 찾고 있는 거네.”
“그렇지. 여기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 사람이 정말 여기 온 게 맞을까? 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날 엉뚱한 곳으로 이끈 건 아니려나?”
“그건 아닐 거야. 한 가지만을 평생 연구한 사람들이 지닌 능력은 예상외로 대단할 수도 있거든. 웨이 박사라는 그 사람의 능력도 분명 그럴 거고.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이 좀 있어.”
“신경 쓰이는 것? 그게 뭔데?”
“발자국이 이곳에서 끊겼다는 것. 그게 제일 신경 쓰여.”
“왜?”
“왜긴, 우리 동족들 때문이지. 이 늪지대에는 나 말고도 다른 동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 우리 동족들은 지능이나 성격이 제각각이야.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마는 아무튼 그래. 대부분은 지능이 아주 낮고 말도 할 줄 몰라. 늪지대에 떠오르는 거품처럼 ‘보글보글’하는 소리만 내곤 하지. 그런 녀석들은 문제 될 게 없어. 그런데 지능이 높은 동족들은 그렇지 않아. 장난 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만나는 이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때로는 누군가의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
“그게 정말이야? 널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나는 동족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거든. 생각이 없이 살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삶은 질색이야. 물론, 아무도 날 이해 못하고 그래서 외롭기도 하지만 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어.”
보그는 한 개뿐인 커다란 눈동자를 끔뻑이며 말했다. 그의 몸통은 동그랗고 밝은 노란색이라 눈을 감으면 꼭 보름달처럼 보였다. 달은 세상에 하나뿐이기에 외롭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은 달을 기억했다. 어쩌면 보그도 그럴지 몰랐다. 티티는 그에게 물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은 어떤 건데?”
“지능을 지닌 동족들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겠지.”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데?”
“사람들의 길을 잃게 해. 그냥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이끌기도 하지. 그럼, 길을 잃은 사람은 영영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뭐?”
티티의 머릿속에 문득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길을 잃고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니. 그토록 무책임한 장난을 치는 존재들이 사는 곳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왔었다니. 만약 그가 보그의 일부 동족이 친 장난에 휘말려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면? 그러면 안 되었다. 절대로. 그가 길을 잃고 헤매게 놔둘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를 못 본 체하고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티티는 절박한 심정으로 보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