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와 달빛의 여왕
새해가 밝았다. 티티는 집을 나왔다.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오른손에는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녀의 부모님은 말했다. 그림을 다시 그리더니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하다고.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지도 모르니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나간다고 할 리가 없다고.
회사 사람들도 말했다. 잘 생각하라고. 이토록 안정적이고 월급이 제때 나오는 직장을 버리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치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현실은 잔인하고 길게 이어진다고. 우체국 국장은 사직서 수리를 보류할 테니 조금 쉬다 오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티티는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도 부모님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본인이 내린 결정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우체국을 그만두고 집을 나온 것이다.
한참을 걷던 그녀는 어스름이 될 무렵 발자국 연구소 부근에 다다랐다. 연구소 근처에서는 연노란색 모자를 쓴 작은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귀여운 흰 눈과 함께였다. 작은 사람은 그녀를 응원해 주었다. 흰 눈도 목소리를 높여 컹컹 짖었다. 무표정이던 티티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번졌다.
작은 사람과 헤어진 그녀는 다시 걸었다. 해가 지고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어느덧 그녀는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산속에 다다라 있었다. 오솔길과 낙엽, 솔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쭉 가다 보면 오르막이 나올 테지만, 짐을 잔뜩 든 채로 등반 할 수는 없었기에 완만한 길을 택했다.
산 둘레로 난 길을 걷던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어진 남색 하늘 위로 은은한 빛을 내는 달이 떠 있었다. 티티는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달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었다.
지름길이 아닌 만큼, 길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어쨌든 목적지는 있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보그와 만났던 늪지대 근처였다. 그곳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티티는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냈다. 바이올린 연주자를 찾기 위해 늪지대에 왔던 날, 달빛의 여왕에게 받았던 열쇠였다.
그녀는 오두막에 다가가 문 앞에 달린 자물쇠를 열었다. 문이 열리자,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된 탁자와 의자, 편안해 보이는 침대, 튼튼한 원목으로 만든 책상이 보였다. 티티는 오두막 안에 들어가 거실에 매달린 전등을 켰다. 은은한 불빛이 내부를 비추자, 공간이 한층 아늑하게 느껴졌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임에도 기억 속에 존재하던 곳인 것만 같았다. 티티는 짐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얼마간 휴식을 취한 그녀는 스토브로 다가가 물을 끓였다. 찬장에는 숲에서 난 재료로 만든 티백이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색이 가장 예쁜 티백을 머그잔에 넣고 물을 부었다. 시원하면서도 향긋한 미향이 주변에 은은하게 퍼졌다. 티티는 완성된 차를 탁자에 올려놓고는 캐리어를 열어 간식이 담긴 상자를 꺼냈다. 집을 나오기 전날 시내에서 산 파운드케이크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파운드케이크 두 조각을 올려 놓았다.
막 포크를 접시 앞에 놓았을 때였다.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티티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보그가 서있었다.
“오랜만이야, 티티.”
“보그, 얼른 들어와. 따뜻한 차랑 파운드케이크를 준비해 놨어.”
“파운드케이크? 맛있겠는걸?”
보그는 눈을 반짝이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티티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후, 둘은 케이크를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그는 티티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보그가 돌아간 후, 티티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공기에 살짝 섞인 숲의 냄새가 정말 기분 좋았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오두막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여왕이 티티에게 오두막 열쇠를 주었던 건, 그녀에게 어떤 직책을 제의하기 위해서였다. 티티가 제의받은 일은 늪지대의 관리인이 되는 것이었다. 관리인의 임무는 늪지대 옆 오두막에 살면서 길을 잃고 늪지대에 빠져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그들을 돕는 방법은 오롯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었다.
“내가 이곳의 관리인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늪에 가라앉지 않으면 좋겠어.”
티티는 작은 소망을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평균에서 멀어지는 것, 보통의 삶과 점점 연관성을 잃어가는 것. 나이도 웬만큼 든 주제에 철없고 치기 어린 선택밖에 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 어쩌면 그런 것들이 두렵기도 했으나, 그녀는 스스로 내린 선택을 절대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다른 삶은 있어도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을 살아감으로 증명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