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응
너와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네가 잘되야 내가 잘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너와 나를 분리시키고 서로 공격하기까지 한다. 너와 나는 하나라는 생각 아래 이런 상황 속에서 너뿐만 아니라 나는 잘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잘될 수 없는 이유를 한 가지 추가하고 싶다. 그 한 가지 사항은 무관심이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것이 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상대에게 관심을 주고 도와줘야지 장기적으로도 내가 잘된다.
나는 근육에서도 이 특징을 발견했다. 우리는 대게 특정 근육을 강화시키길 원하고 특정 근육은 강화시키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약화되어 작아지기를 원한다. 약화되어 작아지기를 원하는 근육으로 종아리 근육, 목근육, 승모근, 여성의 경우에는 다리 근육이 될 수도 있겠다. 특정 근육을 강화시키고 약화되길 원하는 것은 개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한없이 나열할 수도 있겠다.
어떤 근육을 강화시키고 어떤 근육은 약화되기를 바란 그 결과로 당신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었는가? 원하는 결과물를 얻었는데, 전에는 아프지 않았던 근육이나 관절이 현재 아프지는 않은가? 근육이나 관절이 아픈 이유가 특정 근육을 강화시키고 약화되길 바란 것만은 아니겠지만, 통증이 생기는 명명백백한 원인 중에 하나는 특정 근육은 강화되고 특정 근육은 약화되기 때문에 강해진 근육과 약해진 근육의 격차가 점차 커지기 때문이다.
내가 특정 근육은 강화되길 원하고 특정 근육은 약화되기를 바라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강화되기를 원한 특정 근육이 제대로 강화될 수 없다. 이유는 근육은 근육들끼리 서로 협력해서 운동을 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근육들 간에 협력 없이 효과적인 운동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특정 근육은 강화되고 다른 특정 근육은 약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더라도 같이 강화시켜야 한다.
구체적인 예로 설명해 보겠다. ’일반적으로‘ 엉덩이 근육은 강화시키고 싶어 하고 종아리 근육은 강화시키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엉덩이 근육이 작은 데 비해 종아리 근육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종아리 근육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면서 엉덩이 근육을 최대한 사용하길 바란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종아리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엉덩이 운동을 한다고 해서 엉덩이 근육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싫더라도 종아리 근육과 엉덩이 근육이 같이 사용해서 운동을 해야 엉덩이 근육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종아리 근육이 이렇게 커질 때까지 엉덩이 근육은 왜 커지지 않았을까? 그동안 엉덩이 근육이 해야 할 일을 종아리 근육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종아리 근육의 활동량이 급격히 많아지고 근육은 커진 것이다.
결론은 네가 잘되야지 내가 잘되는 것처럼 근육과 관절도 그렇다. 내가 싫어하는 근육과 관절이 잘 움직이고 강화되어야 내가 좋아하는 근육과 관절이 잘 움직이고 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