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지만 다육이는 키우고 싶어 #13
그 다육이와의 만남은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러 가려고 거실 불을 막 끄려던 찰나였다. 키친 카운터 위에 본 적 없는 종이컵과 그 위로 삐죽 나온 뭔가가 있었다. 세면대에서 이를 닦고 있는 남편의 등짝에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아, 봤어?"
의기양양하게 뒤돌아 보던 그였지만 내 표정은 밝지 못했다. 나는 다음 다육이는 키가 작고 촘촘한 에케베리아 종을 데려오려 마음먹고 있었다. 다육이가 힘들어하는 이 계절이 다 지나고 가을이 오면 말이다.
그런데 종이컵 안에는 상처투성이에 말라비틀어진 줄기를 단 다육이 하나와 4센티는 족히 넘을 듯한 커다란 다육 잎 두 개가 들어있었다. 하나는 이전에 주워온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남편은 어쩌다 주워온 다육 잎에 내가 기뻐하는 것을 본 뒤, 싸운 다음날에는 다육 잎을 주워오고, 혹시나 해 '이제 그만 주워와'라고 한 날에도 '주워와'의 반어법이라 생각해 또 주워오고, 그렇게 자꾸 주워왔다. 우리 집 다육이 바스켓은 금방 거리의 갱단에 장악되었다.
"이제 더워서 꺾꽂이도 안될 것 같은데 왜 가져왔어. 얘는 상태도 안 좋아 보이고 가위로 잘라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집 가위에 세균이 있는지 그거로 자른 건 다 죽었는데. 아, 얘네 어떻게 하지. 그러게 왜-"
가위로 잘라야 하는 건 작년에 대실패를 겪은 뒤라 더 자신 없었다. 불안은 곧 '왜 괜히 가져와서는'이라는 불평이 되었다. 미간에 내천자를 그린 식집사의 불만에 남편은 당황한 듯 보였다. 은혜를 갚으려 생쥐를 잡아왔는데 집사가 갖다 버리라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을 본 고양이 같은 표정. 남편의 말투가 이내 언짢아졌다.
"됐어. 그럼 버려."
"아아니,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애들을 어떻게 버려."
"그럼 내가 버릴게. 됐지?"
"아니이, 얘네도 생명이고 이것도 인연인데 좀..."
그제야 내가 말이 심했나 싶기도 하고, 다육이들한테도 미안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되려 혼난 사람도, 이제야 집사가 생기나 했는데 도로 버리느니 마느니 소리를 듣던 다육이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사과하고 날이 밝자마자 꺾꽂이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슬릿분을 준비했다. 모서리마다 슬릿이 들어가 있고, 사방에도 가로로 틈이 있어 물 빠짐과 통기성이 우수하며 뿌리가 엉키지 않고 자란다 한다. 하지만 이번에 쓴 프레스테라90(プレステラ90)을 선택한 이유는 10개에 327엔으로 화분 늘리기에 부담이 없고 전용 트레이까지 사면 통일감 있게 모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벌레로 죽이고 해에 태워 죽이기도 하면서도 약간 자신감이 붙었나 보다. 예쁜 도구에 눈이 가는 걸 보면.
다육이를 좀 더 자세히 보았다. 구글 렌즈로 검색해 보니 그랍토페탈룸 속으로 브론즈와 비슷한 색상을 가졌다 하여 일본에서는 브론즈히메(ブロンズ姫, 브론즈공주), 한국에서는 프리티라 불리는 아이였다.
목대 끝 죽은 뿌리들은 자생을 위해 노력했던 흔적일 것이다. 하지만 뿌리내릴 땅을 찾지 못하고 맨바닥에 굴려지며 죽음을 기다리다 남편을 만났겠지. 어젯밤엔 나에게 '상태도 안 좋다'는 폭언을 들었고.
여기까지 서사를 달아주자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 애정 어린 마음으로 (어쩌면 지금 프리티에게 가장 위협적일 수도 있는) 가위를 들고 싹둑. 자른 단면에 초록빛이 돌고 있는 걸 보니 아직 살아는 있나 보다. 잘라낸 부위가 꼬독꼬독 해질 때까지 잠시 그대로 두었다.
처음엔 발디머리 때처럼 물을 담은 병에 꽂아보았는데 (*물은 닿지 않을 높이로만 담았다) 날이 더워 랩에 물방울이 맺히길래 이 방법은 반나절만에 그만두고 흙에 꽂았다. 며칠 후 변화가 있었을까 해서 꺼내 보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기대만큼 실망도 커질 것 같아 프리티를 잊고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리티는 붉은 기도 가시고 아랫잎이 말라있었다. 아아, 올 것이 왔나. 이제까지 본 다육이의 죽음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잎으로, 그리고 점점 위로.
'결국 가나보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저가 알아서 죽을 때까지 그냥 두기로 했다.
그 순간, 다육 잎들이 뿌리를 틔울 때 본체의 영양분을 끌어다 쓴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단풍. 퍼플헤이즈 번식에 관한 유튜브를 보았을 때 '보라색으로 물든 상태에서는 잎꽂이가 어려우니 녹색 잎으로 하세요'라 했던 말도. 검붉은 프리티가 녹색이 된 것, 혹시 생장의 사인이라면? 마른 잎은 뿌리를 내리기 위한 영양보급책이었다면?
떨리는 손으로 프리티를 들어 올렸다.
한눈에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였지만 새하얀 뿌리를 확인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조심스레 원래자리에 돌려놓고 며칠 뒤에는 비슷한 크기의 다른 잎꽂이들과 함께 자라도록 유치원을 만들었다.
이 즈음의 프리티에게서는 붉은 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여름이 무르익으며 해를 너무 쬐었는지 잎 중간이 반투명한 노란색을 띠기도 해 물러 죽으려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잎이 두터워지고 탐스러운 광택이 돌기 시작하더니 (나는 이런 광택을 다육이가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여긴다)
흐린 날씨라 반짝이는 광택은 담을 수 없었지만 오늘도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2개월 반동안, 프리티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 집에 막 왔을 때는 우둘투둘 곰보 같은 얼굴의 미운오리새끼였는데 이제 완전히 백조다. 한번 생긴 흉터는 없어지지 않지만 잎을 키워 상처를 밀어내고, 또 새 잎으로 가린 프리티는 우리 집 다육식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이름 그대로 프리티 한 다육이가 되었다.
사실 프리티는 우리 집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운 다육이었다.
처음부터 다 말라빠진 줄기에 달린 채 버려져 있었고, 줄기를 자를 때도, 흙에 심고 나서도, 여름을 날 때도, 나는 프리티를 볼 때마다 '죽겠구나' 싶었다. 이만큼이나 많이 죽을 것 같아 보인 다육이도 또 없다. 그만큼 프리티의 식생(植生)에는 굴곡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프리티를, 프리티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름의 끝자락에 이런 감동을 맛보게 된 것이다.
또 이런 프리티의 변화를 통해 삶에서 마주하는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일, 용서한 일이라 하더라도 한번 생긴 마음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도려낼 수도 없다.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한다. 자려다가 이불킥을 하기도 하고 가끔씩 생각나 울적해지는 일도 있다.
그럴 때 이 친구를 떠올리려 한다. 고된 여름에도 상처를 안은 채 잎을 살찌우고 틔워내던 프리티처럼, 내가 가진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채, 매일을 과거의 아픔보다 더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며 지내다 보면, 아물지 않는 흉터가 더 나은 지금에 가리어지는 날도 올 것이고, 더 좋은 내가 되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프리티처럼, 프리티하게.
그런 희망으로 오늘도 살아나간다.
당신의 오늘도 프리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