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8개월 차, 군대 동원령을 선포하다.
군대 부분동원령 선포와 혼란스러웠던 그 당시 상황
2022년 9월 21일, 푸틴은 18~50세 예비군과 군 복무를 한 시민, 의료 분야 종사자 등 30만 명을 대상으로 군대 부분 동원령을 선포했다.
발표 한 시간 만에 러시아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항공권이 일시적으로 매진됐다는 뉴스가 뜨기도 했고, 러시아 각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국영방송사에서는 동원령 결정을 옹호하는 내용들이 열렬히 방송되기도 하는 등 각기 다른 반응들이 뜨겁게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러시아인으로서도 굉장히 어찌할 바 모르게끔 하는 처사였던 것이다.
침공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영광스러운 전쟁에 참전해야 마땅하다는 반응도 있었고, 푸틴을 옹호하던 사람들조차도 막상 멀쩡한 직장에서 일 잘하고 있던 내 아들이 전쟁에 끌려가서 죽을 수 있다고 하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지!'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동원령 결정이 푸틴 스스로에게도 참 이득될 게 없는 카드였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다. 본인을 지지하는 이들 일부를 등 돌리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다시 프로파간다를 통해 다시 기존 지지자들을 열심히 매수(?)하고 있지만 정치고 조국이고 뭐고 내 자식 빼앗아 간다고 하면 찬성할 부모가 많을까?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나 보다 싶기도 했다.
시위 시작의 계기가 되었던 부분동원령 발표
무엇보다 이 결정이 푸틴에게 이로운 카드가 아니었던 것은, 이 발표가 그간 참고 참았던 전쟁 반대자들의 목소리를 결집시키는 하나의 동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가 일어났는데, 발표 당일 저녁때 나도 모스크바의 주요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 근처로 에 중요한 일이 있어 가게 됐다. '참고 참고 또 참는' 러시아인들이었던 만큼, '설마 시위가 일어나려나'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 거리로 가보니 주변에 경찰차들이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겁주려고 하는 것인지, 아무 죄 없어 보이는 노숙인을 다소 폭력적으로 끌고 가려는 경찰을 눈앞에서 보았다. 무섭기도 해서 메인 도로로는 가지 않았지만, 그다음 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거리에서의 시위 영상과 경찰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시위참여자들을 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시위로 약 800명이 구금되었다고 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시위가 각 도시에서 일어났고 여전히 사람들이 체포되어 나갔다.
SNS에 올라온 시위 참여 러시아인들에게도 '전쟁 가려고 선 줄이냐?'라는 일종의 비꼬는 악플이 달리기도 하였는데, 새삼 미움과 악을 낳은 이나라 대통령이 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람으로서는 무고한 자기 가족을 죽인 게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할 테니 전쟁을 옹호하든 아니든 러시아인이라고 하면 얼마나 미울까 싶기도 했고, 본인이 일으키거나 지지한 전쟁이 아닌데도 악플을 보며 죄스러움에 잠 못 이루는 러시아인들을 옆에서 지켜보니 참 여러 감정이 겹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동원령 결정으로 인해 시위가 촉발되고 러시아에도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드러나기도 해서 내심 이런 목소리들이 수면 위로 더 떠오르기를, 하며 응원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도 Boyenkomat라고 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인데 군대 관련 업무를 하는 관공서가 있다. '군 입영 등록 사무소'라고 하자. 러시아 전역(레닌그라드지역, 모스크바, 오렌부르크, 하바롭스크 등)에 있는 군 입영 등록 사무소에서 에서 화염병을 투척하거나 방화에 의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동원령 이후 이 사무소에는 늘 경찰이 상주하고 있으며 펜스를 둘렀다. 그전에는 이 건물이 관공서인 줄도 몰랐는데, 이젠 '아 이제는 저기가 군 입영 등록 사무소구나'라는 걸 한눈에 알 수가 있다. 전쟁 반대자들의 분노가 하나둘씩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9월 30일 처음으로 푸틴 지지율이 80% 아래로 떨어졌다는 기사도 볼 수 있었다.
러시아 엑소더스와 현재
공식 통계자료는 당연히 없지만 현재 러시아를 탈출한 인구는 약 6-70만명이 된다고 한다. 내 주변만 해도 직접 아는 지인, 그리고 지인의 남자 형제들이 이미 러시아를 떠난 경우가 많다. 지지하지도 않는 전쟁에 끌려가서 죽기 싫다는 이유도 있고, 이 나라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힘들고, 권위주의자가 지배하는 나라에 발붙이고 살기 싫다며 떠난 사람도 많았다. 이 동원령으로 인해 사회, 인구적으로도 참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10월 17일 모스크바는 징집 중단을 선언했고,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동원령을 발동하고 있진 않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징집을 지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긴 하지만 이러한 파장이 있었던 만큼, 엄청난 군사적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동원령이 다시 발동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 내 반발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기는 하였지만, 이 모든 일들이 끝나서 동원령이 또 다시 떨어질까봐 걱정할 일도, 정말 떨어질 일도 없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