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by 이상역

오늘은 토요일이다.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평소보다 더 많이 오고 간다. 주말에 놀이를 가거나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도로에 차량이 붐빈다.


계절은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었다. 계절이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변해가는 것 같다. 며칠 전만 해도 아침저녁으로 무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에는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얇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계절은 시간을 따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데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더운 여름날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단풍나무도 어느덧 꼭대기부터 서서히 붉게 물들어간다. 사람만이 가을이 다가옴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나무나 바람도 가을이 다가옴을 알고 하나둘 변신을 서두른다.


계절은 소리 없이 바람을 따라 스며들고, 바람은 이곳저곳 빈틈을 노리며 사람들 곁으로 가을을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계절의 바람을 타고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가는 것도 가을이 빨리 오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가을은 이미 그런 이치를 알고 있는데 나만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간다. 누군가 인생은 하룻밤의 여인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을이 다가오면 하룻밤이 낯선 여인숙처럼 다가오고 삶은 고독의 밤을 향해 몸부림을 치는 계절이다.


오늘이 가면 계절은 팔월 말로 접어든다. 팔월이 가면 구월로 접어들고 구월에 한가위를 보내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다.


한해를 살아오면서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날짜만 빠르게 흘러간다. 가을이 다가오면 무언가 수확물을 내어놓아야 하는데 고민이다.


올해는 연초부터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가을의 수확기가 다가오자 성과로 내밀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삶이란 그런 것인지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일 년을 충실하게 보내며 살자고 약속했는데 언제나 가을이 되면 남길 것이 없다. 특히 가을이 다가오면 손에 든 수확물이 하나도 없을 때 삶은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봄과 여름에는 나름 충실하게 보내다가 결실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면서 지난봄과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살아왔는지 근본적인 문제가 다시 고개를 내민다.


삶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까지 빈손 타령만 해야 할까. 방하착(放下着)이란 손을 밑에 둔다는 것으로 꽃을 공양했다는 집착과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탐욕을 버림으로써 무소유를 통한 사람의 자기 회복을 구한다는 의미다. 가을에는 삶에 대한 방하착(放下着) 연습이나 부지런히 해두어야겠다.


직장에서 공로연수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직장에 열심히 다니면서 일을 해왔다. 이제는 그런 일상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서 쉬고 싶다.


내년에는 아침에 출근하는 곳도 퇴근하는 길도 직장인이란 자긍심과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확 줄어들 것이다. 직장에서 보내던 평범한 일상을 내려놓고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가을은 지난봄과 여름에 대한 땀과 노력에 대한 성과를 거두는 시기다. 그리고 겨울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이듬해에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직장에서 공로연수를 가는 것도 그동안 직장에서 흘렸던 땀과 노력을 수확하고 새로운 것을 준비하라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간 이루어 온 삶의 결실과 수확을 통해 사회인이 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서 인생을 살아가라는 일종의 훈련기간이다.


올 가을에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새로운 꿈과 도약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평생 짊어졌던 무거운 밥벌이를 어떤 방법과 방식으로 내려놓을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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