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의 사내는 자신의 망원경을 덮개로 덮었다. 성도 위에서 맹렬히 타오르던 두 개의 별은 이제 완전히 그 빛을 잃었다. 하나는 대서양의 외로운 바위섬 위에서 스러져 갔고, 다른 하나는 불타는 도시의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재가 되었다. 129년의 간극을 두고 시작된 기이한 평행의 궤도는 마침내 비극적인 종착역에 도달했다.
사내는 낡은 양피지 위에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역사를 만들려 했지만, 결국 역사의 법칙에 삼켜졌다. 그들은 운명을 지배하려 했지만, 결국 운명의 가장 충실한 도구였음이 증명되었다. 그들의 야망은 유럽을 불태웠고, 그들의 몰락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질문은 영원히 메아리친다. 인간의 의지는 위대한가, 아니면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 한낱 미물에 불과한가?"
그들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신화의 시작이었다. 한 명은 비극적인 낭만주의 영웅으로, 다른 한 명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마로 기억될 터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거나 침을 뱉겠지만, 누구도 그들의 이름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129년.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사내는 답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관측하고 기록할 뿐이었다. 우주의 거대한 시계는 째깍거리며 다음 메아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또 다른 시대에, 또 다른 두 영혼이 같은 궤도를 그리며 타오를 그날을.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야망과 어리석음이 반복될 뿐이다.
사내는 천문대의 문을 열고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마셨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세상은 두 괴물이 사라진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그림자는 너무나도 길고 짙어서,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세대의 하늘 위에 어른거릴 것이었다. 메아리는 멎었지만, 그 울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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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10월 1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마지막 왕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HMS 노섬벌랜드 호의 갑판에서 내려다본 세인트헬레나 섬은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 한가운데, 망망대해에 고립된 검은 화산암 덩어리. 문명 세계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이곳은 무덤이다."
그는 자신을 감시하는 영국 장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거처로 정해진 롱우드 하우스는 고원의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위치한 낡은 농가였다. 집은 쥐와 흰개미가 들끓었고, 벽지는 축축한 기후 때문에 썩어가고 있었다. 유럽을 호령하던 황제의 마지막 궁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섬의 총독인 허드슨 로 경은 편협하고 의심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을 '보나파르트 장군'이라고 부르며 그의 황제 칭호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편지를 검열하며 사사건건 그를 모욕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쟁은 이제 전장이 아닌, 기억과 서사를 지배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로, 자신의 실패를 운명에 맞선 영웅의 비극적인 투쟁으로 기록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그의 곁에는 그를 끝까지 따른 몇몇 충신들이 있었다. 라스 카즈 백작, 몽톨롱 장군, 베르트랑 장군, 구르고 장군. 그들은 나폴레옹이 구술하는 말을 받아 적는 역사가이자, 그의 마지막 청중이었다.
매일 저녁, 롱우드 하우스의 식탁은 작은 궁정으로 변했다. 나폴레옹은 저녁 식사 후 몇 시간이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툴롱의 포성, 이탈리아의 눈부신 승리, 이집트의 신기루, 아우스터리츠의 태양, 그리고 모스크바의 화염과 워털루의 진흙탕까지. 그의 이야기는 때로는 영웅의 서사시였고, 때로는 교활한 정치가의 변명이었으며, 때로는 실패한 인간의 깊은 회한이 담긴 독백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데 인색했지만, 종종 깊은 통찰을 드러내기도 했다.
"러시아 원정은 내 가장 큰 실수였다. 만약 내가 스몰렌스크에서 멈췄더라면... 하지만 야망은 나를 눈멀게 했지."
"워털루... 그날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내 안의 별이 빛을 잃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 혁명의 원칙, 즉 평등과 능력주의를 유럽 전역에 전파한 해방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봉건주의의 낡은 사슬을 끊고, 법전을 통해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혼란 속에 질서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독재자가 아니라, 혼란을 막기 위해 잠시 고삐를 쥐어야만 했던 구원자였다고 항변했다.
"나는 혁명의 혼돈을 종식시켰다. 나는 혼돈을 질서로 바꾸었고, 피 흘리는 상처를 씻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로 나는 정당하게 보상받았다."
라스 카즈가 기록한 '세인트헬레나 회상록(Le Mémorial de Sainte-Hélène)'은 그가 죽은 뒤 출판되어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나폴레옹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영웅, 즉 '프로메테우스'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그는 압제자들에게 맞서 인류에게 자유의 불을 가져다주려다, 질투에 찬 신들(유럽의 군주들)에 의해 바위섬에 묶인 순교자가 되었다. '나폴레옹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화 뒤의 현실은 비참했다. 그의 건강은 습한 기후와 단조로운 생활, 그리고 계속되는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는 간 질환과 위궤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영국인들이 자신을 독살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1821년 봄,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그는 상세한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옛 부하들과 프랑스의 도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다.
"나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마호메트나 모세처럼, 이 세상에 새로운 종교를 세우고 싶었다... 나의 소망은 내 유해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프랑스 국민들 사이, 센 강변에 묻히는 것이다."
5월 5일, 폭풍우가 몰아치는 오후였다. 의식을 잃은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몇 마디 단어를 내뱉었다. "프랑스... 군대... 군대의 선두... 조제핀..." 그의 마지막 생각은 그의 삶을 지배했던 두 가지, 즉 군대와 사랑을 향해 있었다. 오후 5시 49분, 유럽을 뒤흔들었던 거인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영국인들은 그의 유해가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세인트헬레나의 제라늄 계곡, 버드나무 아래 이름 없는 무덤에 묻혔다. 그의 무덤은 그가 사랑했던 프랑스 군복의 녹색으로 칠해졌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19년이 흐른 1840년, 프랑스의 '시민왕' 루이 필리프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영국 정부와 협상하여 그의 유해를 프랑스로 봉환하기로 결정했다.
1840년 12월 15일, 나폴레옹의 유해는 개선문을 지나 파리 시민들의 눈물과 환호 속에서 마지막 행진을 했다. 그의 관은 앵발리드(상이군인 연금 병원)의 돔 아래 안치되었다. 코르시카의 이방인 소년은 마침내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센 강변에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그는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기억의 전쟁에서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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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20일,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56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의 마지막 생일 파티는 베를린 총리 관저 지하 10미터 아래의 총통 벙커(Führerbunker)에서 열렸다. 축하객은 그의 오랜 동지들이었던 괴링, 히믈러, 괴벨스 등 나치당의 최고위 간부들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장례식장과 같았다.
벙커 밖에서는 그의 '천년 제국'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련군의 포탄이 베를린 시내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포격의 진동이 벙커의 콘크리트 벽을 뒤흔들었다. 히틀러는 더 이상 유럽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이 될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 벙커의 수감자에 불과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는 등을 심하게 구부린 채 발을 질질 끌며 걸었고, 왼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그의 눈은 충혈되었고, 얼굴은 파킨슨병과 약물 남용으로 인해 가면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광적인 불길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현실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는 매일 작전 회의를 열고, 지도 위에 존재하지 않는 군대를 움직이며 불가능한 명령을 내렸다. 그는 펠릭스 슈타이너 장군이 이끄는 '슈타이너 분견군'이 베를린 북쪽에서 반격을 가해 소련군의 포위망을 분쇄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슈타이너의 공격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베를린은 구원받을 것이다!"
하지만 슈타이너 분견군은 이름만 거창할 뿐, 소년병과 노인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반격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4월 22일 작전 회의에서, 히틀러는 슈타이너가 공격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그 순간,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는 평생 그렇게 격렬하게 분노를 터뜨린 적이 없었다. 그는 장군들을 향해 배신자, 겁쟁이, 거짓말쟁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고, 입에서는 거품이 튀었다.
"전쟁은... 졌다! 하지만 신사 양반들, 만약 당신들이 내가 졌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은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베를린에 남겠다! 그리고 여기서 최후를 맞이하겠다! 나를 따르고 싶지 않은 자는 누구든 떠나도 좋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것은 그의 패배 인정 선언이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은 얼어붙었다. 벙커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절망으로 뒤덮였다. 괴링과 히믈러는 각자 벙커를 떠나 연합군과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 히틀러는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을 모든 직위에서 박탈하고 반역죄로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가장 충실했던 심복들마저 그를 배신했다.
그의 곁에는 이제 그의 충견이자 선전상이었던 요제프 괴벨스, 그의 비서 마르틴 보어만, 그리고 그의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만이 남았다.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뮌헨에서 날아와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4월 29일 새벽, 포성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가운데 히틀러는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렸다. 판사가 주례를 보고 괴벨스와 보어만이 증인이 된, 기괴하고 음산한 결혼식이었다. 신부 에바 브라운은 검은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개인 비서에게 정치적 유언과 개인적 유언을 구술했다.
그의 정치적 유언은 조금의 반성도 없는, 증오와 자기 변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전쟁의 모든 책임을 '국제 유대인'에게 돌렸다.
"수세기가 지나가더라도, 독일 도시와 기념물에 대한 증오는 결국 이 모든 비극에 책임이 있는 진정한 범죄자, 즉 국제 유대인과 그 조력자들에 대한 증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되니츠 제독을 지명하고, 모든 독일인에게 "인종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모든 민족의 독(毒)인 국제 유대인에게 무자비하게 저항할 것"을 명령했다.
그의 개인적 유언은 에바 브라운과 함께 죽음을 선택했음을 밝히고, 자신들의 시신을 화장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4월 30일 오후, 히틀러는 벙커의 남은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했다. 그리고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신의 서재로 들어갔다.
오후 3시 30분경, 벙커 복도에서 한 발의 권총 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보어만과 괴벨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소파 위에는 두 구의 시신이 있었다. 에바 브라운은 청산가리를 마시고 쓰러져 있었고, 히틀러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그의 발밑에는 그의 발터 PPK 권총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충견 블론디는 이미 전날 청산가리 캡슐의 독성을 시험하기 위해 희생된 뒤였다.
유언에 따라, 두 사람의 시신은 담요에 싸여 총리 관저의 정원으로 옮겨졌다. 정원은 소련군의 포격으로 온통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의 부관들은 시신 위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불길이 치솟는 동안, 그들은 벙커 입구에 서서 마지막 나치식 경례를 올렸다.
천년 제국을 약속했던 총통의 마지막은 그렇게 허무했다. 그의 제국은 12년 4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그의 시신은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뒤, 소련군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고 비밀리에 묻혔다가 몇 번의 이장을 거쳐 결국 완전히 소각되어 강물에 뿌려졌다. 그는 자신의 신화가 우상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흔적을 지웠지만, 그가 남긴 증오의 유산과 수천만 명의 죽음이라는 상처는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으로 남았다.
나폴레옹은 죽어서 신화가 되었지만, 히틀러는 죽어서 악마의 상징이 되었다. 129년의 간극을 두고 시작된 두 개의 운명은 그렇게 정반대의 결말로 막을 내렸다. 하나는 앵발리드의 화려한 석관에, 다른 하나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그러나 그들이 남긴 그림자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하늘을 떠돌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