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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을 보냅니다.

by 차고기


엄마는 아기가 된 것 같았다.




모든 동작은 느리고 서툴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색하기만 했다.

눈물이 투두둑 떨어질 것 같은 걸 애써 숨겼다.

엄마 얼굴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더 짙어질까 .




이 와중에도 엄마가 가꾸는 화분들은 여전히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아,

본연의 색을 잃었을 거란 생각은 괜한 걱정이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폴리셔스였다.

내가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엄마가 선물해 줬던 식물.


거의 십오 년을 함께했다.

제법 덩치도 커졌다. 가지가 웃자라 무게를 견디지 해 휘어졌을 때. 나는 용감 무식함을 발휘했었다.

늘어진 가지를 으로 부러뜨렸다.

고수 식집사들이 알면 뜨악할 일 일지도 모르겠다.


꺾은 가지는 물꽂이란 걸 해봤다.

물에 가만히 꽂아 두기만 했을 뿐인데,

기특하게도 뿌리를 풍성내려줬다.


폴리셔스에서 꺾은 주니어 폴리셔스는 연히 엄마가 았다. 주니어 폴리는 성장기 아이 마냥 쑥쑥 자랐다. 만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곤 했으니까. 때깔은 또 어떻고. 찐 초록에 반짝반짝 윤기까지 돌았다.


누구를 식집사로 두느냐가 이리도 중요한 일이 줄이야.

우리 집 폴리와 참으로 비교되는 주니어 폴리였다.


엄마네 주니어 폴리 vs. 우리 집 폴리




엄마는 베란다가 없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몇십 개나 되는 화분들을 모두 정리했다.

심지어 더 이상 화분은 들지 않겠노라 언까지 했다.


세월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

마의 하루는 지루만치 길기만 했다.


기나긴 하루,

식들 전화 한 통이 반갑기만 한 엄마였다.

그렇다고 마냥 전화기만 붙들고 수는 없는 노릇. 엄마는 그렇게 다시 식물 가꾸기에 취했다.


엄마의 외로운 시간이

식물을 다시 키우게 한 셈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외로움 식물을 더 잘 키게 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진심을 다했으니까.


식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한 손길을 보내고, 이쁘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으니까.

비법이라면 이것이 엄마만의 비법이었다.





한 발짝 내딛기 힘겨운 지금.

엄마에게 가을 산책은 엄두도 낼 일이다.

대신 엄마는 걸음마 배우는 아기처럼

천천히 한 발씩 떼어 화분이 놓인 거실을 걷는다.


이것이 지금을 견디는 엄마만의 방법이다.





엄마 사랑 듬뿍 받고 있는 초록이들


가을이 성큼 왔지만

엄마네 거실 정원은 여전히 푸릇하기만 하다.


가을이 훌쩍 가 버리기 전,

지금은 산책길이 된 거실에 국화 화분 하나 놓아 드려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발랄한 노란색으로다가.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지천인 곳에서

영상 통화라도 하면 더 좋겠다.




엄마에게 가을바람 보내고 싶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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