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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0. 2023

집 밖으로 뛰쳐나온 여자가 마주한 것들

 

어느새

가을가을한 바람은 창문을 넘어 집 안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자를 집 밖으로 끄집어냈다.





만삭 몸무게를 가뿐히 뛰어넘은 그녀는, 

현재 다이어트 중이다. 식단은 물론 운동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초반부터 체중 감량에 욕심을 냈던  확실히 무리였다. 혹독한 러닝은 여자의 두 무릎에 파스 훈장을 달게 했으니까. 


운동을 주춤하고 있을 즈음,

여자는 오늘 같은 날씨라면 바깥 운동도 쾌 근사할 거란 결론을 내렸다.


자는 러닝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매며 집을 나섰다.

파스 훈장 덕분에 뛰는 대신 빠르게 걷기를 선택했다. 목표 걸음 수는 딱 만 보.  바람과 햇살은 기분 좋을 정도로  완벽했다.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 가지 못해 여자를 붙드는 것이 있었다. 밤새 누가 이렇게 솔방울을 똑똑 따 놓은 건지. 

바닥 온통 솔방울 천지였다. 여자는 솔방울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의문스러운 광경을 핸드폰에 담았다.

솔방울, 어쩌다 바닥인지 너무 궁금해.



분을 걷자 하니 이번에는 맥문동이 그녀를 반겼다.

찐 초록 싱싱한 잎과 쪼르륵 좁쌀같이 달린 보라색 꽃. 여름 땡볕에도 지칠 줄 모르는 맥문동을 볼 때마다  여자는 매력에 푹 빠지곤 했다. 언젠가 자기만의 정원을 갖게 된다면 꼭 저 식물을 심어 보겠다 했다. 여자는 맥문동의 쨍한 보랏빛이 고스란히 잘 담길지 조바심을 내며 찰칵 사진을 찍었다.

이 더위에도 지칠줄도 모르다니. 기특해.



여자는 또다시 걷기 시다.

시원하게 쭈욱 뻗은 길을 신나게 걷고 있을 때, 하마터면 스텝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메뚜기로 추정되는 생명체가까스로 피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뒤를 돌아다봤다.

그것은...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나온 잡초였다.

네가 메뚜기인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ㅎㅎㅎ



잡초를 메뚜기로 착각하다니.

여자는 요즘 부쩍 침침해진 눈을  끔뻑거리며, 잡초를 들여다 보고 또 보았다. 조금 전 흠칫 놀라던 자기 모습에 낄낄 웃음이 나왔다. 다시는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지 하며  눈을 부릅뜨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걷다 보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턴 해야 할 목적지에 달았다. 여자의 목덜이마는 이미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 단지 내 분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식혀 주었다. 여자는 땀을 식히며, 물멍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분수 사진도 찍었다.

가을에 분수가 왠말이야 했는데. 덕분에 고마웠어.



그즈음 무릎 뒤 편이 스멀스멀 간지러웠다.

더듬어 보니 피부가 오돌토돌했다. 얼룩덜룩한 붉은 반점도 보였다.


몇 년 전 햇빛 알레르기로 고생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선크림을 다리만 쏙 빼놓 바른 센스 하고는.


덕분에 당분간은 실내 운동 당첨이었다.

여자는 완벽한 가을 날씨를 맛보았기에, 앞으로 전개될 실내 운동이 아쉽기만 했다.



지만 뜨거운 낮 뒤엔 선선한 밤도 오기 마련.


여자는 저녁 식사 후에도  근처 수변공원을 찾아 나섰다.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은 여기 다 와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카메라에 그 순간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은  여기로 다 놀러온 듯.



여자는 오늘 산책이 꽤나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집 밖에 오래도록 머무른 덕에 자연스레 숙면도 따라올 것 같았다. 불면의 나날 속, 이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다.



가을,

발길을 멈춰 세울 뭔가가 곳곳에 숨어있다.

집 밖으로 뛰쳐나와 자기만의 보물을 찾아보자.

















main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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