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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조각들 그림이 되다
15화
가을바람을 보냅니다.
by
차고기
Oct 5. 2023
엄마는 아기가 된 것
같았다.
모든 동작은 느리고 서툴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색하기만 했다.
눈물이 투두둑 떨어질 것 같은 걸 애써 숨겼다.
엄마 얼굴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더
짙어질까
봐
.
이 와중에도
엄마가 가꾸는 화분들은 여전
히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아,
본연의 색을 잃었을 거란 생각은 괜한 걱정이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폴리셔스였다.
내가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엄마가 선물해
줬던 식물
.
거의 십오 년을 함께했다.
제법 덩치도
커졌다. 가지가 웃자라
무게를 견디지
못
해 휘어졌을 때. 나는 용감 무식함을 발휘했었다.
늘어진 가지를
손
으로
뚝
뚝
부러뜨렸다
.
고수 식집사들이 알면
뜨악할
일 일지도 모르겠다.
꺾은 가지는 물꽂이란 걸
해봤다
.
물에 가만히 꽂아 두기만 했을 뿐인데
,
기특하게도 뿌리를 풍성
히
내려줬다.
폴리셔스에서
꺾은
주니어 폴리셔스는
당
연히 엄마가
맡
았다. 주니어 폴리는 성장기 아이 마냥 쑥쑥 자랐다.
만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곤
했으니까
. 때깔은 또 어떻고. 찐 초록에 반짝반짝 윤기까지 돌았다.
누구를 식집사로 두느냐가 이리도 중요한 일이 줄이야.
우리 집
폴리와 참으로 비교되는
주니어 폴리였다.
엄마네 주니어 폴리 vs. 우리 집 폴리
엄마는 베란다가 없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몇십 개나 되는 화분들을 모두
정리했다.
심지어
더 이상
화분은 들
이
지 않겠노라
선
언까지
했다
.
세월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
만
엄
마의 하루는 지루
할
만치 길기만
했다.
기나긴 하루
,
자
식들
전화 한 통이 반갑기만 한 엄마였다.
그렇다고 마냥 전화기만 붙들고
살
수는 없는 노릇
.
엄마는
그렇게
다시 식물 가꾸기에
심
취했다.
엄마의 외로운 시간이
식물을 다시 키우게 한
셈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외로움
이
식물을 더 잘 키
우
게 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진심을
다했으니까.
식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
정
한 손길을 보내고, 이쁘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으니까.
비법이라면
이것이
엄마만의
비법이었다.
한 발짝 내딛기
도
힘겨운 지금.
엄마에게
가을
산책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대신
엄마는
걸음마 배우는 아기처럼
천천히 한 발씩 떼어 화분이 놓인 거실을 걷는다.
이것이 지금을 견디는 엄마만의 방법이다.
엄마 사랑 듬뿍 받고 있는 초록이들
가을이 성큼 왔지만
엄마네 거실 정원은 여전히 푸릇하기만 하다.
가을이 훌쩍
가 버리기 전,
지금은 산책길이 된 거실에 국화
화분 하나 놓아 드려야겠다
.
엄마가 좋아하는 발랄한
노란색으로다가.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지천인 곳에서
영상 통화라도 하면 더 좋겠다.
엄마에게 가을바람 보내고 싶
은
오늘이다.
keyword
화분
가을
바람
Brunch Book
생각의 조각들 그림이 되다
11
키울 게 없어 이것을 키워봤다.
12
이게 진짜 나라고?
13
올여름, 차를 선물했습니다.
14
집 밖으로 뛰쳐나온 여자가 마주한 것들
15
가을바람을 보냅니다.
생각의 조각들 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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