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서랍 속, 에피소드 하나
해산 후 일어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봅니다.
당시 남편과 함께 자영업을 했는데, 직원도 알바도 없이 하는 소규모 자영업이라, 해산 전날까지 발이 퉁퉁 붓도록 일을 해야 했습니다. 새벽에 진통이 와서 남편을 깨웠고, 택시를 불러 타고 다니던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문이 닫혀 근처의 혜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즉석 제과점의 특성상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이는 시어머니께 와 주십사 전화를 걸고는 곧장 가고 한참 후 시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요즘에야
산부인과 검진도 부부가 같이 가고, 태아 사진에, 태명까지 지어가며 태어날 날을 고대하는 게 당연한
순서인 데다, 분만 시에도 아빠가 참여하여 손수 탯줄을 자르고 하는 추세지만, 그 당시 제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픔이 진정되며 졸음이 스르르 밀려오는 듯하다가도 또다시 밀려오는 진통! 시어머니 앞에서 아픈 티도
내지 못하고 진통과 졸음 사이를 넘나드는데,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 가던지. 점차 진통의 간격이 좁아지고,
점심때가 되어 교대하는 간호사들이 점심 메뉴를 묻고 대답하고 하는데, 어디선가 스멀스멀 풍겨 오는 라면
냄새! 가뜩이나 메스꺼운 속을 뒤집어놓고도 남던, 평소 같으면 군침이 돌았을 그 냄새! 코를 막을 수가
있다면 틀어막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올 때쯤 저는 분만실로 옮겨졌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호흡법을 얼마나 따라 했던지요. 천신만고 끝에, 아이의 고고(呱呱)가 들려왔습니다. 산소와 양분을 공급받던 탯줄은 잘려 나가고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는 본능적으로 울었을 것입니다. 울어야 폐가 활짝 펴지고 폐호흡이 가능해지니, 살기 위해 울 수밖에요. 꼬박 열두 시간을 아파하고 찾아온 딸아이의 울음소리!
분만을 담당한 분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그때는 부끄럼조차 느낄 겨를 없이 어서 빨리 고통의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지요. 가죽 한 꺼풀을 벗어낸 듯한 홀가분함, 허전함…… 차가운 분만실을 나오자마자 뜨끈 뜨근한 미역국이 나왔으나, 숟가락을 들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도 이리 힘들게 나를 낳으셨겠구나. 아홉 번이나 이런 고비를 넘기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낳으셨구나…… 부모님께 얼른 전화를 드려야 할 텐데. 또 한 명의 외손녀가 생겼다 들으시면 기뻐하실 거야.’
손녀를 얻으신 시어머니는 서운한 빛을 좀처럼 감추지 못하고 가게일을 돕기 위해 가셨습니다. 보호자 없이 혼자 6인 병실에서 누웠는데, 식사 때 나온 미역국이 차갑다며 선뜻 데워다 주신 병실의 한 어르신이 생각나네요. 당시 그 병원에서는 산모도 일반 환자들과 같은 입원실을 썼습니다. 분명 보호자 아닌 환자분이었는데, 때때로 신문을 읽고 활동에도 전혀 지장 없는 분이라 젊은 산모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이지요.
회복을 위해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병실을 나와 천천히 걸어 다녔
습니다. 그러다 다른 층에 내려가보고 싶었어요. 엘리베이터를 탔고 하강을 시작하는데 좀 어지럽다 싶더니, 그다음순간부터 모든 게 백지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잠시 정신이 외출을 하였던지,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고, 간호사 한 분이 산모복을 입은 저를 일으켜 세워, 곁에
멀뚱하게 서 있는 젊은 남성에게 이끌었습니다.
“남편 분이 꼭 좀 붙잡아 주세요!”
부축하지 않고 멀뚱멀뚱 뭐 하고 서 있느냐 하는 힐난의 빛을 미세하게 품은 말투.
“저, 남편 아닌데요.”
이런, 제가 정정해 주고 싶은 얘기를 그 젊은이가 먼저 해버렸네요. 그는 우연히 그 엘리베이터에 같아 탔던 젊은이였을 뿐이고, 저는 잠시 기절했을 뿐이고, 간호사 분은 환자를 염려하여 남편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부탁했을 뿐이고!
시트콤의 한 장면 같지만 그때 남편은 일터에서, 저는 병실에서 그 시간을 보내며 나름대로 고독했던 것
같습니다. 같이했으면 좋을 순간에 자신의 좌표를 지켜야 했으니까요. 반추하면 할수록 신기하기만 합니다. 제가 기절을 다 하다니요! 그때껏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엉뚱한 오해를 받으며 보호본능을
일으킨 기절의 순간이 내게도 일어날 줄이야…… 소녀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한 일 아니었겠습니까?
학창 시절, 뙤약볕이 내리쬐는 학교 운동장에서 좀처럼 끝나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들으며, 풀썩
쓰러지는 소녀들을 얼마나 동경했던지. 소란을 수습하고자 쓰러진 친구와, 그 친구를 그늘로 부축해 가는
친구까지 부러워하느라, 길고 긴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있었을까요? 다리는 아프고
태양빛은 강렬한데, 그 말이 그 말 같은 말씀은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철없던 그 시절, 소녀들이
연약해 보이는 체형과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가련형의 외모를 흠모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기절은 아무나 하나? 맞습니다. 아무나 기절을 하면 안 될 일이지요. 대부분의 소녀들은 지극히 건강한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았습니다. 기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대부분의 친구들은 튼튼한 다리
덕분에 훈화가 끝나도록 견딜 수 있으니까요. 나도 한 번만 저렇게 쓰러져 보았으면…… 친구의 부축을
받고 그늘로 가 앉아,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시며 끝없이 꺼내드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레퍼토리 대신
육신의 쉼을 얻어 보았으면…… 간절하고 간절한 바람을 품어 본 적 없는 그 시절의 친구들,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