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는 큰일났다

가을에 피니까 그렇다

by orosi

첫째 아이는 11월생입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던 2월에 맺어져 꼬박 280일을 품고 입동날 만났죠.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를 분만 앞 뒤로 적절히 나눠 쓰고 나면 겨울 방학.

방학이 끝나면 3월 1일 자로 육아휴직을 들어가면 되니 학사일정에도 송구할 이유 없는 "태생이 효녀" 셈이죠. 제겐 별 게 다 감사한,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 첫째 아이를 여럿 걱정했습니다.

이유인즉 11월생이라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가는 데다, 걷는 것도 느려 큰일이라며 입을 모아 염려하더군요. 생일 늦은 애들은 결국 학습에도 표가 확 난다나요?

엄마라는 직함을 얻게 된 날부터 수시로 수지의 [겨울아이]를 불러주며 물고빨기 바빴지, 겨울아이라 근심을 사야 하는지는 모르고 키웠답니다. (겨울에 태어~나, 아름다운 OO는~)




2023학년도를 마무리하는 11월.

발빠른 모 기관들로부터 두 번의 출강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타 시도인데다가, 도저히 인원감당이 안돼 줌으로 진행했고, 열흘 후 같은 주제로 한 유치원을 방문해, 예비초등 학부모님 80여 명을 대면했습니다.


<어서 와. 초등학교는 처음이지?>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를 불러 드렸습니다. 굳이... 노래를 말입니다.

(뭐, 이슬아 작가는 네임벨류도 있고, 쌈박하게 기타도 둘러 맸다지만) 쏭알못 강사가 생뚱맞게 웬 노래냐고요?

맞아요. 밑도 끝도 없단 표현은 이럴 때 써야 구색에 맞죠.





뜻밖에 내 새끼가 여러 이유 예쁘지 않아 근심인 부모님들이 꽤 많아 감히 뭐라도 해야 했어요. 공감을 못하는 바람에 공감못할 짓, 저도 해봤습니다.


여하튼 못마땅한 이유인즉,


-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영유아시기부터 영어교육에 아무리 투자해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미치겠고.


- 말은 청산유수인데 한글 겹받침을 끝끝내?(끝의 기준이 어딘지 여쭈었으나 답은 못얻었고요)

못 익히고 있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가 답답하고.

(언어학 기준 지극히 정상인데요. 설사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유창하게 말하기까지 하는 아이가 서툴게 쓴다고 당장 걱정하진 않지 않습니까?

모국어라고 7세가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는지.)


- 아직 젓가락질이 서툴러서 우리애 어찌 학교에 가서 적응하냐며 미간에 잔뜩 길을 냅니다.





분명 제가 받은 사전 설문에는요.

학교생활적응, 교우관계, 공동체생활, 감정조절 및 행동한계점의 경계 세우기 등을 관심 영역으로 제출해 주셨는데 말이죠.


질의 응답 시간.

뜨거운 감자는 뜻밖에도 학습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와 1학년이 마땅히 배우고 익혀야 할 공부사이에 간극이 커서 당황한 건 저 혼자였고요. 외롭게도 말이죠.


그래도 성의껏 답해드리고 국어, 수학뿐만 아니라 직업병 탓인지 영어학습까지도 기꺼이 팁을 드리고 왔습니다.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강의료가 지체 없이 통장에 들어왔더군요. 치킨 먹으면 될 것을.. 묘하죠? 어째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현장은 이랬습니다.


강사: 꽃들이 만개하는 시기가 다르다고, 우리가 천천히 계절을 맞이하는 꽃을 예쁘지 않다고 말하진 않잖아요.

/고개는 끄덕여도 아이가 미워진답니다.

강사: 제가 보기에 자녀가 필요 이상으로 이미 서둘러 피느라 애쓰고 있는데요.

/동의하신다면서도 아이를 보면 답답하시답니다.

강사: 오늘 가서 칭찬은 고사하고, 격려는 해주실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칭찬은 아이들이 잘 해냈을 때. 성과를 보여줬을 때만. 할수 있을지 몰라도요!

기대에 미치건, 그렇지 않건 언제든 해줄 수 있어 좋은 게 격려거든요.

/(그날 과연 몇 명의 아이들이 격려를 받았을까요.)




선행이요? 하면 좋죠.

더욱이 영어는요. 정규과정보다 1년, 2년 먼저 익힌다고 해서 그거 선행으로 안 봅니다. 저는.

외국어라서 그래요. 모국어를 도구교과로 삼는 교과들과는 애초에 전제가 다르고요. 감정여과장치(Affective filter)라는 개념 때문에 더욱 그래요. 친숙하게 듣도록 미리 음성노출을 돕는 건 분명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필요이상의 학습을 때에 맞는 공부와 동일하게 규정하고 나면, 아이가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내 아이를 답답해할지 말지의 기준을 안타깝게도 부모가 정하는 격이라그래요.

여덟살의 과제를 여덟살에 해결하면 안 될 이유,

어디에 있나요?




담당 장학사님이 지켜보고 계시건 말건.

다시 출강요청을 받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기어이 여쭈었습니다.




어머니, 개나리는 봄에 피지요?

그럼 개나리는 그 이유로 훌륭하고,

국화는 가을에 피니까..
큰일 났나요?



둘중 무엇이 어떤 이유로 예쁘고, 어째서 예쁘지 않은가요. 더 예쁘고 덜 예쁜 문제 말구요.



그제야 떨구고 만 눈물이

내적귀인을 유발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남보다 일찍 피어 주목받을 만 하고,

느지막히 이룬 개화에는 못 마땅할 일.


이거 모두 어른들의 선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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