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우리 세상 03화

휴지

흩어지는

by 글사

휴지는 가볍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 내 손끝을 따라 구겨져 간다.

구겨지는 동안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묻지 않는다.

손에 닿을 때만 존재하고,

외의 순간에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 사라진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을 닦아낸다.

종이 위에 남은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손끝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에 집중할 뿐.

구겨진 종이는 더 이상 닦아낸 것들의 일부가 아니게 된다.

그 자체로 하나의 흔적이 되어, 어딘가로 사라져 간다.


그 순간, 알 수 있다.

휴지는 남긴 것이 아니라,

닦아낸 것들 속에서 사라져 간 것들만을 떠안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흔적들,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마치 내가 그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그저 그것을 잊고 흘려보낸다.


버려진 휴지를 손끝에 쥐고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가벼워도 그 속에 담긴 모든 시간이 느껴진다.

한때 우리를 따라온 것들이,

손끝에서 지나간 흔적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 서 있다.


여러분에게 휴지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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