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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마라의 도시에서 보낸 50일

하늘은 품은 남자와 사는 이야기 (11)

by 도럽맘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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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중국으로 귀국한 후, 선배 선교사님이 계시는 충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의 사역을 도우며 중국 현지 교회의 상황을 익혀가고 있었다. 나는 길고도 험난했던 첫 학기를 마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중국 쓰촨성으로 떠났다.


LAX에서 출발해 베이징을 경유한 뒤, 마침내 쓰촨성 충칭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공기 속에 가득한 강렬한 향이었다.


마라 냄새. 훠궈를 즐겨 먹는 나지만, 도시 전체가 마라 향으로 진동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압도한 것은 숨 막히는 무더위였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공기는 후끈했고, 습기는 피부에 들러붙었다. 공항 밖으로 한 발 내딛자마자 끈적한 공기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땀범벅이 되었다.


충칭은 한마디로 ‘산 위에 세운 도시’다. 어디를 가든 언덕과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도시는 마치 거대한 용처럼 산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으며, 그 사이로 양쯔강과 자링강이 흐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건물들은 층층이 겹쳐 있고, 다리와 터널이 얽혀 있어 마치 거대한 미로 같다. 자동차도, 사람도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진정으로 강렬하게 만드는 것은 지형이 아니라, 여름의 뜨거운 열기다.


충칭의 여름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멈춰선 듯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된다. 공기는 눅눅하고 축축하며, 땀은 씻어도 씻어도 다시 흐른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에어컨도 이 도시의 더위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기온은 35도를 찍고 있고, 해 질 녘이 되어서야 겨우 산책을 할 정도가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더운 도시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매운 음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후끈한 훠궈 앞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얼얼한 국물을 떠먹는 모습이 충칭의 여름과 닮아 있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지난겨울부터 충칭에서 머물렀는데, 겨울의 충칭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춥고 습한 날씨 때문에 빨래도 마르지 않고 감기에 쉽게 걸려, 겨울 내내 몸에 습기가 차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찜질방에 가서 한바가지 땀을 흘리고 나와야 겨우 몸이 개운해졌다며, 충칭의 겨울이 여름만큼이나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충칭 사람들은 이런 기후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의 습기를 없애기 위해 매운 음식을 찾게 되었다. 한방에서는 습한 날씨가 몸속에 ‘습기(湿气)’를 쌓이게 한다고 보고, 이를 없애는 방법으로 매운 음식과 향신료를 추천한다. 실제로 마라의 주재료인 고추와 산초는 땀을 나게 하고, 몸을 덥혀 습기를 몰아내는 효과가 있다. 충칭 사람들에게 마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습한 날씨에 맞서는 생존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거리 어디에서든 마라의 기운이 감돈다. 훠궈집이 빼곡한 골목, 길거리에서 풍기는 얼얼한 국수 냄새, 그리고 사람들 손에 들린 매운 꼬치까지. 충칭은 마라의 도시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렬한 향신료의 흔적이 도시 전체에 스며 있다.


마라로 시작해서 마라로 끝났던 것만 같은 충칭에서의 50일.


새로운 기후, 지형, 문화, 언어를 배우기에는 충분했던 시간이었고 우리 인생을 또한번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진 애증의 도시로 기억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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