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품은 남자와 사는 이야기 (10)
가장 힘들었던 수업은 단연코 음악 역사(Music History) 수업이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자체도 벅찼지만, 중세 음악, 바로크 시대의 양식, 라틴어 용어까지 등장하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담당 교수님은 짧은 빨간 머리를 한 백인 여성이었는데, 과제도 많고 점수도 후하게 주는 법이 없기로 유명했다. 발표, 리포트, 중간고사 하나하나가 고역이었다.
그 힘든 시기에, 함께 유학을 시작했던 남자는 먼저 귀국했다.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이 무너져 있었고, 이제는 마음 기댈 사람마저 곁에 없었다. 감정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시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매일 울면서도 정신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챕터를 달달 외우고 또 외웠지만, 낯선 개념과 언어의 벽 앞에서 내용은 좀처럼 머리에 정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 날.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문제 하나하나가 낯설고 어려웠다. 한 문장을 해석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두가 머리를 감싸고 멍하니 시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펜을 든 채 허공에 글을 쓰듯 멈춰 있는 학생들, 깊은 한숨을 쉬는 학생들, 교실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시험지 뒷면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편지’를 써왔던 것 같다.
그 편지에는 최근 겪은 가족사, 심리적인 불안정, 그리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 정답을 쓸 수 없는 괴로움까지 솔직하게 담았다. 어차피 F를 받을 거라면, 마지막으로 내 진심만이라도 전해보고 싶었다.
편지를 다 쓰고 가장 먼저 시험지를 제출했을 때, 교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모두가 나를 보며 속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와, 저 사람 시험 엄청 잘 봤나 보다.”
그 누구도 내가 답이 아닌 ‘편지’를 써서 나왔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아픈 기억이다.
그날 밤, 교수님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일 교수실로 찾아오세요.”
다음날 떨리는 마음으로 교수실 문을 두드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교수님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이내 교수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당신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어요. 하지만 편지를 읽고 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교수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UCLA에서 열리는 바로크 음악 리사이틀에 다녀오고, 그에 대한 리포트를 써오세요. 그러면 점수를 만회할 기회를 드릴게요.”
그 말은, 그 한 학기 전체를 버틸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위로였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
눈앞에 시험지가 펼쳐지고,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숨이 막히는 그 장면이 꿈속에서도 여전히 선명하다.
며칠 후, 룸메이트 센센과 함께 UCLA 캠퍼스를 찾았다.
공연장 안은 바로크 음악 특유의 고풍스럽고 섬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리사이틀이 끝난 후 우리는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며 음악과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집으로 돌아온 그 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정성껏 리포트를 써 내려갔다. 공연의 감동, 곡 해석, 바로크 시대 음악의 특성까지 그 안에 있는 내 마음까지 담았다.
며칠 뒤, 교수님께 리포트를 제출했고, 마침내 성적이 발표되었다.
결과는 C-. 아슬아슬한 점수였지만, 나는 수업을 패스할 수 있었다.
만약 내 전공이 음악 교육(Music Education) 이었다면 최소 **C+**는 받아야 했겠지만, 나는 퍼포먼스(Performance) 전공이었기에 C-로도 이수 가능했다. 그 점수가 자랑스럽진 않았지만, 내가 견딘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그 ‘패스’는 내게 무엇보다 값진 승리였다.
절망과 안도의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차하던 그 학기. 나는 매 순간을 버텨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졸업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 되자마자,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중국, 충칭.
가장 그리웠던, 가장 보고 싶었던 하늘을 품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