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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칭미인, 중칭에는 미녀가 많다

하늘을 품은 남자와 사는 이야기 (12)

by 도럽맘 Mar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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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혔다. 더운 건 딱 질색인데, 게다가 습하기까지 하니 에어컨이 켜진 이 작은 방을 나서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나와 남자는 교회 선교관에서 지내고 있었다. 두 개의 방 사이에 화장실이 있고, 거실과 부엌이 분리된 아파트 구조였다. 평소 남자는 교회 전도사, 그리고 한 명의 성도와 함께 셋이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특히 그 전도사는 지금까지도 특별한 인연으로 남아 있다.


이 아파트는 주중에는 숙소로, 주말에는 예배 장소로 사용되었다. 주일 오전 11시가 되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성도들의 손길에 우리는 살며시 문을 열어주곤 했다. 이런 교회를 중국에서는 ‘가정교회’ 혹은 ‘지하교회’라고 부른다.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기독교를 허용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정부가 인정한 ‘삼자교회’만을 공식적으로 허락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세운 신학교에서 공부한 목회자만이 사역할 수 있으며, 교회의 중대한 결정은 정부가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말씀의 자유가 제한되고, 다양한 부작용들이 발생하곤 한다.


남자는 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기에 삼자교회에서 목회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처럼 외국이나 선교단체를 통해 신학을 배운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상가나 가정의 작은 공간을 예배처로 삼아 조심스럽게 교회를 이끌었다.


이런 배경에서 삼자교회와 가정교회 간의 갈등은 오랜 시간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로 남아 있다. 우리도 언제나 안전을 고려하며 삼삼오오 조용히 모여 예배를 드렸고, 그렇게 신앙을 지켜나갔다.


중칭에서의 일상은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그곳의 더위와 습기는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였다. 지역 방송에서는 실제 기온보다 2도 낮춰 발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이상하게도 이해가 갔다. 그 무더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매일이 중칭의 기후와 독특한 문화를 새롭게 배우는 날들이었다.


중칭 사람들의 식습관도 흥미로웠다. 이들은 쌀밥보다 훠궈(火锅), 매운 꼬치, 매운 국수인 샤오미엔(小面) 같은 자극적인 음식들을 즐겼다. 확실히 중칭의 음식은 입에 착착 감겼다. 맵고 짭짤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고, 쌀이 주식인 나에게는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밥보다는 요리를 중심으로 식사하는 문화였다.


그래서일까, 중칭 여성들은 대체로 작고 날씬하며 피부가 하얗고 매끄러웠다. “중칭엔 미녀가 많다”는 말은 단순한 속설이 아니었다. 실제로 ‘중칭미인(重庆美人)’이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곳 여성들은 유독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까? 처음 중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도시의 가파른 지형에 압도당했다. 어디를 가든 계단과 언덕이 이어졌고, 평지를 걷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상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 여성들은 특별한 운동 없이도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하는 듯 보였다.


중칭의 기후 또한 영향을 미쳤다. 높은 습도로 인해 피부가 쉽게 건조해지지 않아 자연스럽게 촉촉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자외선이 강한 북방 지역과 달리 흐린 날이 많아 피부 노화도 덜하다니, 이곳에 동안 미인이 많은 이유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들의 기질이었다.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강하고 당당했다. “중칭 여자들은 맵다(重庆女人辣)”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강한 성격과 독립적인 태도를 말한다. 실제로 이곳 여성들은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생활력도 강했다. 아름다움은 외모만이 아니라, 자신감과 정신력에서 비롯된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실감하게 됐다.


농담처럼 “중칭 여자들은 돈을 벌면 팔할은 쇼핑에 쓴다”는 말도 있는데, 도심의 쇼핑몰 거리를 걷다 보면 그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곳곳에 대형 쇼핑몰이 즐비했고, 그 안은 언제나 쇼핑을 즐기는 여성들로 붐볐다.


내가 중칭에 도착했을 무렵, 선배 선교사님은 한국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을 해오던 장로님을 이곳으로 모셔와, 이 ‘쇼핑 천국 중칭’에서 ‘비즈니스 선교’를 하겠다는 거대한 비전을 세우고 일을 진행 중이었다.


남자 또한 그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일들은 우리가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했고, 인간의 양면성과 죄성을 마주하게 하는 고난의 여정이 되었다.


세상에 ‘비즈니스+선교’만큼 이질적인 조합이 또 있을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선교는 선교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남자는 이곳 중칭에서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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