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let‘라는 용어는 ’춤을 추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유래되었다.* ‘ballare’는 무도장(Ball Room)에서 추는 춤인 ‘Ballo’에서 유래되었다. 즉, 발레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사교춤으로 귀족들의 여흥이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궁중에서 귀족들의 연회나 행사용이었던 발레가 최초로 예술을 위한 무용의 형태를 띠게 된 곳은 프랑스에서였다. 제대로 된 첫 발레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작품은 <왕비의 발레 코미크>로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시집갔을 때 이탈리아에서 데려갔던 신하 발타자르 드 보주아뢰가 만들었다.
<왕비의 발레 코미크>, 판화, 1581, 국립도서관, 파리
<왕비의 발레 코미크>에 참여한 출연자들은 모두 귀족과 그의 부인들이었다. 모두 아마추어들이었던 출연자들은 장식이 많은 의상과 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의 춤은 한동안 유행했다.
아마추어들이 자신들의 저택에서 행사용으로 만든 발레는 루이 14세의 통치하에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더 이상 귀족들의 여흥을 위한 춤이 아니었으며 통치자를 찬양하는 선전물로 활용되었다. 루이 14세는 스스로 27편의 발레에 출연했으며 발레를 통해 왕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
<밤의 발레>에서 루이 14세.루이 14세를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한다는 내용으로 ‘태양왕’이라는 별명이 이 작품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루이 14세는 ‘발레’를 ‘춤’ 그 자체로서도 사랑했다. 어릴때부터 발레를 배웠던 루이 14세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발레를 이용하는 한편 국가 차원에서 발레를 후원하고 발전시켰다. 루이 14세의 통치하에서 ‘발레’에 관한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그 중 하나가 왕립무용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전문무용수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왕립무용아카데미가 설립됨에 따라 발레의 테크닉을 비롯한 무용 이론이 정립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고도로 숙련된 전문 무용수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제 발레는 아마추어 귀족들이 추는 것이 아닌 전문 무용수들이 추는 영역이 되었다.
훈련된 무용수들이 추기 시작하면서 궁중이 아닌 극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전문 극장의 등장은 이제 발레가 궁중무도회에서 공연을 위한 예술로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발레는 연극이나 오페라에 포함이 되어 ‘오페라 속 발레’가 되었다.
전문 극장인 프로시니엄 아치형 무대에서 추게 된 발레는 오페라 막간에 춤을 추는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페라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있는 공간에서 춤을 추다 보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선 방향’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발레 동작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선 방향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기교를 보여주었던 오페라 속 발레는 이후 오페라에 포함되어있던 것으로부터 빠져나와 독립된 예술분야로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여전히 그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립발레단, <라 실피드>
마린스키 발레단, <돈키호테>에서 김기민과 나데츠다 바토에바
몸의 방향을 사선으로 하면서 춤선을 표현해야 하는 발레는 그 실루엣이 가녀리고 여리여리하게 보인다. 확실히 정면보다는 한층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