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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Sep 29. 2023

섬세한 드라마의 다양한 연출

 백색 발레 <지젤>을 통해 알아보는 ‘발레 메소드’

“세계적인 발레단은 러시아에 있나요?” 또는 “러시아가 발레를 제일 잘 하는 나라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러시아 발레가 한국인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발레를 잘 모르는 한국인들은 ‘발레’하면 대체로 러시아를 떠올리고, 발레를 배우는 한국인들에게도 역시 러시아 발레가 익숙하다. 이유는 국내의 발레단들 중에서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 발레단은 볼쇼이 버전을, 유니버설 발레단은 마린스키 버전을 따르고 있고 전공 발레를 비롯한 한국의 발레 학원들도 모두 러시아 발레 교육법인 바가노바 메소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바가노바 메소드를 이수한 전공자들이 발레 강사를 한다.)     


빈필의 음색이 베를린필보다 밝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색이 예스럽다 이런 식으로 각 오케스트라단의 음색이 특색이 있고 다르듯이 발레단도 각각 특색이 있고 개성이 다르다. 그래서 같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려도 해석이 다르니 연출 방식이 다르고 같은 발레 동작도 폴드브라나 다리를 들어올리는 각도 등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다. 이런 차이는 바로 각 발레단이 사용하고 있는 메소드(발레 교육법)가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확실히 발레 강국이지만 다른 메소드를 사용하고 있는 각국의 발레단들도

저마다의 특징과 장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발레를 잘 하는지를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발레 메소드는 6개가 있다. 바가노바보다 먼저 개발된 체케티 메소드(이탈리아)는 해부학을 근거로 만들었다. 이 메소드를 만든 엔리코 체케티(1850~1928)는 가는 곳마다 그에게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그 제자들 중에는 안나 파블로바와 바슬라프 니진스키와 같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발레 무용수들도 있었다. 특히 안나 파블로바는 체케티에게 자신만의 발레 클래스를 받고 싶어 할 정도로 그의 교수법을 좋아했고 실제로 파블로바가 3년간 개인 교습을 받기도 했다. 체케티 메소드는 몸 전체의 협응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팔, 다리, 몸과 머리를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의 전체가 조화롭고 아름답게 우아한 춤선을 만들어 내는 것을 중요시하며 발롱을 강조하고 다채로운 폴드브라와 빠른 스텝이 특징이다.

걸어다니는 다비드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발레리노 로베르토 볼레



덴마크 발레의 아버지 부르농빌(1805~1879)이 만든 메소드는 공중으로 도약한 후 머무는 발롱을 매우 강조한다. 파리에서 발레를 배운 부르농빌은 자신의 정립한 메소드에도 프랑스에서 받은 영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낭만주의 발레의 영향을 받았던 부르농빌은 자신이 만든 발레 메소드에 날아오를듯한 환상적인 움직임과 부드러운 폴드브라, 쉴새없이 가볍게 움직이는 발동작을 강조했다. 요정이 신비롭게 움직이는 것 같은 이 메소드는 낭만 발레에 정말 잘 어울는 특징이 있다.

브루농빌 버전의 <라 실피드>


RAD(Royal Academy of Dance)로 불리는 영국식 발레 메소드는 다른 메소드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처음부터 깐깐한 기준을 토대로 아이들을 발탁해 고강도의 훈련을 시키는 바가노바와는 달리 RAD 메소드는 모든 아이들이 다 배울 수 있다. 따라서 RAD 교수법은 엄격하지가 않다. 프로 무용수가 되기 위한 단계부터는 고강도의 훈련이 시작되지만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사람들은 매우 즐겁게 발레를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수업을 진행하면서 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스텝들도 가르치며 상상력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로열 발레단의 <베아트릭스 포터 이야기>, 영국 무용수들이 동물 캐릭터 춤을 잘 춘다.


미국은 발란신 메소드를 사용한다. 러시아 발레에 여러 장르의 춤들을 결합한 발란신 메소드는 확실히 정통 클래식 발레 메소드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 발란신은 발레 교본을 정립한 적이 없다. 발란신의 발레 클래스는 Barre 동작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발란신의 작품에 사용될 안무였고 클래스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안무에 재현하는 등 즉흥성이 많았다. 굉장히 빠른 스텝과 리드미컬한 몸의 움직임이 특징인 발란신 메소드는 확실히 네오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가 강점이다.

조지 발란신의 <아폴로>


러시아의 발레 메소드인 바가노바는 클래식 발레의 문법이다. 프랑스와 체케티 메소드의 장점들을 뽑아서 만든 바가노바 메소드는 빠르고 화려한 움직임보다는 모든 동작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을 중시한다. 신체의 모든 에너지를 바깥으로 뽑는 느낌으로 가늘고 길게 쓰는 바가노바 메소드는 무용수들의 신체 라인을 가늘고 유연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섬세하고 정교한 바가노바 메소드는 확실히 고전발레에서 두각을 보인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알리나 소모바


부르농빌 메소드에 영향을 끼쳤던 프랑스의 프렌치 스쿨 메소드는 춤의 우아한 느낌을 중시하며 공중을 떠다니는 듯한 빠른 스텝과 정교하고 화려한 하체 테크닉이 특징이다. 프랑스 메소드로 루돌프 누레예프가 개정한 안무의 발레 작품들을 보면 다른 메소드를 사용해 만든 발레 작품보다도 박자를 더 쪼개서 쓰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체 테크닉이나 스텝을 빠르게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리오페라 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에서 도로시 질베르

이러한 메소드는 각국의 발레 협회와 발레 학교에서 계승, 유지되고 있다. 각 발레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발레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해당 발레단의 오디션에 합격을 하고 입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학생들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바가노바 발레 학교 학생들은 마린스키가, 볼쇼이 발레 학교 학생들은 볼쇼이 발레단이 흡수를 한다.


러시아의 <지젤>

바가노바는 매우 엄격한 발레 교육법이다. 과거 소련 시절에 발레학교 입학생들을 뽑을 때 국가 무용수 선정 위원회가 각 유치원을 돌면서 될 성 부른 잎을 고르거나 소련의 벽지까지 찾아가 발육과 체형, 유연성과 근육의 크기, 음감을 모두 체크하면서 아이들을 발탁했다고 한다. 손가락의 유연성까지 체크했다고 하니 러시아 발레리나들의 손끝이 매우 유연하고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당 학생이 미래에 살이 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조부모, 외조부모의 체형까지 봤다고 한다. 발레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성장 과정에서 신체 조건이 맞지 않게 자란 학생들은 학교를 나가야 했다. 살이 찐 발레리나가 볼쇼이 발레단에서 퇴출된 일도 과거에 있었다.     


바가노바 메소드는 스퀘어박스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폴드브라와 손끝 따라 시선이 같이 따라가기, 하체 포지션의 변화에 따른 시선의 위치 바꾸기 등 고상하게 보이는 시선 처리, 하체 테크닉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 교수법 내내 이런 발레를 하도록 스타일링을 한다. 이것을 ‘코디네이션’이라고 한다.   

  

또한 폴드브라를 크고 길게 쓴다. 러시아 발레리나들이 ‘앙오’ 동작을 할 때에 유심히 보자. 안그래도 팔다리가 긴데, 신체와 근육을 더 길게 뽑아서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바가노바 메소드에서는 모든 발레 동작을 할 때에 신체 근육이 위, 아래 길어지는 느낌이 들도록 가늘고 길게 사용한다. 그래서 러시아 발레 무용수들이 다른 나라의 발레 무용수들보다 더 슬림해 보이는 이유가 타고난 신체도 긴데다 이렇게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모든 동작이 더 시원시원하고 더 크고 강하게 다가온다.

볼쇼이 발레단의 솔리스트 아나 트루아자쉬빌리


모든 발레 동작을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하는 러시아는 낭만 발레에서도 모든 발레 동작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군무도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칼군무다.

https://naver.me/Gcnb3cZo




프랑스의 <지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러시아의 <지젤>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지젤>은 전혀 다른 ‘지젤’이다. 전막공연을 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한국인들에게는 바가노바가 익숙하다. 고전발레 작품을 정기공연으로 올릴 때에 국립 발레단은 볼쇼이, 유니버설 발레단은 마린스키 버전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발레는 유아발레부터 입시, 전공, 취미 발레까지 모두 바가노바 메소드가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바가노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폴드브라 사용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프렌치 발레 스쿨 메소드를 사용하고 있는 프랑스 발레의 특징은 팔꿈치와 손목의 관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팔꿈치와 손목을 도드라지게 올리면서 장식적인 느낌으로 꾸미는 동작들을 많이 하고 있다. 프랑스 발레는 신체의 모든 에너지를 러시아처럼 가늘고 길게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아라베스크 동작도 바가노바와 프렌치 메소드가 다르게 한다. 확실히 프랑스 발레가 러시아 발레보다 다리를 덜 올리고 손끝의 에너지도 바깥으로 분출한다는 느낌은 없다.


대신에 그들은 다양한 발레 마임을 통해서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장식적이고 우아한 폴드브라로 춤을 추고 있다. 상체는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꾸미는 듯한 폴드브라로 감정을 전달하고 언어처럼 풍부한 발레 마임으로 인물들의 심리나 상황, 생각들을 전달을 하니 관객들은 감정이입이 쉽게 되고 작품에 대한 몰입도 강해진다.     


폴드브라는 장식적이고 우아하게 구사하되 몸통의 움직임은 가급적 절제하면서 하체 테크닉이 화려한 게 프랑스 발레의 특징이다. 화려한 로코코 미술이나 음악에서 음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장식음들이 연상이 된다. 프랑스 발레는 발레 동작을 교과서처럼 구사하지 않는다. 발레 동작을 정확하게 보여주기보다 춤을 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무용수들 한 명, 한 명이 음표처럼 보인다. 이들에게 발레는 곧 춤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의상은 한국인들에게 호불호가 갈린다. 그러나 무대 배경과 조명, 단원들의 동선 등을 전체적으로 보면 의상의 디자인과 색감이 매우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단 몇 편의 영화를 봤을 때마다 화면 안에 배경과 배우들의 의상, 인물 배치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을 보는 것처럼 구도와 색감이 조화로웠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단원들의 포지션과 동선을 자세히 보면 무대배경과 어우러질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프랑스는 ‘미술종주국’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발레’가 음악과 미술, 무대디자인, 연출력, 의상, 조명, 영상물 촬영구도 모두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예술’이라고 생각을 하는 듯 하다. 특히 2막에서 윌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극적인 연출력에 감탄이 나왔다. 19세기 ‘가스등’ 조명처럼 어슴프레한 조명 사용으로 로맨틱 튀튀를 입은 윌리들이 ‘브레브레’ 동작으로 가볍게 호숫가를 동동동 떠다니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장면을 본 순간 감동이 물밀 듯이 다가왔다. 무용과 음악, 미술이 하나가 되는 군무를 보고 강한 전율을 느꼈다.


https://naver.me/FHAnitnR



영국의 <지젤>

영국 발레는 러시아,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등의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발레의 역사가 길지 않다. 이유는 그들의 연극 문화 때문이다. ‘연극’이라는 문화적 자부심으로 인해 오페라가 처음 전파되었을 때 영국인들이 오페라 관람의 필요성을 못느낀 것처럼 발레도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국이 이렇게 발레의 역사가 짧은데도 단숨에 발레 강국이 된 데에는 프레데릭 애쉬튼과 케네스 맥밀란과 같은 걸출한 안무가들의 활약과 전설의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 덕분이다. 이 세 분은 영국 발레의 개국 공신이다. 그 공헌으로 세 분 모두 기사 작위도 받았다.  특히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튼은 오늘날의 영국식 발레를 만드는 데에 공헌이 컸다. ‘영국 발레’하면 떠올릴만한 로열 발레단의 발레 스타일과 안무를 애쉬튼이 정립, 완성시켰다.  

영국 발레의 개국 공신 프레데릭 애쉬튼
전설의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와 함께 있는 마고 폰테인.



애쉬튼 안무의 특징은 상당히 액티비티하면서도 안무가 예쁘고 사랑스럽다. 러시아보다도 상체를 크고 과장되게 사용하는데도 춤에서 우아함과 기품도 느껴진다. 폴드브라도 더 다양하고 과장되게 구사를 해서 정령들의 춤인데도 활기가 있다.

https://naver.me/Fu6JkB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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