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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화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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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포 Mar 31. 2024

통제

상황통제욕구

일요일 아침,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나서, 샤워를 하는데, 중국인 아저씨 한 명이 온수탕에 앉아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샤워장에는 나와 중국인 아저씨, 단 둘뿐이었다. 눈을 감고 감정에 빠져 열창을 하셨는데, 내 귀에는 너무 시끄러웠다.


샤워를 하고 나와, 사우나실로 가면서 헛기침을 몇 번 했지만, 열창 중인 아저씨는 나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큰 성량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우나에 앉아 땀을 빼면서도, 문 밖에서 나는 힘찬 노랫소리가 계속 거슬렸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렸을까? 조용한 일요일 아침, 수영하고, 샤워한 후, 따뜻한 온수탕에서 자쿠지를 하며 평온하게 하루를 시작하고자 했었다. 그런데 내가 설계하고자 한 아침풍경을 중국인 아저씨의 비명에 가까운 노래가 뚫고 들어와서 망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했다.


문득, 내 안에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 내가 설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공기의 온도와 배경음, 분위기가 있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전혀 예측지 못한 복병을 만나서 분위기가 깨진 것만 같았다.


어릴 때 같았으면, 덤덤하게 넘어갔을 텐데… 남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내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면, 낯설고 새로운 상황들도 무심코 넘겼었던 나이다. 아침의 돼지 멱따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상황통제욕구”가 강해졌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요구가 많아지고, 완고해지는 느낌을 느낀다.


수용성의 저하, 선호의 명확화, 유연성의 상실.

요즘은 웬만하면, 식당을 가도 쉽게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당연히 맛이 있어야 하고, 분위기도 좋아야 하며, 서비스도 좋아야 한다. 점점 늘어나는 요구사항 중에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거슬리고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쉽게 나의 불만족을 표출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내가 머릿속으로 설정한 세팅 값이 아닌, 다른 변수가 발생한 것에 대해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마치 엄격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내가 둘러싼 상황들, 변수들을 온전히 통제하고 싶어 한다.


젊은 시절에는 청바지에 흰 티 하나만 대충 입어도 되었으나, 나이를 들면서 명품을 찾게 되는 것. 젊은 시절에는 값싼 학교 식당에서 매우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였으나, 이제는 고급레스토랑이 아니면 만족을 못하는 것도 비슷한 변화의 흐름인 듯하다.


경험이 누적되며, 선호와 비선호가 생기고, 선호와 비선호는 점차 강화되며 명확해진다.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는 기준이 점차 높아져서 쉽게 만족하기 어렵고, 싫어하는 것들은 점차 많아진다. 이러한 방향의 흐름이 좋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음치 중국인 아저씨의 노래에서 시작된 나의 이러한

오랜만의 자아인식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발견하는 것은 나에겐 좋은 일이다.


그래서 사우나에 앉아서, 이런 생각들을 하며, 원치 않는 상황을 수용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사우나 문을 열고 나왔는데, 아저씨는 마침 탕에서 나와서 샤워칸으로 이동하였다. ‘아, 이제 좀 조용해지겠지? 따뜻한 탕에서 몸을 풀어야겠다.’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샤워칸으로 들어간 아저씨의 노랫소리는 더욱 우렁차진 것이다. 맙소사… 참다못한 나는 연달아 헛기침으로 나의 의사표시를 하였으나, 전혀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샤워칸을 나온 아저씨에게 결국 한 소리 하고 말았다. “回家唱吧,不好听!” 해석하다면, ”집에 가서 노래 부르세요. 노래가 듣기 좋지 않네요(노래를 못하네요)“


말하고 나서 스스로 후회를 하였다. 너무 쌔게 말한 것이다. 만일 그 아저씨가 기분이 나빴고, 성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알몸으로 말다툼이라도 벌어졌을 것 같은 상황. 그러나 다행히 그 아저씨는 당황하는 얼굴기색과 함께 오른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하며 잠잠히 퇴장하셨다.


아, 아는 것이 바로 행동을 바로 바꾸지는 못한다. 스스로에 대한 발견, 통찰이 곧바로 행동의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못함을 다시 깨달았다.


그래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호전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조금은 틀 수 있을 것이다.


상황통제욕구를 조금은 내려놓고, 때로는 물 흐르듯이, 가볍고 유연하게 살아보자. Let it be.

상하이타워 52층의 朵云서점에서 와이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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