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물들어가네요
- 에스프레소
난 음료를 마실 때 상대방과 대화 또는 할 일을 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지 못한다. 적정 텀을 두고 눈앞에 있는 음료를 마시는 건 내게 너무 고역이다. 그래서 대체로 난 음료가 눈앞에 5분 이상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어떤 음료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는 달랐다. 그냥 홀린 듯이 메뉴판에 에스프레소가 눈에 들어왔고, 주문했다. 썼다. 아주.
내겐 유일하게 적정 텀을 두고 음미하며 마실 수 있는 음료였다.
에스프레소는 억제해 준다. 적절한 시간을 내게 선물해 준다.
- 답장
귀여운 그 사람의 답장,
스스로가 흐뭇하게 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더 깊고 진하게 미소 지어보고 싶다.
- 오늘
의미가 있을까 오늘이란 게?
제각각 다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내가 잠들기 전까지가 오늘이다.
오늘을 좀 더 길게 보내려 한다.
생각에 힘을 약간 뺀다.
살짝 들어 올리는 거다.
- 행복
그 사람은 내게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맗했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사람은 내게 남한테 기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게 기대 줬으면 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어려운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어렵다.
그 사람은 내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제발 좋은 사람이어 주세요.
그 사람이 한 말을 몇 번이고 곱씹고
기억 속에서 다시 한번 바라보고
좀 깊게 물들어가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 벚꽃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온 세상이 알려준다.
큰 동요는 없다.
딱히 동요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꽃은 예쁘다.
그 꽃 앞에서 오래 있지 않으려고 한다.
괜히 또 바라보고만 있을까 봐.
최대한 빠르게
찰칵, 찰칵
두 장만 찍고 발걸음을 옮긴다.
내 발걸음은 재촉할 수 있어도
아름다운 벚꽃들아,
내 마음은 재촉하지 말아 주렴.
다음에는 더 예뻐해 줄 테니
- 순간
그 어떤 감정도 짐시, 그 순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다 부질없다.
어차피 곧, 평소처럼 나아질 것이고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진다.
그럼에도 어쩔 순 없다.
인생은 미완성.
- 시험기간
날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괜히 지금하고 있는 공부가 재밌게 느껴진다.
가식이 아니길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