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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by 밤비 Mar 17. 2025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가만히 앉아 있다. 햇살이 벌써 거실 중앙까지 영역을 넓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완연한 가을이다. 이렇게 늦장 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 녹아내린 마음은 다시 일어설 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긴 바늘이 6에 갈 때까지만 조금만 더, 진짜 조금만 더 흐트러져 있자. 제발.  

 

신발장 앞에서 길 잃은 사람처럼 머뭇거린다. 까치발을 들어 신발장 상단, 발목까지 올라오는 빨간색 컨버스화에 손을 뻗었다. 네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 1년 만에 조심스레 발을 밀어 넣어 본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이라도 되는 양 매끈하게 발등에 착 감겨온다. 잠시 숨을 고른다. 자주 신을 걸 그랬네, 이렇게 꼭 맞는 신발이었는데.   

 

 

 

 

집에서 네가 있는 곳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입구에 다다른다. 입구에서 네 병실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5분 남짓. 25분 뒤면 너를 만난다. 우리에게 아니, 내게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 너무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긋하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네게 향한다. 여기로 이사 오기 위해 모든 걸 정리해야 했다. 힘들 것 없었다. 기꺼이 했다. 네가 없는 그 집에 나 혼자 1000분의 1초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으니까. 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고 최소한의 짐을 풀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다. 네가 금세 돌아올 줄 알았다. … 너는 아직 소식이 없다. 

 

걷는 동안 바람결에 헝클어졌을 머리카락을 빗어낸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끝에 걸린다.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아, 또 …. 반지 장식이 손바닥 쪽으로 돌아가 있다. 최근 들어 자꾸만 반지가 헛돈다. 빙글, 툭 튀어나온 장식을 손가락 밖으로 돌려 정리하고 있자니 헛웃음이 났다. 너도 이렇게 쉽게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든, 너든 이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열린 문틈 너머로 너를 본다. 그립고 또 그리운 너를. 한없이 작고 여린 뒷모습이 아프게 박힌다. 그 날, 너의 뒷모습도 이랬던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실은 너도 무서웠을 텐데. 달아나고 싶었을 텐데. 조금의 지체 없이 단호하게 내 앞을 막아섰던 너를, 태산 같던 너를 나는 잃었다.  

 

"오늘은 푹 잤어요?"

 

한껏 높은 톤으로 웃으며 안부를 묻는다. 네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 새카만 눈이 나를 담는다. 방황하는 눈동자. 아무런 빛이 담기지 않은 너의 탁한 눈길에서조차 나는 다정함을 읽는다. 다정했던 너의 시선을 추억한다. 1초. 네 시선이 빨간 컨버스화에서 멈춘다. 미간이 살짝 구겨진 것도 같다. 시선을 고정한 채로 너의 입술이 열린다. 맞아, 그 신발이야. 기억나? 

 

"… 안녕하세요."

 

낯선 어른을 만난 아이처럼 웅크린 어깨로 네가 인사를 건넨다. 참았던 숨을 조용히 내보낸다. 지난달보다는 많이 발전했다. 더 이상은 내게 누구냐고 따져 묻지 않는다. 정확히 오후 1시만 되면 병실에 등장하는 내게 익숙해진 게 틀림없다. 나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1시와 연결된 어떤 사건을 기다리는 쪽에 가깝다. 아주 잠시, 막연한 기시감과 고통이 휩쓸고 지난 눈동자는 다시 텅 비어있다. 분명 너는 나를 보고 있지만, 너는 나를 조금도 모른다. 

 

 

 

 

한 시간은 짧은 듯 길다. 협탁에 놓인 책을 펼쳐 읽어주기도 하고 과일을 깎아 건네기도 하고 네가 좋아하던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며 시간을, 나를 녹인다. 네 앞에서 무너질 수 없다. 무너진 것은 너 하나로 족하다. 네 앞에서 감히,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오후 2시. 머뭇거리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내일을 기약한다. 끝까지 웃는 얼굴로 너와 작별한다. 모든 것이 돌아와도, 네가 보았을 내 마지막 얼굴만큼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네가 더없이 사랑했던 미소를 네 눈동자에 꾹꾹 눌러 건넨다. 

 

 

 

 

너를 병실에 남겨두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25분이 25년 같은 길. 언젠가 꼭 너와 함께 걸어 나오고 싶은 길. 땅에 붙어 쉬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힘껏 떼어낸다. 식은땀이 흐른다. 온 몸이 젖는다. 

 

달칵.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가쁜 숨 고르며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어색하게 웃으며 안부를 전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가엾고 슬퍼서. 너의 조각나버린 몸과 기억을 이어 붙일 힘이 내게는 없어서. 많은 것이 변한 듯 변하지 않아서. 1년 전 그 날, 벼락같던 그 날에서 우리는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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