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는 비행기를 타고
이번에는 비행기에 실리는 악기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지난 회차에서 살짝 언급됐던 내용이긴 합니다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 이야기와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누차 말씀드렸듯 기내로 들어오는 모든 짐은 규격과 무게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들을 울게 했던 유골함도 반려견이 탈출할 뻔했던 반려 동물 케이지도 모두 정해진 규정에 따라서 실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악기는 어떨까요?
비행기에 악기를 가지고 타는 승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간혹 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가지고 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정도 사이즈의 악기라면 보통의 다른 짐들처럼 선반에 올려두면 되기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승무원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없고요. 하지만 사이즈가 커지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어느 노선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단체로 탄 적이 있습니다. 관악기나 바이올린 같은 작은 현악기는 선반으로 착착 자리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지요. 야리야리한 체구의 여자 승객이 자기 몸보다 큰 첼로를 매고 옵니다. 미쌍이 승무원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규정대로 안내하면 되니까요.
첼로 손님을 안쪽에 놓으시고
손님께서 바깥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아뿔싸, 입에 붙은 '손님'이라는 호칭이 첼로에 가서 붙었네요. 아무리 한 좌석 점유하고 가는 악기라고는 하지만 존칭까지 써버렸으니 얼굴이 화끈 불어져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꿋꿋하게 다시 설명합니다.
"손님, 비상 탈출시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악기는 창가 쪽에 두고 벨트로 고정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첼로 손님이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옆에 앉은 연주자가 첼로에 벨트를 매는 걸 확인하자마자 미쌍이 승무원은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
이렇게 커다란 악기가 비행기에 실릴 때는 좌석 하나를 더 구매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빈자리(바닥 공간)에 세워 고정시켜야 하지요. 만약에 있을 비상 상황에 대비해 창가 쪽에 세우되, 안전 관련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이유로 더 큰 사이즈의 악기들은 기내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규정을 초과하는 큰 악기들은 수하물로 실릴 테니까요.
그렇다면 비행하면서 미쌍이 승무원이 본 가장 작은 악기는 어떤 걸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네 글자입니다. 제 기준으로는 요즘 잘 보기 힘든 악기입니다. 감이 오시나요?
때는 미쌍이 승무원이 제주 뻥 제주, 국내선 비행을 하며 날아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주 노선 특성상 봄, 가을에는 단체 승객이 많이 탑승합니다. 학단(학생 단체), 할단(노인 단체), 중단(중국인 단체) 등등이 있지요.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에 '할단'이 탑승했습니다.
할단의 특징으로는 좌석 번호를 잘 찾지 못하거나 일행끼리 자리를 바꾸다 꼬여버리는 경우 같이 좌석 이슈가 벌어진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헤어스타일과 똑 닮은 오메기떡 상자를 들고 탄다는 것. 그 외에 간혹 감귤나무 묘목을 가지고 와 승무원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선반과 좌석 밑 공간에 오메기 떡이 떡하니 들어갔습니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저 미쌍이 승무원 입에 군침이 돌뿐이지요. 하지만 통로 쪽에 앉은 할아버지 무릎사이에 초록초록한 잎이 보입니다. 앞 좌석 밑으로는 안 들어가고, 선반에 올리자 하니 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다고 할아버지께서 극구 사양하십니다. 그나마 단체라는 특성 덕분에 옆자리 승객도 일행인지라, 창가 쪽 승객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손님, 이거 가지가 꺾일까 봐 위에 안 올리신다고 하시는데, 괜찮으시면 창가 쪽에 둬도 될까요?"
"그러엄, 우리 다 식구여. 이리 줘! 이리."
흔쾌히 묘목을 받아 창가 쪽으로 붙여주시는 할아버지.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이제 이 정도는 능숙하게 해결하는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비행도 무난하게 잘 흘러가고 이제 착륙만 하면 퇴근입니다. 야호!
'쿵, 덜덜덜...'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고 속도를 줄여 주기장으로 이동합니다. 항공기가 이동 중일 때는 승무원도 승객도 모두 착석해야 하지요. 미쌍이 승무원이 통로를 바라보며 움직이는 승객이 없는지 체크하는데,
'삐비비 삐비'
너무나 익숙한데 오랜만이라 생경한 느낌마저 드는 연주 소리가 들려옵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연주할 생각인지 할아버지 한분이 몸을 일으켜 팔걸이 걸터앉으셨네요.
'삐비비 삐비비비'
계속 연주가 이어지지만 감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미쌍이 승무원이 하모니카 연주자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손님 자리에 앉아 벨트 매 주세요."
다시 자리에 앉은 연주자는 멜로디를 이어갑니다. 주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박자 맞춰 박수를 칩니다. 그렇게 내릴 때까지 연주는 계속되었습니다. Taxing이 짧아 다행이었습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