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는 Apr 05. 2024

뇌에 안전 경보기를 달았다

사고 트라우마가 만든 습관


카메라 필터가 씐 뇌

정신과를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은 뇌는 매우 주관적이며 그래서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아무리 내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그 사고 자체가 내 뇌에서 ‘주관적’ 해석을 거친다.


이는 사람마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한 대처 방식이 습관처럼 자리 잡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자신의 경험과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단, 이 판단은 주관적 해석이다. 나는 뇌에 카메라 필터가 씌었다고 본다.


상담을 통해 내게 과거 경험으로 생긴 나쁜 습관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회와 타인 불신, 강박적 계획 짜기, 결벽 등이다.


“자나 깨나 불조심!”

사실 내 아버지는 태풍 때 업자의 부주의로 시설물이 떨어지면서 사고를 당했다. 만약 법이 엄격해 시설물 관리에 주의했다면 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흔히 그렇다.


가족의 사고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이 사회는 필요한 법이 부재하며 이미 있는 법을 관리하는 데도 안일하다. 음주 운전 사고, 스쿨존 교통사고, 수영장 카페 사고, 이태원 참사 등. 숱하게 벌어지는 안전 불감증 사고들을 보며 세상에 억울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씁쓸한 사실을 되새긴다.


중2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아빠의 사고를 맞닥뜨렸다. 혼수상태인 아빠가 깼다는 소식을 기다리면서도 내 일상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를 나갔고 학원도 다녔다.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서 일상생활을 보내는 데 죄책감이 들었다. 제발 아빠가 깨어났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이미 아빠가 삼도천을 건넜을까 싶어 날벌레 한 마리조차 죽이지 못했다.


그즈음 내 머릿속에는 ’자나 깨나 불조심!‘ 포스터가 둥둥 떠다녔다. 아무리 내가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하다못해 사람은 길을 걷다가도 위에서 떨어진 화분이나 벽돌에도 다친다.


아빠의 사고로 나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운명이 툭툭 던지는 돌 하나에도 무력한 인간은 발이 걸려 휘청거리고 넘어지고 고꾸라진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준비된 자세로 지금을 살더라도, 바로 몇 분 뒤에 사고로 죽을 수 있다.


인류는 이제껏 환경을 정복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정작 그 안의 인간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다.


민감한 기질 + 성장 환경 = 불안이 높은 사람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자나 깨나 불조심!’ 포스터. 이는 내 뇌 속에 안전 경보기를 달았다. 문제는 내 뇌 속 안전 경보기가 쉴 새 없이 점멸할 뿐만 아니라 오작동을 일으킨다.


나는 타고나길 민감한 아기였다. 일반 기저귀가 피부에 닿는 것을 싫어해, 엄마는 순면으로 된 똥기저귀를 손으로 빠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원체 기질적으로 민감한 데다 성장 환경까지 더해져 불안이 큰 사람으로 자랐다. 날뛰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나 자신을 포함해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비행기를 타거나 영화관에 가면 제일 먼저 비상구를 확인한다. 이어서 탈출 경로를 머릿속에 그린다. 비상시 어떻게 도망갈지를 여러 번 연습하고서야 비로소 안심한다. 그럼에도 혹시나 벌어질 사고를 우려해 긴장을 놓지 않는다.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이런 안전 염려증은 비바람이 치는 날에 더하다. 바람이 부는 소리만으로도 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한다. 우산을 폈을 때 사방의 시야가 가려지는 것이 무섭다. 거기다 혹여 내 우산이 날아가 다른 사람을 칠까 봐도 겁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긴다.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주위를 단속하는 안전 경보기. 그게 나다.


그러나 미처 안전 경보기가 애엥- 울리기도 전에, 안전 센서등이 몇 번 점멸하기만 해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가는 로봇이 됐다.


사고 트라우마는 그렇게 내 안의 불안과 불신을 증식시켰다. 나는 매 순간 초식동물 같이 주변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와 그에 미치는 사람의 손을 믿지 않게 됐다.


배너 : <Stag Resting, Colorado Springs>, Richard La Barre Goodwin

이전 01화 4주 정신과 방문 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