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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Mar 29. 2024

4주 정신과 방문 후기

불안과 PTSD

네 번의 심리 상담과 세 번의 정신과 진료를 정리해보려 한다.




오늘의 진료로 그동안 한 달 가까이 먹던 저녁약(자나팜 0.125mg 1/4알, 설트랄린 25mg 1/4알)을 단약 하기로 했다. 심리 상담을 통해 병리적 증상 없음/ 불안의 원인이 ptsd라는 걸 명확히 인지한 덕분이다.


더불어 내 몸은 너무 민감해 신경안정제를 반알로 증량하기만 해도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는 증상으로 긴장감과 이갈이가 심했다.


그래서 필요시 약만 2주 치를 소아, 노인에게 처방하는 최소 용량으로 받았다. 앞으로 내 트리거가 눌려 스스로 불안감을 조절할 수 없을 때 알아서 용량을 조절해 먹기로 했다.


심리상담은 (아마) 지난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심리상담에 대해 한 마디로 평하자면,


“딱 지금 시기에 받길 참 잘했다.“


상담 선생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만약 내가 우울증으로 ‘저 죽고 싶어요.‘ 하며 병원을 찾았다면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곡해하거나 모두 튕겨냈을 것이다.


정신과에 첫 방문했을 때만 해도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내가 병원에 가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러다 “상세불명의 우울증”을 진단받은 내 병명에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 번의 고통스러운 상담을 끝낸 지금 돌아보면, 내 일상이 굳건했기에 외려 불편한 내 과거를 헤집는 힘겨운 상담을 버틸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직면하고 나를 (가슴까진 아니더라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정신과에 갔나?




일찍이 나는 이 글에서 -부단히 용기를 내- 내가 가진 불안을 ‘처음’ 글로 표현해 봤다.


(*천재지변-태풍-에 대한 트리거가 있는 분들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지인은 이 글을 읽고 “너 참 괴롭구나.”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이 의아했다.

하지만 저 날에도 불안의 원인에 대해선 차마 쓰지 못했다. 단지 그 불안을 인지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바로 신체적 증상이 올라왔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정도로 큰 감정이 가슴에 걸려 삼켜내야 했다.


나는 불안의 증상이 올라올 때마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차단하고 의식을 꾸욱 내리눌렀다. 그렇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냈지만 내 속은 계속해서 닳고 있었다.




크게 트라우마로 남은 건 2003년, 15살 때 겪은 태풍 ‘매미’다. 나는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큰 불안을 느낀다. 그때의 나는 초식동물처럼 민첩하지만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바람이란 요소 자체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알록달록한 풍선을 보기만 해도 하나하나 다 바늘로 터쳐버리고 싶다. 풍선을 불 때 내 손 안에서 동그랗게 커지는 미끈거리는 풍선의 촉감이 형용할 수 없는 불안을 자아내 정신줄을 잡느라 애쓴다. 비가 오는 날은 더하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우산이 날아갈까 봐 무서워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고 다닌다.


그 누가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풍선과 우산을 보며 불안을 느낄까? 나는 이 불안감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에 더해 이 바람에 대한 불안감이 내가 나고 자란 제주에 있을 때만 생긴다는 사실도 말이다.


상담 선생님은 당시 사고 때 겪었던 ‘공포’와 ‘무력감’이 뇌의 해마에 새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과거의 신체적 반응이 자동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란다. 더불어 그 누구도 당시 나의 감정을 돌아봐주지 않은 탓이다. (’당시 그럴 여력이 없었다‘로 해석한다)


혼자 삭여야 했던 감정이 감정의 형태가 아닌 신체적 증상으로 남아버렸다. 과거의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기억이 뇌에 새겨지고, 내가 감정을 느끼지 못함에도 신체적 반응만이 또렷이 나타난다.


참으로 인체의 신비는 놀랍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 방법을 고민한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선 반복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데이터를 쌓아 통계로 만들어야 한다. 안전 데이터가 쌓일수록 불안 요소에 둔감해진다. 즉, 이 불안 요소를 외면하지 말고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 불안의 이미지를 ‘살이 벌어진 우산‘에서 ‘알록달록한 비눗방울’이 내려앉는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나는 안전하며,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어릴 적 15살의 무력했던 나와 지금의 성인인 나는 다르다는 확신을 되새긴다.


나는 앞으로도 제주에서 숱한 태풍들을 맞이할 것이고, 수천 번의 비 오는 날을 겪을 것이다. 안전한 경험이 쌓일수록 내 불안은 점점 작아질 게 분명하다.


불안의 원인을 찾았으니, 그로 인한 나의 부정적 행동 방식을 인지하고, 점검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러면 나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해체하고, 나의 강점으로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 감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앞으로의 나의 정신과 방문 일지를 기록해보려 한다.



23년 4월 제주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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