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年 17世忌初頃(세기초경)에 이 땅에 사람들이 入住(입주)해서 部落(부락)이 形成(형성)되고 그 삶이 只今(지금)까지 約(약) 300年이 넘는 時點(시점)에서 梧翠(오취)마을의 300年의 來歷(내력)記錄(기록)도 없고 있다는 것이 1970年代의 마을 行政上変化(행정상변화)된 몇 가지 事實(사실) 밖에 없으므로 220年前(전)의 來歷(내력)은 說話(설화)로, 1940年利後(이후) 來歷(내력)은 現在(현재) 生存(생존)한 사람들의 證言(증언)을 中心(중심)으로 描寫敍述(묘사서술)코저 한다.
짧고 좁은 眼目(안목)으로 梧翠(오취)마을 來歷(내력)을 理解(이해)하는데는 限界(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最善(최선)을 다해 年歷(연혁)을 編輯(편집)코저 한다.
記錄上(기록상) 몇 가지 事項(사항)을 明示(명시)코저 한다.
첫째, 산 證言(증언)을 中心으로 한다. 但(단) 證言(증언)이나 記錄物(기록물)이 없을 時(시)는 說話(설화)에 依存(의존)한다.
둘째, 說明形(설명형) 위주로 記述(기술)하였다.
셋째, 人名紀錄(인명기록)은 그 時代(시대)에 特(특)히 한 일에 한하여, 1회 또는 2회만을 記錄(기록)함을 原則(원칙)으로 한다.
넷째, 年歷上(연혁상) 個人(개인)의 어두운 面(면)은 記錄(기록)을 除外(제외)한다.
2012년, 오취마을 노인회에서 편찬한 ‘오취연혁’의 머리말이다. 노인회장님이 한자와 한글을 섞어 손수 적어 내려갔다. 처음엔 적잖이 놀랐다. 소싯적, 논두렁깡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만큼, 섬마을 특유의 거친 선후배 관계 속 여러모로 주먹깨나 쓰셨던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혈기를 표출하고 싶은데 요즘엔 그러질 못해 아쉽다며, 술김에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취연혁, 2012년에 편찬을 완료했지만, 노인회장님은 여전히 손글씨로 기록을 이어가시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금은 폐교된 오취분교의 1회 졸업생이시며, 정력적으로 사업을 여러 번 시도했고, 실패의 쓴 맛도 몇 번 겪었다. 인생 첫 사업은 배로 실어 나른 수산물을 여수 시장에서 파는 것이었다. 이웃에게 꽤 큰돈을 빌려 수산물을 샀는데, 어떤 이유로 입점조차 하지 못해 싹 다 폐기했다고 한다. 무턱대고 추진했던 것이 젊은 날 호기로운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사업으로 고흥의 향토음식인 ‘진석화젓’을 팔아봤지만, 세금이 더 나와 접었다고도 하셨다.
한 때 마을의 이장직을 역임했고, 노인회장직은 지금까지도 장기 집권하고 있다. 오해하진 말자. 회장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백 퍼센트 봉사직이다. 국가가 노인정에 배정한 소액의 운영비를 관리하고, 어르신들이 노인정으로 놀러 올 수 있게 꾸준히 점심을 준비하실 뿐이다. 노인정에 들어가면 여태껏 노인회에서 진행한 행사 사진들이 쭉 진열되어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어르신들의 비교적 덜 늙었을 때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분명 오랜 세월이 그를 지혜롭게 만들어 갔을 터다.
노인정은 일종의 마을도서관이다. 과거 마을공관이었던 건물이라 위치도 좋은. 바다와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능선에 있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마을제일의 정자가 지근거리다. 정자 옆엔 묘목도 하나 식재됐다. 섬을 지켜온 당산나무 고목이 세월 앞에 쓰러졌고, 2018년, 노인회장과 이장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작은 당산나무를 다시 심었다 한다. 심지어 운동기구도 있다. 어떤가. 이 정도면 도서관을 넘어 거의 ‘문화복합시설’에 버금가는 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좌) 노인정 옆에 있는 정자와 (우) 운동기구와 당산나무 묘목
책 대신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르신들 말씀을 듣다 보면 어느새 오취마을의 근현대사를 통과하게 된다.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일제강점기, 광복 후 혼란기,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따위의 이야기가 생경하게 펼쳐진다.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제대로 안 다뤄, 일어난 줄도 몰랐던 여순반란사건도 이곳에서 처음 접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거나, 마을홍보를 위한 인터뷰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노인정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젠 여든 명이 채 안 사는 마을이라, 마을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연혁 머리말에서 언급됐던, 설화와 증언, 즉 ‘전승’만이 남아있으며, ‘전승’을 어떻게 해석하여 기록할지가 마을에 주어진 역사적 과제다. 정말 ‘이야기’에만 발을 딛고 있는, 잊히면 사라지는 마을인 셈이다. 동네의 자원을 조사하다 노인정 오래된 서랍 안, 마지막 한 권 남은 오취연혁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손을 덜덜 떨며 책을 가져왔고, 혼신의 집중력을 발휘해 스캔을 떴다.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을 거라 예상을 해도 과언은 아닌 노인이 노인정 책상에서 마을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억센 고집과 사명이 한데 뒤섞인 시선이 돋보기안경 너머 볼펜을 놀리는 손가락을 쫒는다. 왕복수평운동을 그리며 한 줄 한 줄 내려가던 눈동자는 문득 마을 전경이 들어오는 창가로 향하고, 이윽고 볼펜, 돋보기안경을 내려놓는 소리가 탁, 탁, 두 번 울린다. 그 노인은 어떤 사색에 잠기는 듯한데, 나에게 그 내용은 마을의 오래전 기억처럼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노인경로당에서 바라본 오취마을 전경이다.
그리고 사실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썼고, 앞으로도 써나갈 이 글들은 오취연혁과 노인회의 인터뷰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 노인의 사색이 어떤 것이었을지, 집필 끝에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