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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빠 Oct 18. 2022

우울, 삶의 보편적 바탕색

'당신이 옳다'를 읽고

늘 우울을 없애고 싶었다.

아니 때로는 이것을 붙잡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끌어안고 곱씹으며, 영원히 이 안에 갇혀있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요즘은 이것이 나를 밑바닥까지 데려가지는 않는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봄을 안다.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말이다.
 - 정혜신(2018)「당신이 옳다」 해님. p86


이 문구를 읽었을 때, 나는 언제까지 이런 감정을 가져야 하지? 하는 의문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었다.      

중학교부터 우울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30살이 넘어서 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받았다.

상담을 진행하는 와중에

 ‘아, 내가 중학생 때부터 우울감 있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극심한 우울에서는 벗어났다.

우울감보다 나를 중학교 때부터 괴롭히는 감정은 이것이다.      


“죽고 싶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오기 전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내 본 적 없다.      


"왜 한 번도 그 말을 주변 사람에게 하지 않았나요?"

정신과 상담 때 들은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과연 나는 왜 이 말을 할 수 없었을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면 안 돼!'라고 스스로 가두고 지내왔었다.  



우울함과 ‘죽고 싶다’라는 좀 다른 것 같다.

‘죽고 싶음’ 도 보편적인 바탕색일까? 의문이 든다.






글쓰기 수업에서 위의 글을 함께 나누었다. 격려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살고 싶다'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잖아요.”

“보편적인 감정인 것 같아요.”     


등등의 말씀을 해주셨다.


내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들으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병원 상담 때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간질간질한 기분이 든다.

나쁜 기분은 아니다.   

나의 어두운 면을 나눠도 상처받지 않음에 감사하다.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며, 이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이 감정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나를 알아가고 자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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