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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17. 2024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윤혜의 의미

윤혜는 승준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승준이 늘 말했듯 윤혜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였으니 당연한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여겼다. 승준은 논문이 엎어지는 좌절을 겪고 고시 공부에 뛰어들었다. 승준이 연구하던 주제를 누군가 먼저 발표했다고 했다. 윤혜는 논문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운동까지 그만두고 학원과 고시원만을 왔다 갔다 하는 승준을 보며 어떤 마음인지 조금 짐작했을 뿐이다. 승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나흘째 연락이 안 되는 승준 대신 학생처 조교 언니에게 수술 소식을 들었다. 승준이 좋아하는 카페에서 드립백을 사서 고시원 근처에서 기다렸다. 승준은 학원 앞, 고시원 바로 앞까지 윤혜와 가는 것을 꺼렸다. 공부하는 중인데 연애하는 것을 광고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잠깐 얼굴만 보려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승준을 볼 수 없었다. 혹시 지나쳤을까 해서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했지만, 답은 없었다. 집에 돌아온 윤혜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화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걱정이 되어 답답했다. 혹시 방안 공기 때문일까 싶어 창문을 열었다. 달도 구름에 가려진 까만 밤이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보다 날이 밝아올 때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울리는 벨 소리에 놀라서 깼다.  

“여보세요? 오빠?”

“여기는 여론조사기관입니다.”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SNS에 메시지가 와있었다. 보자마자 전화했지만 음성을 남기라는 안내멘트를 들어야 했다. 사람 목소리 듣기 힘든 아침이었다. 헛헛했다. 속이 빈 탓인가 싶어 대성집에 갔다. 제육에 계란말이를 시키고는 몽땅 남겼다. 혼자 온 윤혜얼굴을 보고 급히 볶아 내놓은 제육볶음은 양념이 덜 배어 있었고 양파는 알싸한 맛이 채 가시지 않았다. 끌로이가든을 가려고 대성집에 들른 것일지 모른다. 이른 시간에 갔지만 창이 없어 테이블엔 이미 램프가 켜있었다. 시간이 증발한 듯했다. 아쌈밀크티를 시키고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밀크티를 빨리 마시고 싶은 마음에 내려가는 속도가 너무 더디다고 승준에게 불평했었다. 이번엔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순식간에 남김없이 내려가 버린 모래가 미웠다. 내려가는 모래가 승준 마음에 남은 자신 같아서 모래를 붙잡고 싶었다. 윤혜는 특별한 존재라더니 뿌리 없는 말은 쉽게 흔들려 날아갔다. 말인지 윤혜인지 무언가 모래바람 속에 파묻혔다.


윤혜야, 나 요즘 좀 힘들어.

네가 조금 기다려주길 바랐는데 너도 그게 힘들 수 있겠다. 나 잠깐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나중에... 조금 나중에... 좀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연락하자.


괜찮아지는 것은 승준일까 윤혜일까. 나중은 윤혜가 셀 수 있는 시간일까. 윤혜는 글자 몇 줄에 제 흔적도 의미도 사라진 것이 뚜렷해 보여서 화가 났다. 어디에 대고 화내야 하는지 찾지 못해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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