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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Sep 15. 2022

지하철을 놓치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회사 출근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다녔다. 9시 00분에 딱 맞춰 가거나, 00분 48초에 들어가거나, 가끔은 01분 00초, 또 가끔은 02분 37초쯤이 되어서야 들어갔다.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부장님이 계실 때라 나를 힘들어하셨다. (나는 부장님이 힘들지 않았다. 가엾은 부장님.) 지금에야 생활 패턴도 많이 안정되고, 또 회사가 오후 출근이라 지각할 일도 없지만 몇 년 전의 나는 지각쟁이였다. 꽤 한참동안 민폐를 끼치고 다녔다. 친구들과의 약속에도 자주 늦었다. 이웃에 사는 친구와 만날 때도 늦었고, 멀리서 오는 친구를 만날 때도 갖은 핑계를 대면서 늦어야 했다. 평생을 살면서 늘 20분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있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구차했다. 늦잠을 잔 것도 아니고 30분씩 화장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밍기적거리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었다. 지금에서야 "그땐 내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나보지."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미안함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던 것 같다.




  무기력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그래서 아침마다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분명 집에서 3분만 일찍 나와도 되는데 그게 안 된 모양이다. 부지런함이 생의 모토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게으르게만 보었다. 친구들이 무기력할 때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상담을 받으러 가라고 들쑤시면서, 정작 나는 내가 힘들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퇴근하면 그냥 늘어져서 멍하게 있고, 서너 시간씩 같은 자세로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200개씩 봤다. 세상은 멈춰있고, 내 엄지손가락만 스마트폰 화면 위를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그러면서 내가 게으르다고 나를 자책하고, 나를 욕하고, 나를 벌하고 싶어 했다. 기력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가 나에게 무심해서, 그게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퇴근하고 나서부터 몇 시간을 침대에서 비비적거리고 있노라면 제 때 잠을 잘 리가 없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서 30분은 지나고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이미 일어날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지하철역까지 20분 거리의 내리막길을 발목이 부러져라 12분 만에 뛰어내려갔다. 지하철에서 8시 50분에 딱 맞춰 내리고 큰길의 신호등까지 잘 맞아야 9시 00분에 쎄이브할 수 있었다. 오늘도 지각이면 안 되는데, 부장님은 대체 왜 맨날 1시간씩 일찍 오는 거람, 드러운 회사, 자율 출퇴근도 모르냐 하는 생각들을 거쳐 결국은 내가 미워졌다. 거기다 이놈의 지하철은 자꾸 내가 내릴 역 바로 앞 역에서 배차간격을 조정한답시고 정차했다. 가끔은 20초면 출발했지만, 2분, 3분씩 정차하는 날도 많았다. 8시 49분, 51분으로 지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매일같이 울고 싶었다. 아니, 애당초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고되고 지친 마음이 울고 있었다. 지하철을 놓치면 탁, 맥이 빠지고 가끔은 그대로 눈물이 주룩 났다.


  공격하려는 화살은 장전했는데 그걸 밖으로 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냅다 내 방향으로 시위를 당겼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미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서 결국 나라도 미워해야 했을까. 내가 싫었다. 짜증났다. 나를 아주 혐오했다. 고작 5분, 10분 빨리 나오면 될 일을 이렇게 개떡같이 해서 출근시간 1시간 내내 초조하게 만드는 내가 싫었다. 나의 '게으름'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맨날 똑같이 구질구질하게 살면 어떡하지 싶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냥 세상이 다 싫었다. 아무리 한숨을 쉬고 짜증을 내도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광판을 노려봐도 전광판에 떠있는 지하철 픽셀은 이전 역에서 한 칸 한 칸 지렁이처럼 기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 같았고, 내 자기 연민은 아스팔트에 눌어붙은 기름 덩어리처럼 지긋지긋했다.





  내가 힘들었구나, 하는 감각은 언제나 다 지나고야 알아차렸다. '힘드니까 쉬어야지' 하는 감각을 못 느낄 때가 많았다. 감정적으로 나를 잡아먹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것 때문에 힘들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까지 내 마음의 소리에 둔감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화는 내 마음 안에 있다'는 말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지만, 그때 나는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지하철을 놓치는 것, 지하철을 놓쳤을 때 내게 꽃혀 든 감정들이 나에게 힌트였던 것 같다. 지하철을 놓치면 세상에서 버려지는 것 같았거든.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 개똥 같아서 오늘을 다 조진 것 같았다. 이게 이상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지. 돌이켜보면 아침마다 '너의 내면 아이를 들여다볼래?' 하는 신호였던 모양이다. '버려지는' 기분을 들여다보라는 신호.


  요즘은 잘 뛰지 않는다. 억지로 뛸 일이 없다. 마음의 안정을 어느 정도 찾고 나서는 생활패턴도 돌아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까진 아니어도, 어딜 가든 15분은 일찍 도착할 시간에 움직인다. 회사에 할 일이 많으면 2시간씩 일찍 출근하기도 한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20분 빨리 도착한다. 내가 20분 빨리 도착하고 친구가 20분 지각하면 결국 40분 동안 정처 없이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발 닿는대로 걸으면서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내 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면서 울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인생이 그렇게나 무거웠는데, 내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줬구나, 한다. 자기 연민과 과거의 상처에 곱게 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를 감싸 안는다.


그래도 늘 그런 마음이다. 그런 시기를 지나와서 또 지금 평온하고 행복한 것 같아. 나를 미워하고 세상을 증오해봐서 이제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나보다. 연민도, 환멸도 없이 그냥 살아갈 수 있다. 분노와 증오와 미움에 바싹 말라 허덕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보낸다. 조금씩 더 평온해진다. 지하철을 놓쳐도 다음 지하철을 기다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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