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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올디 Nov 21. 2024

저희 임신했어요!

임밍아웃!

2024년 11월 8일


아내와 함께 알고 지내는 지인 부부와 저녁약속을 잡았다. 못 본 지 오래되기도 했고, 이전부터 만나자고 했었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임신 소식을 알릴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약속을 잡았다.

이 날 전까지 임신소식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알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 동생에게 알렸다. 동생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생에게서 아직도 여러 조언을 듣고 있다. 그리고 처형에게 알렸다. 처형이 뭔가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내 동생에게만 알리자니 뭔가 좀 그래서 처형에게도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그리고 수영선생님과 아내의 PT 선생님도 소식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스케줄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입덧을 시작하면서 아내의 회사 팀장님과 사수에게도 알렸다. 그 후 단축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내의 팀원들은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회사 동기에게 소식을 알렸다. 내 동기도 지금 임신을 한 상태인데, 같은 동네에서 어느 조리원이 좋은 지, 어떤 병원이 좋은 지에 대해서 물어보기에는 아무래도 동기가 편할 것 같아서 알리게 되었다.

이렇듯 모두 필요에 의해서 알린 사람들뿐이었고, 이번에 지인 부부는 처음으로 순수 임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남을 가진 것이라 느낌이 남달랐다.

집 근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근황을 얘기하다가 조심스럽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임신 소식을 알렸다. 깜짝 놀랐지만 이내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었다. 축하를 받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뭔가 또 감회가 새로웠다. 지인 부부도 근처에 살고 있어 앞으로 자주 보면 좋을 것 같다.


2024년 11월 10일


4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러너스 클럽에 방문했다. 원래는 임신하기 전 아내와 러닝을 본격적으로 해볼 목적으로 발분석 서비스를 예약했는데, 지금은 러닝을 할 수는 없겠지만 예약해 둔 것이 아까워서 가보기로 했다. 러너스 클럽에 도착해서 아내의 임신사실을 알리니 아내는 많이는 뛰지 않고 최대한 무리 안 가는 선에서 분석을 해주신다고 했다. 나와 아내 모두 어느 정도 체형이 틀어진 것은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체형이 틀어져있어서 발분석을 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요즘 부쩍 소화가 안되어 산책이 많이 필요한데, 산책을 오래 하면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산책 때 신을 목적으로 러닝화를 구매했다. 러닝화를 산 김에 양재천을 잠깐 산책했는데, 아내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해서 한참 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긴 시간 외출은 삼가야 할 것 같다.


2024년 11월 14일


처음으로 3명 되고 맞는 결혼기념일이다. 회사에서 시그니엘 숙박권을 얻게 되어 결혼기념일 겸 오늘 숙박권을 쓰기로 했다. 우리가 묵은 방은 평일 기준으로 거의 100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의 프로모션이었는데, 뷰가 좋아봤자 거기서 거기 아닌가? 했던 생각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압도적인 뷰였다. 우리는 101층에 묵었는데 뷰가 너무 좋아서 날씨가 조금 안 좋았는데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처음 3명이 되고 맞는 기념일에 제대로 기념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한 하루였다.


2024년 11월 15일


어제 황홀했던 시그니엘 숙박을 마치고, 근처 롯데월드에 갔다. 아내가 더 늦기 전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겸사겸사 교복을 빌려 롯데월드로 갔다. 겨우겨우 교복을 빌려서 갈아입고, 아내가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해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교복을 입고 햄버거를 먹고 앉아있자니 어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장을 입은 어른 같긴 했다. 그래도 아내가 학생 같아 보여서 다행이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사진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을 해결하고 롯데월드로 향했다. 롯데월드로 가니 수학여행인지 현장학습인지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웃긴 건 학생들은 전부 사복으로 멋을 내고, 우리처럼 어른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롯데월드에선 임산부인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어서 주변을 산책하고, 사진을 좀 찍다가 집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형이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해서 얼른 가서 집을 청소해야 했다.

생각보다 집에 늦게 도착해서 서둘러 저녁을 먹고, 아내는 휴식을 하라고 하고 집 청소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아내의 임신 사실을 몰라서 밤 12시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다. 혹시 몰라 아내는 집에서 쉬라고 하고 나 혼자 마중을 나갔다.

처갓집 식구들을 모두 태우고 집에 와서 장모님은 오랜만에 만난 딸이 반가우셨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푸셨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내가 너무 늦게 잘 것 같았다. 아내와 눈짓을 주고받다가 아내가 장모님께 초음파 사진 앨범을 보시라고 드렸다. 장모님께선 임신 소식을 알아채시곤 눈물을 흘리셨다. 역시 가족에게 알리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서 장모님의 격한 축하를 뒤로하고 얼른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2024년 11월 16일


어제의 감동을 그대로 이어서 장모님은 우리의 임신소식을 너무 좋아하셨다. 내심 손주가 갖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도 괜스레 뿌듯해졌다. 장모님께선 우리 임신 소식을 들으시고 사실 최근에 돼지꿈을 꾸셨었는데 그게 태몽인 것 같다고 하셨다. 주변에 임신 소식을 알리기 시작하면 태몽을 꾼 사람들이 꼭 있다는데 장모님도 꾸셨다고 하니 신기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내가 피곤할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처갓집 식구들은 내일 일정이 있어서 오늘 밤에 다시 내려간다고 했다. 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처갓집 식구들을 역으로 바래다주었다. 장모님께서 아내를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도 알겠노라고 대답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요 며칠 동안 아내가 너무 무리한 것 같아 마음이 쓰여서 얼른 자자고 다독였다. 그래도 임신소식을 알리고 나니 뭔가 마음 한 구석이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2024년 11월 17일


아내와 결혼기념일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사진관에서 셀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시그니엘을 가기도 했고, 처갓집 식구들도 올라오게 되어서 못하다가 오늘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다.

예전이랑 옷도 똑같고 아직 아내가 배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사진상으로는 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3명이 함께 찍혀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년 이 사진에는 '크림이'가 함께하고 있을 텐데 어떤 사진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2024년 11월 18일


입사 후 가장 친하게 지내는 회사 동생들과 저녁약속을 가졌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예전부터 어울려 지내서 아내와도 몇 번 자리를 한 적 있는 동생들인데, 아내는 피곤할 것 같아서 함께 약속을 가지는 못하고 나만 참석했다. 한참 대화를 이어가다가 내가 사실은 아내가 임신했다며 임신 소식을 알렸다. 동생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하나 둘 지인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고 나니 뭔가 마음 한편이 개운해지기도 하고, 축하를 받으니 걱정보다 행복이 앞서서 좋았다. 이제 슬슬 주변에 소식을 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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