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입학은 독했다. 3월 셋째 주 잔뜩 기침감기에 걸린 녀석은 어째 조용하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배에서부터 끌어올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컬럭거렸다. 힘들었겠지. 스트레스도 많았겠지. 병원약 이틀 치엔 첫 항생제가 떡하니 들어있었다. 그렇다. 아이는 커다란 무리 속에 들어가 본격적인 고군분투가 시작된 거다.
아이는 혼공 중이고 이름도 거창한 자기 주도공부로 생활한 지 2년쯤 되었다. 하루의 스케줄을 소화하느냐 반으로 줄여주나, 모두 쉬게 하나, 마음속 갈등이 널을 뛰었다. 그래 복습만 하자, 독서만 하자, 일주일을 나는 그렇게 지냈다.
4월 첫 주, 학교에서 전화가 왔고 아이는 첫 조퇴를 했다.
열이 39.4도.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낳은 아이의 생전 처음 본 순간이라 더 그러했을 터. 병원에선 목이 아프긴 하지만 이유 없는 열이 오르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우린 금토일 쉬어 보기로 했다.
비상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비상인 것이다. 아들은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고 난 시원한 걸 먹이려고 난리였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일 내 새끼가 아픈 일, 어미인 나는 어떻게든 아이를 진정시키고 먹이고 재워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아이는 진정이 되고, 옛날 어르신들이 한 번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씀처럼 아이가 그랬으면 했다. 생전처음 10반이 넘는 무리 속에 들어간 아이가 몸도 마음도 튼튼하길 바란다. 이젠 더 이상 아치럽지 않다. 반드시 견뎌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