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프리즘
연수와 재연이 내 생에 사라지게 된다는 가정은 가장 거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연수가 미숙이라는 이름을 연수로 개명했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했던 날을 추억한다. 그 애는 우리가 자신을 “수가-”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을 사랑했다고 했다.
주의해야 하는 계절이 놀랄 만큼 문을 두드리는 시기에도 그 순간만큼은 몸이 산뜻해지고 긴장이 풀렸다고 말하는 연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재연이 연수를 단숨에 안는 장면으로부터 나는 온몸으로 부딪혔다. 나는 온갖 감각으로 그 영화를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잊고 둘을 빈틈없이 껴안았다. 나는 그 순간의 우리와 찰나만 존재할 연녹의 여름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다고 감각하는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음에 온전히 부서져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 우리가 여태 애증했던 모든 한계까지 단숨에 사라지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는 이 순간을 몇 년 뒤에도 되감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의 우정만 진실인 것만 같았다. 재연은 우리의 마음을 공감각으로 닿게 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무대 기획을 준비하고, 우리를 이름에 새긴 연수는 우리의 세계를 조소로 재창조하고, 나는 내 언어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평생 전부 표현하지 못할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전력을 다해 충돌하고 싶어 찰나마다 간절히 글을 썼다.
자신을 태우면서 자신의 세계를 해석하고, 각인시키며 우리를 계속 재정의하는 행위는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빛났다. 빛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만큼 숨겨지지 않는 빛이 존재하지만, 깊이 도달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경계 안에 언제까지나 들고 싶은 마음이 무서웠다. 나는 홀로 그들이 그리는 미래에 내가 없어도 둘은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복잡한 가상세계를 설계해 실험했다.
그런 세계에서 나는 예의와 친애를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발목에 묶인 실이 될 것 같았다. 우리가 우리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심란은 미제로 내 우주 속을 어떤 기한 없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 속을 그들이 영원히 알 수 없기를 바라면서도 매 순간 들키고 싶었다. 그러한 모순 속에서 나는 오랜 시간 헤매었다.
나는 감추고, 숨기고, 나만의 비밀을 공고히 지키고 싶었으나 그러한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어느새 흐르고, 나는 아픔을 잘 묻어놓은 줄 알았지만, 늘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근황을 묻는 한결 같은 일상에서 나는 무너졌다. 마음에 무언가 울컥 차오르고 치달았다. 나는 무엇을 꺼내고 있는지도 모르게 어지러운 마음을 우리에게 고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고요히 몰두하며 나를 지켜본다. 우리를 곧게 직시한다. 나는 결국 우리가 내 곁에 계속 해서 존재하였고, 우리의 마음은 전부를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별안간 깨닫는다. 현존하는 우주의 우리로부터 믿기지 않을 만큼 당하는 친애를 거스를 수 없다고 벅차오르게 감각한다.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