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위에 물건이 적재되는 순간 한층 아래에 깔린 녀석들은 고대 유물이 된다. 땅속 깊이 묻힌 것도 아닌데 도대체 발굴이 쉽지 않다. 그런 식으로 쌓여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냈더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지저분한 잡동사니 산이 만들어졌다. 필수품이라 생각했으나 결코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도 적잖이 보였다. 우리 부부는 힘을 합쳐 대 처분 작업에 돌입했다.
기한이 지난 품질 보증 증명서와 들여다보지 않는 제품 사용 설명서
추억으로 남겨 둔 비행기 티켓
개인 정보가 적힌 각종 서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증정용 볼펜
단추
종량제 봉투에 버릴 것은 버리고 쓸만한 물건들은 중고 마켓에 올리거나 무료 나눔을 했다. 일일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여간 귀찮았지만 누군가에게 쓰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여러 물건들을 내놓았다. 나눔으로 분류한 제품들은 올리자마자 연락이 와서 문고리 거래를 개시했다. 제품 수거가 완료된 후 "잘 쓸게요."라는 메시지를 받으니 뿌듯했고 덩달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과 오래전에 사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의자도 80%나 할인된 가격으로 내놓았더니 인기가 좋았다. 꼼꼼하게 사이즈와 높낮이를 확인하는 분이 계셔서 방에 왔다 갔다 하며 크기를 재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다. '잘 사용하실 분인가 봐.'라는 생각이 들어 성의껏 응답해 드렸다.
의자를 비롯해 내놓자마자 문의가 날아오는 제품들이 여럿 있었다. 순간 '내가 너무 싼 가격에 내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욕심을 버리고 제 쓰임을 다하도록 만들어 줄 새 주인을 찾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하루 세 건의 거래를 치렀는데도 자꾸만 더 내놓을 게 없는지 둘러보게 됐다. 조금씩 숨을 쉬는 수납장과 소소한 공간을 보니 물건을 보내고 더 큰 걸 얻었다는 확신이 들어서다.
버리는 게 홀가분하지 않고 두려웠던 나는 여분의 단추를 버릴 때에도 '만약에 쓸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니 머릿속이 금방 혼란스럽고 피곤해졌다.
'단추가 떨어지면 옷도 버리면 돼.', '만약이라는 가정이 드는 것들은 다 버리자.' 만일을 위해 만 가지 잡동사니를 이고 지고 살 수 없는 노릇이니 버리기 위한 새로운 기준을 확립했다. 그러자 정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청소가 너무 싫어서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바닥에 놓인 물건들에 있었다. 청소기를 돌리는 것보다 배로 힘든 게 바닥에 위치한 물건들을 들었다가 제 자리에 두는 일이었다. 매일 조금씩 비우다 보면 언젠가는 허리를 여러 번 굽히지 않고도 청소기를 돌릴 수 있겠지. 남편이 정리를 하던 도중에 작은 리모컨 하나를 들고 물었다. "이건 뭐지?" 우리 집 로봇청소기의 리모컨이었다. 복잡한 전선과 물건들 때문에 로봇 청소기는 협탁 아래 손이 가지 않는 공간에 방치 돼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물건들을 비축했더니 물건이 우리에게 준 건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함이었다. 앞으로 버려야 하는 것 말고 버려도 되는 것을 처분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있으면 좋은 것들은 달리 생각해 보면 없어도 되는 것들이니까.
환경을 생각한다고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집안 곳곳을 차지함으로써 일상의 편의를 망치고 있었다. 하루는 거실 분리수거함 앞에서 귀엽게 서 있는 반려견을 촬영했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건 반려견이 아니라 모아둔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들 뿐이었다. 늘 마음에 걸렸던 곳을 깨끗하게 정리하니 심적 피로가 해갈 됐다. 내가 비운 것들은 물건을 넘어 오랜 시간 불편하게 쌓아 뒀던 의무감이기도 했다. 재사용할 가치가 큰 것들은 당장에 손길이 닿는 곳으로 옮겼다. 버려도 될까 망설였던 물건들은 분리수거함과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없어도 돼. 버리고 싶은 건 버려도 괜찮아' 하는 생각이 살림살이의 새 출구가 돼 주길. 너무 어렵게 돌아가지 않고 마음과 집을 깨끗이 비우며 살련다. 여백이 가득한 집에서 알음이 꽉 찬 글을 쓸 때까지 내 손은 바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