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0 댓글 3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원기소를 아시나요?

생의 첫 번째 영양제

by 노크 Feb 22. 2025
나의 고향은 충남 부여다.

백제 왕국의 수도였던 부여에는 나당 연합군에게 사비성이 점령당할 때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백마강과 낙화암이 있고 연꽃축제로 유명한 궁남지가 있다. 그러나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로 고향인 부여에서는 겨우 일곱살 이전까지 살았을 뿐이다.  그것도 할머니와 둘이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부모 둘이 맞벌이하기에도 버거운 살림에 어린 딸을 돌 불 수가 없어서 난 고향에 있는

 할머니에게 맡겨진 듯하다. 


할머니와 둘이 살았던 시간의 기억은 뜨문뜨문하고 가물가물하다. 여섯 살짜리의 기억이 얼마나

 선명하기야 하겠나.

초가집의 모양과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풍로를 돌리던 모습, 마당 한편에 있었던 돼지우리의 생김새 그리고 아이들과 공기놀이할 때 지나갔던 망태아저씨의 무서운 모습, 아이들과 냇가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놀던 일 등이다. 미꾸라지는 손으로 잡으면 미끄러우니까 호박잎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이웃에 상추를 배달하러 가는 길에 상추를 한 장씩 버렸던 기억도 난다. 그 기억은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서야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 마을 제일 부잣집 대문에 늘 피어있었던 능수화가 어찌나 이뻤던지 나도 어른이 되어 부자가 되면 꼭 대문에 그 꽃을 심으리라 생각했었다.  꽃 이름도 모르면서.  바람 부는 어느 날은 윗집 마당에 있던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살구를  얼른 뛰어가 주워

 먹었던 기억도 있다.



오늘은 그 조각조각의 기억 속에서 하나를 꺼내 얘기해보려 한다.

아마도 그날은 장날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신작로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에 나를 맡겨놓고 장엘 가셨다. 난 그 집 애들과 미장원 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다. (정말 미장원 놀이였을까? 여자애들도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던 그 시절이었으니까 미장원 놀이는 아니었으테고. 그런데 분명히 머리를 만지고 놀았던 기억 있으니 아마도 머리에 있던 이나 서캐를 떼주며 놀지 않았을까 싶다.)

 장난감이 없는 우리는 늘 어른 흉내를 내며 놀았던 것 같다. 밥하고 김치 담는 흉내나 머리카락을 갖고 노는 미장원 놀이나 때론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놀이도 했던 것 같다. 이제 생각나는 놀이는 《술래잡기》는 물론이고《다방구》나 《삼팔선 놀이》등을 하며 놀았고 국민학교 때는 《경찰과 도둑》이라는 놀이를 하며 온 동네 골목 골목을 싸돌아다녔던 기억도 난다.


어쨌든 할머니는 해 질 녘쯤이나 돼서 마을 신작로 버스정류장에서 희뿌연 먼지를 날리며 멈춰 선 버스에서 내렸다. 그때 할머니는 흰색이라기보다는 색이 없는 한복을 위아래로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시장에서 구입한 여러 물건들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이고 있었다. 그때 그 보자기에는 머리만 쑥 내밀고 어리둥절한 눈을

 휘둥거리는 살아있는 닭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놀랬지만 할머니는 그 닭을 마당에 풀어놓고 키울 심산이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의 시장 보자기를 풀어보며 혹여 과자라도 하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과자가 하나도 없어 뾰료뚱해진 나에게 할머니는 이리 와 보라 하면서 플라스틱 통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게 원기소라고 하는 건데 네게 좋다카더라 자 먹어봐
이렇게 매일 밥 먹고 한 나씩 먹는 겨”     

처음으로 약이라는 것을 먹어보는 나는 동그랗게 생겨 약간 노르스름한 색의 저것은 무슨 맛일까 궁금도 했다. 냄새는 뭐랄까? 하여튼 미숫가루 맛도 나고 콩가루맛도 나는 그런 맛이었다. 

6~70년대에 어린이들에게 소화를 도우며 변비 개선에 도움이 된 식품보조제였던 원기소는 어린이를 위한 영양제였다. 그때는 부잣집애들만, 깨어있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챙겨 먹인 특별 영양제였던 것이다. 달리 돈 생길데도 없는 시골 할머니가  그 손녀를 위한 원기소를 사기 위해 얼마나 큰 맘을 먹었을까?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마침내 할머니 속바지 저 밑에 가제손수건으로 꽁꽁

 싸매두었던 비상금을 꺼내 그 원기소를 샀을게다.


사실 영양제가 필요한 사람은 어린 손녀딸이 아닌 할머니 자신이었을 텐데. 

부모 형제와 떨어져 할머니와 사는 어린 손녀딸이 얼마나 측은했으면 그 비싼 걸 사 왔을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꼭 밥 먹고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이전보다 밥을 더 열심히 먹었다. 그 원기소를 먹기 위해서 말이다.

눈깔사탕 하나가 귀하던 그때, 밥을 먹지 않았어도 할머니 몰래 하나씩 꺼내 입에 넣고 그 향과 맛을 음미하다 보면 부잣집 잔치상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 듯한, 으스대고 싶은, 부러울 것이 없는.

이 나이 먹도록 잔병치레를 하거나 특별히 영양제를 챙겨 먹어 본 적 없이 건강한 건 아마도 그때 할머니가

 사준 원기소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전 01화 Birthday .   two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