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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별 Oct 22. 2023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들 사이를 터벅터벅 걷던 여우는 햇살에 반짝이는 풀빛 잔디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분노를 억누르며 생각했다.

그때 따스한 바람이 여우의 손등을 부드럽게 스치듯 지나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떠올라 여우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바람은 지친 여우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우는 나무들 사이로 반짝이며 흐르는 계곡의 물빛을 보았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설레는 마음으로 가볍고 빠르게 걸었다. 계곡에 도착한 여우는 무릎을 땅에 대고 얼굴을 물속에 담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물속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작은 물고기들은 여우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을 갔다. 바위 밑에서 물속의 어수선함을 느낀 가재는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바위를 밀치고 나와 순식간에 여우의 코를 콱 물었다.

“아야.”

여우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가재는 계곡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오면 물고기들이 놀란다고. 왜 다들 예의가 없는 건지.”

가재는 차분하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놀랐다면 미안해. 반짝반짝 빛나는 물속이라면 내가 찾고 있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꼭 있을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여우는 물린 코를 두 손으로 비비며 가재에게 말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

조금은 누그러진 듯한 목소리지만 여전히 경계의 눈빛으로 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향기가 소중한 거니?” 담담하게 가재는 말했다.

“응. 나에게 소중한 거야.” 여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금세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는 어느 순간 여우의 삶에 중요한 무엇이 되어있었다.

“물속에서는 향기를 맡을 수 없어. 물은 심술이 많아서 향기를 빼앗아 가거든. 하지만 물은 모든 것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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