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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조각
세상에는 왜 이리 설명하기 어려운 게 많을까.
왜 복싱장 거울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데 반해
헬스장 거울은 마치 보정 어플 같을까.
초콜릿은 왜 한 번씩 미치게 먹고 싶고,
잘 조절하는 것 같다가도 폭식하기 마련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기분은 곤두박질치며,
머리카락은 왜 자주 빗자루가 되는지.
오일과 에센스와
트리트먼트와 린스
그리고 액체부터 고체까지
다양하게 샴푸를 써보아도
머리카락은 망한 베이킹처럼 버석버석하다.
액체 샴푸를 새로 산 건 조금은 절박한 마음.
영양이 포함되었다니 기대가 된다.
한 통을 다 쓰고 나면 알 수 있겠지.
빗자루인지 마법 빗자루인지.
시간이 되는 아침에는
머릿결 때문만이 아니라
하루의 기분 조절을 위해
머리카락에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린다.
향수나 다른 것보다도
머리카락에 떨구는
아로마 오일 원액이 제일 오래간다.
상큼한 베르가못과 차분한 시더우드,
이렇게 두 개를 구매했는데
이래저래 잘 쓰고 있다.
사는 건 원래 이런 걸까?
이런 상태로 늙다가 죽는 걸까?
뭘 해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계속 실수를 하니 부족하다는 생각만 든다.
세상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는데,
어쩐지 스스로 태풍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
좋은 일은 만들어가야 함을 알면서도,
기껏 해봐야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임을 알면서도.
더욱이 바뀐 계절을
마음이나 뉴스로 느끼지 못하고
몸으로 체감하며 아프다, 아프다 앓고 있으니
조금은 서럽기도 한 상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지만,
언제나처럼 깊게 느낄 새도 없게
겨울을 마주하게 될 테지.
궁금증도 분노도 집어넣고
일단 연시나 먹어야겠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