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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ug 29. 2024

신의 질투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너무 멀리 와버렸나. 온종일 돈까스 냄새를 풍기며 낮술을 들이붓는 일상이 이젠 낯설지가 않게 됐는데, 어디까지 와버린 걸까.


불켜진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를 하다가 동기들과 잠시 바람쐬러 나와 마시는 자판기 커피한잔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10분간의 쉬는 시간에 우리는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본가의 꿈을 이루고, 또다른 누군가는 학문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학자가 되어있다.


언론인이 된 나는 야근이 그토록 싫었지만, 지금은 또 그만한 기억이 없다. 연이어 야근을 하며 동료들과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즐겨먹던 우동과 소주한잔은 기억의 끝을 상기시켜 준다.


돌고 돌아 다시 현재. 나쁘지는 않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 따위도 있어서는 안되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뭐랄까, 귀향한지 몇년이 지나도 어우러지지가 않는 느낌이다. 고향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끄럽지가 않다. 좋은 사람들도 두루두루 만나봤지만, 여전히 껄끄럽고 그와 상응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든다. 왜일까. 서울의 문화와 지꺼기들이 아직 몸안에 남아서 몸부림 치는걸까.


5년전인가, 상견례 무렵(2년만에 이혼 했지만)에 엄마가 나 몰래 결혼 날짜를 잡으려고 점괘를 보러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들은 말이 내가 다른 사람의 팔자를 살고 있다는 거다. 아드님은 펜을 잡고 살아야 될 팔자인데, 지금 완전히 다른 일 하고 있지 않냐며, 무당 선생님이 다 알고 있는 듯 물어와서 엄마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이혼 뒤 다 늦게 들을 수 있었다. 전처 하고도 궁합이 안나올 정도로 그렇게나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결혼은 시키면 안된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을 했고, 2년만에 이혼을 했다. 나는 지금 돈까스 장사를 하며, 뭔가에 홀린 듯 내 길이 아닌 듯한 느낌을 계속 받고 있고.


놀랍다. 언제나 무신론자였던 내가, 어떤 딱 들어맞는 주술 얘기를 들으니, 뭔가 장난을 치는 신이 있긴 한가도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 만나던 친구가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빠는 만약 나랑 종교 때문에 갈등이 생겨서 헤어지면 어떡할거야?“

”내가 종교를 바꾸면 되지뭐. 내 종교는 너잖아. 하하“


그만큼 종교나 미신은 나한테 큰 요인이 되지 못했다. 언제나 모든 영광을 생전 본 적도 없는 하나님께만 돌린다는 기독교나, 속세를 버리고 떠나야만 되는 불교 조차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신이 있다면, 행여나 그 신이 질투를 한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현재 처한 상황이 과연 내 의도 일까, 하는 생각. 2024년 8월 29일 지금, 어떤 길을 갔던, 돌고돌아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똑같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면 질투에 눈 먼 신들이 이미 다 설계를 해놨기 때문이다. 10년 뒤, 나는 또 어떤 길을 갈지 모르지만, 이미 결과는 다 설계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아무것도 모른 채 무던히 가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하는 착각 속에서 초심을 생각해 본다. 허투루 생각했던 출간 기획서 부터 다듬어 보았다. 처음 책을 출간하겠다는 꿈을 키울때의 시간들을 복기해보며 기획서를 다시 한번 써내려가 보았다.


그리고 이력서도 다시한번 써보았다. 그간의 이력이 얼마나 쌓였는지. 이 너저분한 이력과 나이로 어딘가에 취직은 될런지.


다시한번 꿈을 꾸고 싶다. 수북히 쌓인 책들 속에서 글을 쓰고 일상을 보내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그리고 해질녘엔 이웃들을 초대해 고기를 구워먹고 얼큰히 취해 수다를 떨고도 싶다.


내 꿈은 그런거다. 신들이 질투 할 만한 꿈이 아니다. 그러니 신들도 거룩한 관용을 베풀어 달라. 내 미래는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굳이 펜을 잡지 않아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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