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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Mar 01. 2024

오늘도 편의점 가듯, 우리 회사 인사팀에 갑니다

Trust _ 시스템 _ 2. 목적성

현역시절, 조직문화 실무를 하면서 현장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C, 바빠죽겠는데... 이거 어차피 당신들 KPI 때문에 하는 거 아뇨."

조직문화 워크숍, 변화관리 리더십 과정에 참석한 사람들은 미간에 내천(川) 자를 그리고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다. 나는 과정주의자다. 결과가 없어도 과정이 의미 있다면 그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이다(물론 그런 성향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피해를 입은 꼴이 되고 말았지만). 17년 직장생활 동안, 성과를 처음부터 앞세우고 일했던 적은 단연코 없었다.


거듭된 성과타령에 '설사 그렇다한들 그게 뭐 나쁘단 말인가? 그렇다면 당신들은 KPI, 실적, 성과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속마음이 들었고 때때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리더들과 대거리도 마다 하지 않았다.

"왜요? 그럼 안됩니까? 이런 게 싫으시면 나가서 개인 사업을 하시던가."

그들은 내심 기분이 상했을 테고 뭣도 모르는 펜대쟁이가 입만 요란하다 했을 터다.


어르고 달래 준비된 과정을 마치면 결과는 반반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쇠귀에 경 읽기'라는 좌절감이 들 때도 있었고, 불신의 빗장을 열고 의도한 바를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어 뿌듯했던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들이 왜 그랬을까? 조금은 납득이 간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란 게 죄다 온전히 구성원, 그러니까 그것에 실제로 직간접 영향을 받는 사용자 입장에서 만들어지고 실행된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임을 알게 됐으니까.


초유의 관심사인 인사제도, 교육, 조직문화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냉소와 거부감을 자아낸다. 평가, 승진, 이동의 절차부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소통 채널,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정보 공유 시스템까지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 관점보다는 철저히 운영자 관점, 그러니까 인사팀이나 재무팀, 기획팀 등 펜대쟁들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인사팀을 중심으로 한 사무직과 현장조직의 사이는 대체로 껄끄럽다.


드라마 [미생] 장면 하나,

장그래와 한석률의 입사 PT. 서로에게 물건 팔기 미션이 주어진 두 번째 PT에서 장그래는 한석률에게 실내화를 팔기로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사무실도 현장이라는 뜻입니다. 그 현장의 전투화, 사무 현장의 전투화를 팔겠습니다."


지방 현장 인턴십을 자처했고 대대로 블루칼라 집안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한석률은 발끈한다

"안 사겠습니다. 사무실이 현장이라니 말장난이 지나치군요. 현장이 뭔지나 아십니까? 사무실 끄적임 몇 번으로 쉽게 쉽게 잘려나가는 구조조정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현장 노동자라고 합니다. 그들의 전투화를 말씀드릴까요? 워커 신고 일합니다. 무거운 공구가 떨어지면 발등 아작 나니까..."


한석률의 주장을 차분히 경청하던 장그래는 조목조목 사무직도 현장임을 증명한다.

"...공장과 사무는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 공장이나 사무에서는 실패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본다면 우린 모두 이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장은 한석률 씨가 생각하는 현장과 다르지 않다고...확신합니다."

마음이 움직인 한석률은 장그래에게 손을 내밀고 PT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장면 둘,

섬유팀은 애초에 무리한 목표를 세운다. 외부 협력업체를 구하지 않고 자체 공장의 케파를 풀로 돌려 물건을 생산하려 한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공장은 처음부터 불가 입장을 전달했지만 섬유팀 성대리는 막무가내다. 노후한 기계라도 꺼내 목표량을 맞추라 압박한다. 참다못한 노동자 대표들이 본사를 찾는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히 대치하는 미팅 자리. 성대리의 계속되는 억지와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모욕적 발언으로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너거들은 애미애비도 없나? 성 대리가 막무가내로 우긴 거 우리가 모를 줄 아나?"

결국 현장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하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간다.


장면 1에서 고졸 낙하산 장그래의 PT는 감동적이었고 '우리'라는 동질감 속에 '신뢰'만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듯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어쩐지 장면 2에 더 가깝다. 아무리 봐도 서로 이어진 것 같지 않아서다. 현실 사무직과 현장직은 끊임없이 서로 대립하고 으르렁 거린다.


이런 적대감은 화이트 칼라, 펜대들이 만들어왔음이 분명하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인사와 교육, 조직문화 등 그 사촌들이 범인이다. 조직문화는 괜히 더 억울하다. 제도를 만들거나 기획하지도 않는데 현장 전면에 나서 온갖 욕을 다 받아먹기 때문이다. 배부르다.


어떤 면에선 박쥐와도 같다. 회사와 구성원 사이에 끼어 사실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회사와 경영진들에겐 정작 중요 직무로 취급도 못 받는다. 중요하다고는 말은 하는데 막상 하려면 귀찮고 당장은 필요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새 CEO가 오거나 극한 위기가 닥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일로 우선순위가 밀리기 일쑤다.


일은 현장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소속이 이쪽이다 보니 현장과 가깝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현장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지켜보며 온갖 불만은 다 쏟아 놓는다. 한마디로 욕받이다.


인사, 재무 등 필수직무에 비해 안정성도 없다. 범 인사 업무로 분류되어 조직문화만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회사도 드물다. 잘해봐야 인사팀장이나 경영지원팀장 정도인데 커리어의 최종 목적지가 되기엔 아쉽다. 조직개편 때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다반사고 위기가 닥치면 축소, 폐지 1순위인 천덕꾸러기 조직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조직문화는 비선호 직무로도 꼽힌다. 그들에게 성과니 KPI니 실적이니는 사실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저 좋아서,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오해는 서글프기까지 하다.


애초에 회사와 사무직(펜대)들에 대한 불신이 강하면 현장에서 뭘 해도 영(令)이 안 선다. 실제 현장의 일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거 해봤자 달라지는 게 뭔지? 누구를 위한 제도, 프로그램, 정책인지? 그저 실적용은 아닌지?라는 불신. 이는 실제로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 있는 회사와 경영진과 그들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 인사 조직이 자초한 결과나 다름없다.


대체 왜 하는지,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들의 연속. 인풋(돈, 시간, 인력)은 꽤나 들어가는데, 정작 현업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허무함.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귀찮은 일의 반복이라는 인식. '또 시작이구나' '그럴 거면 차라리 내버려 둬' '그냥 돈으로 줘' 따위 냉소가 판치는 이유.


조직개편은 회사의 의도와 노림수, 목적성을 알아챌 수 있는 바로미터다. 조직구조상 어떤 순서로 사업부와 팀들이 나열되어 있는가? 조직은 얼마나 크고 세분화되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이 가는가? 매년 고정적이지 않고 축소, 이동 등 유난히 변경이 잦거나 아예 사라진 부서는 어디인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회사가 어떤 가치에 힘을 쏟고 있는지 그 속내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이때 겉으로 내뱉는 말과 그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저 말뿐이라는 반증이다.


가령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조직문화팀은커녕 그 기능을 전담하는 파트도 없다던가, 기존의 인원마저 절반으로 축소시키거나 아예 폐지하는 결정을 한다면 사실은 그 기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증거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 'what'이 아니라,

왜 하느냐? 'why'다.


그 왜가 경영진과 그것을 실행하는 운영자의 편의, 담당부서의 성과, KPI 따위에 있어 보인다면 수천만 원짜리 유명 프로그램도 무용지물이다. '차라리 돈으로 주지 그래?'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대체 이걸 왜 하느냐? 그 답은 단 하나, 철저히 구성원 관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

이어야 한다.


마치 편의점에 가듯, 회사의 인사팀과 지원팀에 마음 편히 드나들고 필요한 서비스를 적재적소에 제공받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제도와 시스템, 지원조직이 회사에 존재하는 이유다.




제도와 시스템은 '디자인' 되어야 한다


디자인은 주어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조형요소()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그것을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유기적인 통일을 얻기 위한 창조활동이며, 그 결과의 실체가 곧 디자인이다...인간이 의미 있는 것을 실체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가 인간의 생활이고, 의 세계이며, 따라서 생활의 실체, 문명의 실체가 곧 디자인의 세계인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쩌면 디자인을 너무 어렵게만 여겼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생활이란 다름 아닌 책상 위에, 회의실 공간에, PC속 PPT 자료에, 회사 공식 포털에, 사내 메신저 인터페이스 속에, 온갖 결정들이 오가는 결재 프로세스 속에 있지 않은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형요소를 합리적으로 구성한 결과의 실체'가 디자인의 본질이라면, 핵심은 누가 이걸 사용할 것인지 여부다. 그 누구야말로 의심의 여지없이 '구성원'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EX(Employ eXperience)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회사의 제도와 시스템은 마땅히 구성원관점에서 이용과 적용이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구성원들이 회사의 제도와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영향을 받는 데 있어서 좋은 경험을 하고 그로 인해 업무에 몰입하고 성과를 내고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철저한 사용자 편의, 중심으로 세심하게 설계되어 마치 일상생활 속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존재 자체가 인지되지 않을 정도의 제도와 시스템. 일부 미비점이 발견되면 실시간으로 개선 작업이 이루어지고 별다른 요청이 없어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가 이어지는 능동적 경험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디자인의 또 다른 핵심은 일의 몰입을 방해하거나 고통을 주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포인트를 찾아내 제거하는 일이다.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구성원이 현장에서 겪는 실제 불편과 고통이 보인다. 일일이 현장을 누비며 관찰하고 무엇보다 현장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듣는 채널을 활성화해야 한다.


듣다 보면 알게 된다. 뭐 대단한, 거창한, 돈 많이 드는 개선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컨대 그저 '야간 교대 근무자들 위해 제공되는 컵라면 종류를 다양화해 달라'는 요구 같은 것들이다. 그 당장이라도 개선할 수 있지만 만족도는 꽤나 높은 페인포인트들이 수두룩하다. 교대 근무를 안 해봤다면 매일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어야 하는 고통을 알리 없다. 진심 어린 관찰과 지속적인 소통만이 현장과 가장 가까운 어떤 지점의 불편과 고통을 감지해 낼 수 있다.


디자인이 별게 아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최적의 레이아웃을 구상하고 핵심 메시지를 적절히 배치하고 핵심을 가리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회사의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 역시 '나'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타인' 즉 구성원의 관점으로 직장 생활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려는 의지가 반영되어야 한다.이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할 것인가? 따위 끝없는 질문의 연속.


조직문화의 대가 애드거 샤인은 조직문화를 빙산으로 비유해서 설명했는데, 빙산의 가장 밑바닥에 기본가정(underfying assumtion)이 있고, 그 위층에 공유된 가치(expoused value), 가장 표면에 겉으로 보이는 인공물(Artifacts)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어쩐지 디자인 툴 포토샵의 레이어(Layer) 개념과 유사하다. 가장 밑바탕 레이어에 경영자 혹은 오너의 기본가정이 있고 그 위에 공유된 가치나 인공물들이 층층이 쌓여 그 조직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가장 밑바탕 레이어(Root layer)인 오너, 경영진이 가진 사람에 대한 가정이 인사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 존재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조직의 공유된 가치는 근면성실, 신상필벌, 야근의 생활화, 많이 일하면 좋은 사람 따위의 가치가 각종 제도와 규율, 규칙, 사람을 뽑는 기준 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런 조직의 표면적 인공물 역시 딱딱하고 불편하고 완전한 수직구조에 더운 여름에도 긴팔과 넥타이를 고수하는 그런 모습을 띌 것이다. 그렇게 디자인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을 배경으로 하면 그 위에 뭘 쌓은들 엉망진창의 디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일, 교육이나 워크숍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 모두 철저히 그것을 이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기획하고 설계하고 구체적 실행 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 일에 사용자가 아닌 운영자의 관점, 경영진의 관점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중심이 흐트러지게 되어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라는 볼멘소리가 그 즉시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3심법으로 하라

디자인을 잘하려면 3심법에 능해야 한다.

심, 진심, 사심의 3심(心)이다.

조직 내 사람 관련 일을 하는 이들에 필요한 워크에식(Work Ethic) 에 대한 당부다.

 

관심은 더하기(+)다. 디자인 대가들의 첫 번째 특징이다. 모두가 무심히 넘기는 사물이나 현상도 관심을 갖고 유심히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볼 수 있지만 누구도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낸다. 많은 것을 보고 자신만의 Dot(관점)을 만들어 그것을 연결하여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 창의력의 정의와 궤가 같다. 출근길 전철에서, 오가는 거리에서, 책상 위에서, 밥 먹는 자리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을 찾아내어 미래와 연결시킨다. 이른바 유레카 포인트는 그 과정에서 종종 튀어나온다. 조직의 제도와 시스템을 다루는 일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아니지만, 끝없이 더 나은(Better), 지금과는 다른(Differ) 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창의적이어야 한다. 창의력은 다름아닌 세심한 관찰력에서 시작된다.  

 

진심 역시 더하기(+)다. 진심 없이 일하는 사람이 있겠나 싶지만 의외로 많다. 이른바 워킹좀비 상태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진심이 없다.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기 급급하고 자신만의 기준이나 열정, 최소한의 철학도 없는 사람들의 일에서 진심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조직 내 사람과의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진심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진심이 결여된 담당자에게 제도와 시스템을 맡길 때 철저히 사용자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주문이 통할리 없다. 처음부터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과 동기로 가득한 사람을 특별히 선별해 일을 맡겨야 한다.


사심은 빼기(-)다. 제도와 시스템을 만지는 사람이 사심을 갖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조직 내 사람을 다루는 일은 비교적 공적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가 유리해질 수는 있어도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그 누군가를 만들어낸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사심이 끼면 시야가 협소해진다. 평소라면 뻔히 보이는 상식적 문제도 미처 거르지 못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기 쉬워진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는 자기 인식 능력이 뛰어난 사람, 주변의 의견을 경청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사람이야 말로 제도와 시스템을 다루는 일에 적합한 이유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절대로' 안된다.


회사의 제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들이 명확한 목적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구성원의 신뢰를 잃지 않게 해줄 마음가짐. 이른바 3 심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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