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경남 산청 사람이다. 지리산 아래의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으로 유학 와 부산 사람인 나를 만났다. 남편은 바람처럼 나를 떠돌아 나는 그에게 windy man이라는 애칭을 지어 주었다. 내가 windy man과 5년을 사귀고 있어도 그 남자는 내게 결혼하자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당시는 대학을 졸업하면 대개 결혼하던 시대였다. 친한 친구들이 슬슬 결혼하고 나 혼자 남은 것 같아지자 내심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자존심을 접고 내가 먼저 windy man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가난하여 집 한 칸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내가 대학원을 다닐 동안 windy man은 대기업에 취업하여 월급을 꽤 받았을 터인데 그동안 그가 모은 돈은 쥐꼬리만 했다. 당시 windy man은 창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주말마다 부산으로 와서 나를 만났다. 낭만적인 그 사람은 나를 귀부인 모시듯 좋은 곳으로 모시고 다니며 맛있는 것을 사주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러느라고 돈을 모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따신 물, 찬물’ 나오는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장하게 선언하였다. 그때의 시세로 그런 아파트를 전세 내려면 그의 저축 속도로는 9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막 대학원을 마친 나는 선배 언니가 있는 대학에 입도선매 되어 취직해 있던 참이었다. 당시 대학교수 월급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windy man에게 큰소리를 쳤다. 결혼해서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그놈의 ‘따신 물, 찬물’ 나오는 아파트를 금방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우리 형편에 맞는 작은 집을 하나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연탄을 때는 13평 서민 아파트였는데, 퇴근해서 돌아오면 연탄불이 꺼져 있어 번개탄 피우느라 눈물깨나 흘렸다.
결혼하기 전날 시어머니께서 색색의 주머니에 곡식을 담은 봉채를 이고 오셨다. 처음에 시어머니께 인사를 갔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너무 몸이 약해 보여 반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중 키에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려 비녀를 꽂고, 약간 살집이 있는 몸매에 배를 앞으로 내밀며 당당히 서 계시던 모습이 마치 당당한 은행나무 같았다.
결혼 전날, 봉채를 이고 그 먼 길을 오신 시어머니께 회를 사드렸다. 시어머님은 맛나게 회를 드셨다. 회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 후 시어머니께서는 당신의 막내며느리를 매우 사랑해주셨다.
친정엄마는 딸을 대학원까지 시키고 대학교수를 만들었는데 곡식 봉채가 뭐냐고 몹시 서운해하시면서 변변한 패물도 못 받고 결혼하는 막내딸 때문에 눈물까지 보이셨다. 당시만 해도 친정집이 가진 땅 값이 올라 엄마는 막내 사위가 마뜩잖았고 내심 시골 사돈을 눈 아래로 보셨다. 그래도 나는 그저 windy man과 결혼하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친정의 도움을 받지 않고 밥솥과 도마와 숟가락 같은 간단한 살림 도구만으로 신혼살림을 차렸다. 결혼하고 TV도 사고 냉장고도 샀으며, 결혼한 일 년 후 ‘따신 물, 찬물’ 나오는 맨션으로 이사도 하였으니 나의 큰소리가 이루어진 셈이었다. 다만 남편은 결혼 당시의 미안함을 잊지 않았던지 회사에서 승진할 때마다 나에게 쌍가락지도 해주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사주었으며 비싼 시계도 장만해주었다. 나는 사치품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고, 기뻐할 엄마도 돌아가신 뒤라 남편의 선물을 그냥 금고 속에 넣어두었다.
그리하여 남편 고향인 산청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다. 산청이라고 하면 지리산 아래의 첩첩산중으로만 생각하면서 도시 친구들은 동경까지도 하지만, 사실 남편의 고향마을은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시골에 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시어머님인 문 달분 여사의 명성이 시골에서는 대단했다. 시어머니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여자의 몸으로 새마을지도자를 내리 7년을 하면서 마을 길을 시멘트로 포장하셨고 지붕 개량 사업도 진두지휘하셔서 가난한 시골 마을을 그나마 근대화에 빠지지 않게 하셨다고 했다.
내가 본 시어머니는 욕심이 많은 분이셨다. 당시 농촌에서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부지런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던 마을인지라 샘가의 논이 가장 탐이 났던 이 여인은 낮에는 농사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길쌈을 하고 누에를 쳐서 마침내 샘가의 논을 샀다고 했다. 가족 묘지를 위한 선산이 필요하여지자 또다시 열심히 일하여 마을 바로 뒷산을 구입하셨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스스로 세운 목표를 기꺼이 달성하면서 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던 훌륭한 여걸이셨다.
나는 가끔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시는 시어머니를 목욕시켜드리곤 했는데, 살이 어찌나 단단하던지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하셨던지를 그 단단한 몸이 대변하고 있었다. 그 문 달분 여사가 어느 가을, 거목이 쓰러지듯 쿵하고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시어머니는 일흔도 되기 전인 예순여덟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은 당신이 애써서 마련한 뒷산에 묻히셨다.
그런데 어느 해 추석, 시골집에 내려가 있을 때 한 남자가 쭈뼛거리며 들어와 남편을 찾았다. 뭔 일인가 했더니 어머님이 사신 뒷산의 절반이 사실은 자기 부친의 땅으로 등기되어 있으므로 자기들 땅이라는 것을 알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하고 갔다. 놀라서 등기부 등본을 떼고 백방으로 확인해보니 그 사람 말이 맞았다. 땅을 사고팔면서 서류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던가 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여러 명이 나서서 문 달분 여사가 그 땅을 사서 자기들이 함께 소나무를 심었다는 증언을 해주었지만, 서류가 남아 있지 않으니 형세가 불리했다. 남편은 어머님의 피땀이 서려 있는 그 땅을 되찾기 위해 법정 소송을 벌였고 결국 법원의 중재로 그 땅을 되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머님께서 잠을 자지 않고 마련하신 땅을 사기꾼에게서 되찾았다. 그 일로 남편이 진주 법원을 자주 오가며 애간장을 태웠다.
시골에 갈 때마다 나는 미야자와 겐지가 쓴 <바보 겐주>처럼 어머님의 유산인 뒷산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키 큰 참나무들을 올려보면, 너무 멋져서 바보 겐주가 그러했듯 손뼉을 치며 웃고 싶었다. 산 한쪽 끝에는 왕대가 자리 잡고 있어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났다. 옛날에는 대나무가 돈이 되었다고 했지만 지금 플라스틱이 대체한 시장에서 아무도 왕대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왕성하게 번져 산소를 침범해오는 대나무 뿌리를 없애는 것이 더 큰 일이 되었다.
남편 어릴 때는 이 산에 어머님이 동네 아낙들을 동원하여 심은 소나무가 울창했다고 했는데 어느 해 어머님은 그 소나무들을 다 잘라버리고 밤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당시 정부에서 유실수인 밤나무 심기를 독려하기도 했지만, 어머님은 다음에라도 대처에 나가 있는 자손들이 시골에 와서 묘도 돌보고 시골집도 보고 가라고 하면서 산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지금은 밤이 흔하여 밤 따는 재미로 시골을 가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어머님의 밤나무는 이제 30년을 넘게 자라 밤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쓸모없는 나무가 되고 말았다. 어머님께서 정성으로 가꾸던 그 산이 점차 잡목 가운데 버려지게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골에 갈 때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님의 산을 보람있게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시골 마당에 뒹굴며 노는 어린아이들 몇을 보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귀한 이 시골 동네에 왠 어린이인가 싶어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도시에 나가 사는 어느 집 자식이 생활고를 못 이겨 이혼하였고, 그러면서 그 애들을 할머니에게 갖다 맡긴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런 문화시설이라고는 없는 깡촌에 버려진 아이들은 하릴없이 할머니 치마꼬리를 붙잡고 흙 속에 뒹굴며 마을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아는 선배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집이 몹시 가난하여 중학교만 마친 채 어느 공장에 야간 보일러공으로 들어간 선배가 있었다. 당시 보일러에 쓰는 연료가 고물 책들이었다고 했다. 선배는 책들을 불 속에 던져넣으며 그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는 참고서도 있어 참고서를 보며 공부한 선배는 그 후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였다. 대학에서 고시 공부를 하여 행정관이 된 그 선배는 아주 멋지게 잘살고 있다.
그 선배를 생각하자 버려진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 그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링컨 대통령도 이웃집 책을 빌려 읽고 꿈을 키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머님의 산에 도서관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일본 NHK TV를 보다가 숲속 서점을 연 가족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어머님의 유산인 그 산에 작은 도서관을 하나 세우고 싶다는 열망에 빠졌다. 작은 집을 짓고 책을 펼쳐놓아 마을의 아이, 어른들이 와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면 이 시골 사람들의 삶에도 어떻게든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앞에는 아름다운 꽃나무와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어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마음의 힐링을 얻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이상론이 내 마음을 지배하자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나의 ‘작은 도서관’ 계획을 떠벌리고 다녔다. 놀랍게도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행동에 나섰다. 나에게 책을 모아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뿐만 아니라 건너편 다른 아파트 경비아저씨까지
“훌륭한 일을 하시려는데 자기들도 도움을 주고 싶다”
는 말과 함께 책을 모아주었다. 우리 아파트의 반장은 모 병원의 아동도서관의 사서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교체하는 멋진 책들을 나에게 갖다 주었다.
책이 엄청나게 들어왔다. 대치동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다 보니 책을 많이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집은 좁고 자녀는 커가니 읽은 책은 가차 없이 쓰레기로 내놓았다. 경비아저씨들이 책을 팔아 용돈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책을 모았다가 나에게 보내왔다. 나는 정말 감동하였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인가!
시골에 갈 때마다 차 안에 책을 가득 싣고가서 골방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대치동 엄마들이 고른 책들인지라 내게도 흥미로운 책들이 많았다. 시골에 집을 하나 짓고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차근차근 읽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내 눈앞에는 시골집 바닥에 드러누워 느슨하게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이 이미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시골집이 불타면서 그동안 수집한 책들도 모두 불타 버렸던 것이다. 나의 도서관 꿈은 일장춘몽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