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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 곳, 수영장

집 밖은 위험하지만, 수영장은 좋다

by 맛있는 하루

수영장에 다녀오면 기분이 좋다.


왜일까. 머리도 개털이 되어가고, 몸은 점점 건조해지고, 손톱 발톱은 자꾸만 깨져가는데.


물론 복근도 조금 생기는 것 같고. 척추기립근도 손으로 만지면 속근육이 어딘가에 붙은 것도 같고. 저질체력도 조금 올라오기는 한 것 같지만.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수영을 하고 오면 기분이 풀린다. 어쩌면 수영으로 풀릴만큼의 짜증거리였을수도 있다.

수영을 하고 와도 마음의 화가 가라앉지 않는 날에는 젖은 수영복을 말리며 내일의 수영을 기다리게 된다. 내일 수영하고 오면 오늘보다는 마음에 평온을 찾을 거라며 혼자 토닥인다.


수영을 다녀온 지 5분도 안 되어 내일의 수영이 기다려진다. 왜일까.




집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집순이.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만 해도 이불 밖은 위험하고, 집 밖은 더 위험하다는 주의였다.


이제는 "집 밖은 위험하지만 수영장은 좋다."로 바뀌었다.


집 밖의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예상치 못한 일들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도. 하지만 수영장만큼은 다르다.


"아이고~ 오늘도 왔네. 성실하다, 성실해."


락커룸에서 만난 80대 어르신이 반갑게 인사하신다. 매일 새벽 6시면 만나는 우리는 이제 서로의 얼굴만 봐도 오늘 컨디션을 안다.


"어제 휴관일이라서 못 왔더니, 정말 수영장 소독 냄새가 그리웠어요."

"맞아. 매일 오다가 못오게되면 서운하고 허전하더라고."


출처: pexels.com


황보름 작가는 <단순 생활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내가 갈 곳이니까. 수영장이 갈 곳이 되어주어서 수영을 한다."


아, 그렇다.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만 고여 있는 건 못 하는 사람이었다.


집과 다른 곳을 오가며 살아야 집에서의 생활에도 에너지가 붙는 것이구나.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하나의 장소에서 모든 걸 느끼고 구할 수 없기에.


집이 홈 스위트 홈이 되려면 잠시라도 집에서 떨어진 시간이 필요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2025년 8월 수영 기록을 살펴봤다.


8월: 29일 출석


아니? 개근이다!!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일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완전 개근했다. 학창 시절 개근상 받았을 때는 별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개근상도 안 주는 수영장 개근이 뭐라고 이리도 뿌듯할까.


"와, 진짜 하루도 안빠지시네요. 대단하세요."


수영장 안내 데스크 직원도 신기해한다. 나도 신기하다. 이렇게 한 곳을 꾸준히 다닌 적이 언제였던가.


잠시라도 집에서 나와 갈 곳이 되어준 수영장. 개근 기록을 보며 마음에 평온 도장을 찍은 것 같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쌓이는 것은 몸근육만이 아니었다. 꾸준함이라는 마음근육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25미터도 힘들었던 내가 지금은 1km를 헤엄칠 수 있게 된 것처럼, 작심삼일이 습관이던 내가 이제는 '매일'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집 밖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물속이 참으로 좋다.




9월에도, 10월에도 물속 개근 도장 찍으며 단단해진 몸과 마음의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보려고 한다. 물살을 헤치며 현관문을 열 때마다 나의 집을 스위트 홈으로 만들어가는 이 소소한 일상을.


앞으로 이 브런치북을 통해 수영장에서 배운 작은 깨달음, 물속에서 찾은 변화의 순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혹시 당신도 '어딘가 갈 곳'을 찾고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힌트가 되기를 바라며.


"수영장에서, 오늘도, 내일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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