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산티아고 Sep 21. 2022

내 머릿속에 암이 있단 말인가요?

그날의 들뜸은 절망으로

2021. 9. 3. 그날은 한껏 들떠 있었다.

동갑내기 직장 친구 셋이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건강검진은 구실이고, 새벽 일찍 가서 오전에 검진을 다 받으면 점심부터 우리들만의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몇 년째 그렇게 보내고 있다.


문제는 3개월만 참으면 직장에서 주는 30만 원을 받아 할 수 있는 정밀검사를 굳이 생돈 내가며 지금 하자고 우기는 것이다. 둘 다 그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하게 되었다. 겁나 구시렁거리면서. 나쁜 계집애들. 시간도 별로 없구먼.     


추가 항목 중 스트레스로 두통이 있으니 뇌 CT와 갑상선 초음파를 선택했고, 이방 저 방으로 불려 다니면서도 그 시간도 아까워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점심은 뭐 먹을지, 오후에 영화를 볼지, 분위기 좋은 커피숍을 갈지, 마사지숍에 갈지 의견이 분분했다. 토끼띠 친구 셋이서 방방 거리며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뭐가 우스운지 지나치다 눈만 마주쳐도 웃느라 호명을 했는데도 못 듣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셋이 모여 수다를 떨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을 것도 같았다. 그만큼 직장을 벗어난 해방감이 엄청 컸다.     


건강검진을 모두 마치고, 최종 의사 선생님 소견을 듣는 차례가 왔다.     

얼른 마치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면 된다. 말씀을 짧게 하시는 선생님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웃으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박수연 님?", "네"     

“뇌 MRI를 찍어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왜요?”     

뇌 CT 사진을 보여주는데 두개골 안에 하얀 동그라미가 제법 큼지막하게 보인다.     

“뇌 CT 상에 뭔가 보여요. 자세한 거 알아보셔야 하니 뇌 MRI 찍어보시죠. 제가 바로 신경외과에 예약 잡아 드릴게요"     

“아니요. 다음에 할게요"     

꼭 MRI를 찍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께 뭐라 말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료실을 나와서 근무 중인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뇌 MRI 찍으라는데 큰 병원 가서 다음에 찍을 거라고 했더니 남편이 화를 내며 빨리 다시 접수하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나 보다. 점심을 대충 먹고, 남편이 오기로 해서 친구들은 돌려보냈다.     


단순한 뇌 MRI가 아니고 조영제를 투여해서 하는 거라 주삿바늘이 엄청 크고 아팠다. 난생처음으로 뇌 MRI 검사를 했다. 혼자 기다리는데 눈물이 흘렀다. 자세히 뭔지도 모르지만 불안하고 무서워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직 애들도 어린데, 큰애가 고3인데, 평생 내게 죄책감을 가지고 사시는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릴까? 나 정말 살기 힘든 병에 걸린 걸까? 두려움에 떨어서인지 시간은 더디 가는 거 같았다. 무서워서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는데 움직이면 안 된다고, 그럼 다시 찍어야 한다고 겁을 줬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남편이 와 있었다. 어지러웠다. 남편 얼굴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남편도 대수롭지 않은 듯 농담을 했다.     

”나 너 먼저 안 보내. 걱정 마 “     


야간 수술을 마친 신경외과 원장을 간신히 만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뇌 MRI 검사 결과도 CT 사진과 동일하다고, 하얀 부분이 종양이라고 했다. 크기도 3cm가 넘어 보인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 종양‘ 처음 듣는 말 같다. 머리가 하얘지면서 물었다.     

”내 머릿속에 암이 있다는 말인가요? “     


2년 전 우리 부서에서 제일 큰 사업이 있는 팀장이 되었다. 모든 면에서 처음인 사업이라 어려움이 많았고 직장 내 주요 인물들과도 마찰이 많았다. 잦은 외부 출장과 업무로 지치기도 했지만 그게 뭐 하루 이틀인가. 두통약을 비타민처럼 복용하는 게 직장인들 아닌가. 나는 걷는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만큼 씩씩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 내가 암이라니.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정말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장애에, 가난에, 짧은 학력에 기를 쓰며 이겨내 보고자 수없이 눈물 흘리며 노력해서 이제 좀 안정적이다 싶은데, 왜 나에게 또 시련이 오는 건지 어디다 쌍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저 의사가 멀쩡한 사람한테 병을 만들어주네. 작은 병원이라 오진한 거 아닌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큰 병원에 꼭 가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질 거 같았다.     


왜 나냐고? 왜? 왜? 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