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무서운 건 어둠도 멧돼지도 텃새도 아니다.
외로움과 고립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다소 즉흥적으로, 하지만
어떤 뚜렷한 목표와 느닷없는 우연의 '경계'가 절대 아닌, '이유'에 의해
이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1년하고 1달을 더 사는 지금
내가 여기 콕 쳐박혀 꼼짝없는 자발적 구속을 택하며
가장 무서웠던, 지금도 무서운 것은...
여기에 와야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어쩌나...
여기에 와서까지 혹여 딴마음 품으면 어쩌나...
여기에 와있으면서도 이루고자 하는 일의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의심.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무서움이다.
두려워하는 감정.
의심하는 정신.
내게 가장 큰 무서움.
이미 없어진 줄 알았던 무서움이 가끔 날 자극할 때마다 난 이유를 찾았고
그래서 찾았다.
그래서 매일 했고
그래서 매일 쌓았고
그래서 매일 작지만 결과들을 만들려 했고 만들어 왔다.
여기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삶을 진정으로, 좀 더 진지하게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도 팔고, 대부분의 물건들을 다 버리고 '불편함'속으로 나를 밀어넣으며
온전히 내 삶으로 나를 디밀어서야만 알아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을 직접 했다.
물론 생물학적인 부족함때문에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부분은 남의 손을 빌리기도 했지만 돈으로 쉽게 처리한 적은 없다. 시간에 노동을 갈아넣었고 보이지 않는 매일의 양을 보일 때까지 쌓으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나의 신체부터 감정과 정신을 깊게 음미하고 매일 글로 써내려갔다.
처음 이사와서 한달여간 한 짓은
밀림같은 이 마당을, 끝이 풀에 묻혀 어딘지도 모를 이 터를 손수 깨끗하게 쓸어버리고 말 그대로, 맨땅에서부터 마당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해를 경쟁하며 키만 키워냈던 나무들에게 아담하게 자라자며 하늘을 내어달라 요청하고 직접 톱과 전지가위와 호미를 들고 매일 나무를 1m 높이로 자르고 풀을 베었다.
난생 처음의 고된 노동, 1달이 지나자 마당은 맨땅이 되었다.
얕게 2층으로 나뉜 마당의 1층은 돌로, 2층은 풀로, 저~ 끝은 커다란 연못이 있는 마당이었다.
감춰진 알몸을 드러낸 마당을 어떻게 꾸밀까.
매일이 신났던 작년 9-10월.
누군가에겐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죽으라고 톱질, 호미질, 낫질을 해댄 1달여 시간,
나는 삶에 대한 욕구와
어디선지 모르지만 새롭게 생기는 근육의 생동감과
이를 직접 해냈다면 못할 게 없겠다는 묘한 뜨거움이
온몸에서 매일 신비롭게 올라왔다.
신기했다.
휑한 마당의 시원함과 앞으로 어찌 꾸밀지에 대한 장난스런 상상,
그러다 문득 문득 내게 치밀어 오르는,
나의 이상, 나의 꿈, 나의 현실.
이 사이의 괴리와 나는 싸워가며 다시
매일. 꾸준히. 그냥 반복으로 결과를 내는 짓을 또 시작했다.
앞서 말한대로 윗마당의 돌들을 치우고 잔디마당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돌길만들기. 작은 돌들을 두 손 가득 담아 하루에 10번씩 그렇게 20여일이 지나자 돌길이 만들어졌다. 큰 돌을 사다가 인부를 시켜 돌길을 만드는 건 누구나 한다. 나중에 해도 되고.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윗마당의 돌도 치우고 싶었고 비가 올 경우 흙길의 질척임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고 마당끝에서부터 사람이 걸어다닐 길 정도는 내가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장난도 치고 싶고.
그렇게
매일 10번씩 돌을 옮기니 길이 되었다.
9-10월에 자른 나무 가운데 일부는 겨울대비로 쓰기로 했다.
톱질에 꽤 익숙해진 나는 잔가지와 굵은 기둥을 잘라 장작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매일 30분-1시간 장작놀이를 시작했고
정말 이렇게 매일의 양을 쌓으니 (사진으로는 적어 보이지만) 내 키만큼 장작이 쌓였다.
겨울을 앞둔 지금.
난 또 장작놀이중이다.
작년의 근육으로 매일 조금씩 장작을 쌓는데 버겁거나 힘들지 않다.
매일 조금씩...의 힘을 아니까...
지난 주 글에도 썼듯이 올 가을은 온통 밤놀이였다.
집 뒷산으로는 온통 밤나무. 집 길가에도 수십그루의 밤나무가 있는 여기서
나는 매일, 1~2봉지씩 모았다. 모으려고 모은 게 아니라 떨어진 밤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본능적으로 줍고야 마는, 아무튼 매일 주워모은 밤이 지인들에게 보내고도 남을 정도로...
이 밤들로 밤샐러드며 밤잼이며 겨울에 화덕에 군밤으로 구워먹을 요량으로 한봉지는 냉동실에,
어떤 결과든 마찬가지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기술이든 지식이든
뭐든 양을 쌓는 것, 양은 쌓이는 것이 기본이다.
양을 쌓지 않고는 질을 논할 수 없다.
차이를 만들지 않고는 차원을 달리할 수 없다.
기준을 높이지 않고는 수준을 높일 수 없다.
즉,
기본은 양과 차이와 기준이다.
기분을 배제한 기본이어야 기초가 된다.
기본이 튼실이면 기세로서 기회를, 기회에서 기선을, 그렇게 기적을 일으키지만
기본이 부실하면 기생할 기미만 찾거나 기운 운운하다 지금까지의 공이 기억속으로 사라진다.
매일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비로소 알았다.
왜 동자승에게 주지스님은 마당을 쓸게 했는지...
왜 그 어린 꼬마에게 그 많은 낙엽을, 왜 매일 쓸어도 쓸어도 계속 쌓이는 낙엽을...
왜 기술보다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 '반복 속 깨달음'이었는지...
왜 내가 7년여 새벽독서를 신앙처럼 지키는지...
왜 내가 3년 넘게 새벽 5시 발행을 신독(愼獨)하는지..
왜 읽고 쓰고를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지...
이제 알 것 같다...
이렇게 매일 한다면,
두려워하는 감정.
의심하는 정신.
내게 가장 큰 무서움이
이제는
날 무서워하지 않을까...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1659
# 신청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gNX7wQZ2kP1lv_ykYHGS9H6NH0FvNjmhnKZQBx7AIko/edit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에 삽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조용한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