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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하루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Jan 23. 2025

<Day 26> 10월 16일


매일매일이 특별할 줄 알았다. 아니, 매일매일을 특별하게 보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잘 안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평화로운 수요일.

비가 올 것 같은 잿빛 하늘에 노란 단풍길이 깔렸다. 바짝 마른 단풍잎들이 약한 바람에도 후드득 떨어져 버렸다. 비가 오고 나면 나뭇잎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아빠는 어김없이 아침 8시에 막내를 등교시키셨다. 오늘은 프로그램에 가야 하는 날이라 나도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텅 빈 집 주차장에서 손을 흔들고 계시는 아빠의 모습이 백미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도 혼자가 되었다. 

"낮잠 좀 주무세요! 드라마나 재미있는 티브이도 쫌 보시고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빠는 아마 열심히 낙엽을 쓸거나 청소기를 돌리실 것이다.




점심을 먹고 서둘러서 길을 나섰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산책을 해야 했다. 축축해진 공항 산책길을 아빠와 함께 걸었다. 아빠는 차가운 내손을 꼭 잡아 아빠의 재킷 호주머니에 넣으셨다. 이렇게 아빠와 함께 걷고 나면 어느덧 내 손에도 따뜻한 온기가 돈다. 오늘로써 세 번째 함께 하는 산책길이다. 아빠가 오시면 매일매일 눈이 오기 전까지 아빠와 산책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겨우 세 번 함께 걸었다. 우린 오늘도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에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멀리서 보이는 먹구름이 잔뜩 성이나 보인다. 잘못하면 비를 쫄딱 맞은 새양쥐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쉬운 산책길을 뒤로하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늘님의 기분이 굉장히 우울한가 보다.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다.




며칠 전부터 소식이 뚝 끊어진 한국의 고모 소식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혹시 돌아가셨는데 그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카톡에 답변이 없으신 건가? 아빠도 나도 선 듯 먼저 전화를 걸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돌아가셨으면 어쩌지...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아빠를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하지...




오늘은 핸드폰에 아빠의 하루를 한 장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식사준비하고 레슨하고 올라와서 부엌정리를 하고 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아빠는 피곤하신지 일찍 불을 끄고 누우셨다. 레슨 하는 동안 지붕처마 물받이를 싹 다시 정리하셨던 모양이다. 한 방울의 비도 이유 없이 새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벌써 세 번째 손을 보고 계신다. 




밴쿠버 고모할머니께 다녀오기 위해 매일 1시간 이상씩 비행기스케줄을 보고 있다. 비행기와 호텔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짜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배짱이님의 휴가날짜와 피아노 레슨날짜, 아이들의 방학까지 변수로 생각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아빠를 위해 고민 없이 비행기표를 딱! 끊어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편안하게 쉬실 수 있도록 깨끗하고 멋진 호텔을 짠! 하고 예약해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벌써 며칠째 비행기값과 호텔비용, 자동차 렌트비를 저울질하며 시간을 버리고 있다.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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