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론즈실버 Sep 02. 2024

#39. 못 하는 것도 인정받으면, 위안이 된다.

"정말, 저는 이 자세가 안되는걸요. 제 노력과는 별개로요. 진짜예요."

'지금 부상이 있는 사람이 있냐'는, 그의 질문에 곳곳에서 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워크샵을 듣는 3분의 1 정도였던 것 같다. 차마 손을 들지 못했지만 옆에 앉은 도반들에게 아픔을 고백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잠시 지나가는 통증, 또는 꽤나 오랜 시간 머무는 아픔. 손목, 무릎, 발목인대, 고관절, 가벼운 뇌졸중까지.  '역시, 몸은 소모품이어서, 많이 쓰면 아픈 걸까?'라는 의문이 잠시 머물렀다.




수련 중이었나? 잠시 쉬는 시간이었나? 각자가 서로의 시간을 보내던 그 찰나에, 그가, 달비 할아버지가 내게 와서 물어보았다.

"What happened?"


기억에 남았다. 구령수업 중에도, 그는 두세 번 정도 내게 와서 뒷목을 손가락 끝으로 훑었다. 내 뒷목, 뒷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그곳부터 등의 초입까지를. 정확히 그곳엔 길이 17cm, 넓이 4cm 정도 되는 긴 흉터가 있다.


나는 더듬더듬 그에게 설명했다.

"surgery, tumor, 7th cervical spine, remove..."


그는 즉각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쥐고, 머리를 얼마나 숙일 수 있는지, 정확하게는 목을 앞으로 구부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는 목을 숙이지 못해요.'라고 할 때 취하는 모션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이미 이 부분이 딱딱해져서 어쩔 수 없다."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흉터가 생긴 자리는 살처럼 늘어날 수 없기에, 흉터 아래 조직들도 유착되어, 부드럽고 유연하지 않기에.  그런데, 그에게 그 얘기를 들으면서 마냥 행복했다. 그 얘기를 듣는 내내 '저는 그래도 행복해요. 즐거워요.'라는 마음만 빙글빙글 맴돌았을 뿐이다. 웃음이 절로 났다.


야호! 드디어! 내가 안 된다는 걸 인정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니!

그것도 나를 만난 지 세 시간 만에 알아채 주시다니!




나는 할라아사나같이 목을 구부려야 하는 모든 자세들이 어렵다. 통증은 없지만 숨이 막힌다. 경추 추간판 탈출증(목디스크)이 있는 사람에 비해서도 40% 가 안 되는 가동성을 보인다.


여지껏 많은 요가원에 다니면서, 의아해하는 선생님들께 말했었다. '나는 수술을 했으며, 그래서 안된다.'고 내 몸을 설명했다. 선생님들은 '그럴 리가 없다. 오래도록 하면 나아질 수 있다.'며 어떻게든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고독함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자세는 평생토록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왜냐면 뒷 목 흉터 아래에는 철심이 심어져 있으니까. 쇠는 쉬이 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모두에게 부상이 있냐고 물었던 그의 질문에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내가 '부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통증이 없고, 이건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함께,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테니. 나중에 화장을 해도 유골과 함께 목 뒤에서 내 머리를 지탱해 주던 철심들은 남을 테니까.


최근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돈이 없는데 퇴사한다고 망하는 게 아니고, 원하는 대로 안된다고 망하는 게 아니고, 중요한 약속에 지각한다고 망하지 않고, 아프다고 해서 망하는 게 아니고, 계획대로 안된다고 해서 망하는 게 아니라는 말.

진짜 망하는 순간은, "나는 망했다."라는 생각을 할 때라고.


그래서 나는 부상자라고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가져갈 나를 부상자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오늘은 매트 위에 꾸준히 선 이례로, 그 어떤 때보다 큰 위안을 받은 날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있는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확인을 받은 날이니까.  


그가, 달비 할아버지가 내 흉터를 만질 때에,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항상 내게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던 나의 할아버지.


작가의 이전글 #38. 코로나를 막아 보려는 우리 집 비장의 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