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에 앉아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별거 없어~ 가서 선생님 말 잘 듣고 오면 되는 거야" 하고 말하는 엄마가 미웠다.
"빨리 가! 지금 안 가면 진짜 늦어!"파란색 꽃무늬 가방이 손에 쥐어졌다.
학교 가는 길에 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떠나지만 다른 얼굴로 버스에 앉았다. 비행기를 탈 때도 그랬다. 여행의 기대로 가득 찬 즐거움, 중요한 거래를 앞둔 초조함, 오랜만에 연인을 만나러 가는 설렘, 아픈 가족을 위한 간절함을 품은 다양한 표정이 한 곳에 모인 것처럼. 교문 앞에 줄줄이 선 대형버스에는 40명의 아이들이 가득 찼다.
학년별 수영 수업이 있던 오늘은 초등학교 2학년인 내 차례였다. 옷을 벗자마자 수영복 차림인 친구들이 보였다. 나도 그랬다. 엄마가 아침에 미리 입혀둔 수영복 덕분이었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실리콘 수모는 착한 아이의 인상도 매섭게 만들었다. 조이지 않는 메쉬 수모를 쓴 친구는 왠지 여유로워 보였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여기저기서 재잘대는 소리까지 더해져 선생님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파란색 물 안으로 한 명씩 들어가는 순간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렸다. 발이 닿지 않는 공포와 숨 쉴 수 없는 두려움은 한 번 더 나를 울게 만들었다. 온몸이 굳은 것처럼 벽에 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물 안은 물고기 그룹과 벽에 붙은 다슬기 그룹으로 나뉘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울고 있는 다슬기들은 일찍 물 밖으로 꺼내졌다. 눈이 퉁퉁 부은 아이들은 텅 빈 샤워실에서 먼저 씻었다. 투명 비닐봉지 안에 싸인 수건에서 엄마의 온기가 느껴졌다. 뽀송해진 아이들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서로 유대감을 느꼈다.
수영장과 반대로 나는 뜨끈한 탕 안에서 몸을 불리고 메밀국수 같은 때를 미는 것을 좋아했다. 끝나고 마시는 바나나우유도 맛있었지만 동네 목욕탕만 가면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같은 반 친구를 만나는 날에는 온몸이 빨개질 때까지 탕에서 나오지 않았다. 친구가 다른 쪽을 볼 때 후다닥 움직였다.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면 씻는 곳부터 확인했다. 단체생활을 위한 활동은 대형 샤워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씻는 것은 아무 문제없었지만 아는 사람들 앞에서 맨 살을 드러내는 것은 유독 어려웠다. 청소년기의 수줍음이 더해져 "수영장" 은 다가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어느 날 식탁에 한 보따리의 약봉지가 놓여있었다.
"이거 무슨 약이야?" 내가 말했다.
"무릎이 시큰시큰하다 했더니 관절염이래, 약 꾸준히 먹고 체중조절도 해야 한다더라"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때 스치듯 본 새로 생긴 수영장 플래카드가 생각났다. '관절에 무리가 없어 남녀노소 안전하고 다이어트 효과도 좋아요'
"그럼 수영이 최고 아니야? 엄마 한 번 다녀보는 거 어때?"
수영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모집일정을 살펴보았고 마침 신규모집 며칠 전이었다.
"내일모레가 등록일이니까 다음 달부터 갈 수 있겠다!" 갑자기 조급해진 내가 말했다.
"뭐? 이렇게 바로 시작하라고? 아직 겨울이라 추워~ 물 안은 또 얼마나 춥겠어? 날 따뜻해지면 생각해 볼게" 내키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추운 날씨가 복병이었다. 한 겨울이면 당연히 춥겠지. 추운 날 차가운 물에 들어간다니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설득을 목적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 '관절염 환자라면 꼭 시작하세요' '수영으로 허리디스크가 나았어요' 같은 후기가 나왔다. 역시 약을 먹고 있는 중년의 여인에겐 수영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보편화로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는 '온라인 물건 구매 담당' 이 나였고 거기에 등까지 떠밀었으니 처음으로 수영용품 홈페이지에 발을 들였다.
마른 몸 위로 엄마가 수영복을 입혀준 그날이 생각났다.
"옷만 벗고 샤워실에 들어가면 돼. 모자랑 안경 쓰고 들어가. 다 끝나면 전부 수건 들어있던 비닐봉지에 넣어서 담아와 알았지?
그때 이후로 수영복을 입은 적이 없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재질뿐 아니라 남녀의 중요 부분이 도드라져 왠지 모르게 민망한 모양이었다. 다시 만난 화면에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무지개를 들이부은 것 같은 휘황찬란한 수영복이 가득했다. 조금만 잘못하면 엉덩이가 전부 드러날 것만 같았다. 스크롤을 내리던 중 처음 보는 수영복이 있었다. 그것은 다리가 있었다. 보자마자 레슬링 선수들이 떠올랐다.
"5부 수영복" "3부 수영복"이라는 이름의 카테고리에 다양한 길이의 수영복을 입은 모델이 멋있어 보였다. "이렇게 긴 수영복도 있구나!" 이것이라면 엉덩이가 보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이고 안정감 있는 모양을 보다 보니 이거라면 나도 입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스치듯 읽은 '수영으로 10kg 감량했어요' 글이 다시 떠올랐다.
365일 다이어트 모드로 살고 있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던 나였기에 그 후기글은 더 눈길을 끌었다. 지난 기억들이 발목을 잡아 수영장과 나는 n극과 s극처럼 서로를 밀어냈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 수영장을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10살짜리 꼬맹이보다 키도 훨씬 컸다.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안전한 수영복까지 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나의 물성을 바꾸어 놓았다.
"엄마! 나도 다녀볼래"
극이 바뀌고 우리는 달라붙어 버렸다. 그렇게 두 번째 수영이 시작됐다.